성남시는 원래 한국전쟁 후 허허벌판이었는데, 60년대 말~70년대 초에 박정희 대통령이 강제로 청계천 판자촌을 이주시키면서 생겨난 도시다. 집과 땅을 준다고 해서 서울에서 쫓겨나갔는데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 언덕에 땅에 선 긋고 살기. 지금의 중원구 수정구 일대 언덕에 주민들은 처음엔 천막을 치고 살았고, 그래서 성남 구시가지에는 아직도 그때 지어진 70년대 개발 초기 건축들이 많이 남아있다.
모란역 - 남한산성 유원지까지 이어지는 성남대로 신길 말고, 1차선 도로인 광명로 구길에는 <세화정>이라는 오래된 한우구이집이 있다. 정확한 개업일은 알지 못하지만, 풍문에 의하면 30년은 족히 넘었다 한다. 이 가게가 신기한 것은, 바로 옆 주변 건물들은 모두 모텔건물이나 신축건물로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80-90년대 지어진 가건물의 모습 그대로다. 성남운동장 사거리에서 30m쯤 수진역 쪽으로 걷다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왼쪽 작은 골목으로 고개를 돌리면, 골목 끝에 이런 1층 가건물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면 더더욱 놀랍다. 몇십 년 전부터 인테리어를 하나도 바꾸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어 위생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특이할만한 점은 요새 고깃집에는 다 있는 흡입형 환풍구가 없다. 그래서 옷에 고기냄새가 좀 배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집의 영업시간과 메뉴다. 메뉴는 오로지 투뿔 한우 생등심 하나뿐이다. 그리고 코로나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영업시간은 오후 5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에 단 3시간 30분만 영업한다. 얼마나 대단한 맛을 자랑하길래, 단 한 가지의 메뉴로 하루에 3시간 30분만 영업하며 이런 가게가 유지될까.
반찬은 아주 단출했고, 파절이를 소스에 버무려 한우와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물론 소금만으로도 먹을 수 있다. 또 특이한 것은 팬인데, 숯불구이가 아니라 엄청나게 두꺼운 스텐팬을 사용한다. 팬의 흠집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기는 따로 기름을 두르지 않고 쇠고기 지방을 문질러 굽는다. 석쇠에 익숙해서 눌어붙거나 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그리고 정말 고기의 맛은... 언제 이런 고기맛을 봤었나 싶을 정도로 최고였다! 저렇게 장사를 하셔도 장사가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어진 볶음밥. 따로 깍두기를 썰어오셔서 준비해 주시는데, 정말 세월이 느껴지는 볶음용 끌(?)이 인상적이었다. 허리가 이제는 펴지지 않는 주인 할머니께서는 아주 능숙하게 밥을 볶으시고, 뚜껑으로 덮어 익혀주셨다.
마무리 볶음밥까지 다 먹고 나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다. 성남에서 나름 오래 살면서 맛집이라는 곳을 꽤 가봤지만, 여기만 한 곳은 찾기 힘들다. 성남에 올 일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들러보시길. 단언컨대 내가 성남에서 가 본 한우집 중 최고로 맛있다. 테이블도 많지 않아 (4 테이블) 예약이 차있을 수도 있다. 한우 생등심이기 때문에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뭐 어떤가. 맛있으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