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처럼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 즉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을 말한다. 아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로 들어갔다고 하면 전자보다도 작아졌다는 이야기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그 아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 정복자 캉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아원자 세계의 신비한 모습이라거나, 양자역학적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가능성의 나'가 만들어내는 장면이라거나, 재미있는 각종 생물들의 모습들도 볼거리다. 팝콘 먹으며 두 시간을 즐기기에 그다지 모자라진 않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연 마블이어야 했는가? 앤트맨이어야 했는가? 아원자 세계여야 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느꼈다. 특히, 아원자 세계에 대한 상상은 너무 편할 대로만 가져간 설정이었다.
원자의 구조와 항성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자 구조가 막 발견될 즈음, 양자역학이 발달하기 전인 100년 전쯤 이야기다. 그래서 우주 속 우주, 우주 밖 우주처럼 원자 안에도 지구와 똑같은 세계가 있고 우주 밖에도 지구와 같은 세계가 있다는 상상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가보지 않았으니 실제로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자 속을 들여다봤더니 전자 안에 수많은 생물들이 사는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인간은 공기로 호흡한다. 공기는 산소분자, 질소 분자, 이산화탄소 분자 등이 있다. 즉 산소원자보다도 작아지면 산소를 들이마실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헬멧을 벗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사하나의 설명도 없이 그냥 지나쳐버린다. <앤트맨>에서나 <어벤저스>에선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헬멧을 벗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원래 앤트맨은 '개미크기로 작아지는''사람을 개미만 하게 보이도록 커지는'히어로이고 그래서 그의 헬멧에도 개미와 통신하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아원자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부수적인 이야기다. 사실은 <앤트맨> 1에서부터 그런 핍진성이 깨지는 설정이 많긴 하다. 영화 속 크기를 늘이고 줄이는 '핌 입자'의 원리설명에 따르면, 질량은 크기가 달라지는 것과 관계없이 같아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아무 데도 없다. 사실 뭐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다. 애초에 하드 SF도 아니고, 그냥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가장 아쉬운 첫 번째는 영화의 이야기 구조다.
주인공 스콧 랭(폴 러드)이 경쾌한 음악에 평범한 남자의 성공담처럼 길을 걸으며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머리는 사실 보자마자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다. 너무 진부한 방식의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를 위기로 만드는 제일 큰 부분이 딸 캐시 랭(캐스린 뉴턴)의 불평과 장모 재닛 반 다인(미셸 파이퍼)의 진실을 감춘 꾹 다문 입이다. 둘의 행동은 상황에 맞는다기보다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해서 넣은 행동들이었다. 더군다나 어째서 완전 외부인인 캐시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건 혁명이 일어나고, 캉과의 싸움 전개는 왜 그리도 허무한가. <토르 4: 러브 앤 썬더>는 애초에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라는 컨셉이 있었기에 좀 유치한 전개가 용납이 되었는데, 이 부분들은 절박함과 진지함이 있어야 할 곳에 그저 가벼운 개그만이 계속되어 몰입이 힘들었다. 게다가 양자세계 안에 있는 모독, '험티덤티'는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두 번째는 부족한 세계관 설정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전자보다도 작은 세계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숨을 쉬고 빛이 있고 중력이 있느냐, 생물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걔네들은 뭘로 이뤄졌느냐 같은 문제는 그냥 상상력으로 퉁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양자 안에 들어갔는데 그 수많은 양자 중 어떻게 정확히 옛날에 갔던 그 양자 안으로 들어갔느냐 하는 것에도 딴지를 걸 수는 있지만 사실 모든 전자, 양자가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이론이 있긴 하다. 그러니 그런 건 그냥 재미로 넘어가자. 이곳은 원래 원시적이던 세계에 캉이 오고 나서야 초고도문명을 발전시킨 건데, 여기 생물들은 밖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한 설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나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이 생겨났을까?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도 다양한 행성에서 서로 다르게 진화한 생명체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설정이라 그게 가능한 걸로 나온다. 어째서 여기에 인간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이곳에 떨어진 행크 핌은 과학자다.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이나 질문을 아주 간략하게라도 하지 않는 게 좀 많이 불편했다.
또한, 아원자보다 작아진 세계를 미생물의 세계인 '마이크로 코스모스'와 별 다를 바 없이 설정하고 그리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세포나 미생물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소우주가 펼쳐진다. 앤트맨 1편에서 작아지는 과정 중에 미생물인 '물곰'을 만났던 것을 상기해 보면, 그 자체가 굉장히 경이로운 경험이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양자역학이 적용되어야 할 아원자 세계가, 그저 <스타워즈>와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그려진 게 너무나 상상력의 부재처럼 느껴진다. 지구와 똑같은 물리적이고 원시적인 전투, 무기, 생물들. 지구와 달라 보이는 건 다양한 생물들의 모습밖엔 없다. 그리고 중력이 아닌 전자기력이나 강력 약력을 이용한 생태나 전투, 혹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확률과 중첩에 대한 아이디어등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응용한 부분은 잠깐 나오긴 하는데, 눈요기 이상은 되지 못했다.
세 번째는 메인 빌런인 정복자 캉의 존재감이다.
정복자 캉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로써, 시간이 쪼개지는 모든 멀티버스와 모든 시간대에 다 존재할 수 있는 최강의 빌런이다. 또 그런 타임라인과 우주 자체를 없애고 있는 존재라고 나와서 타노스 이상의 우주적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캉이 왜 그런 엄청난 힘을 이곳에서 쓰지 못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슈트를 입고 싸울 때 보여주는 능력이라곤 무식하게 손에서 1자 빔을 쏘는 것뿐이다. 표정으로 온갖 무게는 다 잡고 있지만, 그가 왜 그렇게도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겠다. 앤트맨이 싸우고 있어서 이렇게 고생하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왔다면 캉은 한방에 끝낼 것 같은데. 게다가 제국을 건설할 정도의 리더라면 타노스나 다스베이더와 같은 제국 황제와 같은 위엄이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싸움도 황당할 뿐이다.
네 번째는 여전한 디즈니+의 끼워팔기다.
원래 정복자 캉은 디즈니+의 드라마 <로키>에서 등장하는 빌런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보려면 <로키>를 알고 보면 좋다. 마지막 쿠키영상도 <로키>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모든 관객이 디즈니+에 가입할 수는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 2>도 그랬지만,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한 이후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디즈니 월드를 구축하는 것은 충성심 강한 팬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일반 관객들과는 멀어지게 된다. 적어도 각각의 히어로물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그 후속작이 다 이해되도록 해야 하지 않은가? 거기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반 관객은 디즈니+를 가입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다음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다섯 번째는 '앤트맨'만의 매력 부족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름에도 볼 수 있듯이 앤트맨은 원래 개미만큼 작아져서, 개미와 소통하는 캐릭터다. 또한 일반적으로 보이는 사물을 줄였다 늘렸다 하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는 아원자 세계로 들어간다는 설정 말고는 앤트맨이 가져야 할 정체성이나 매력이 별로 없다. 어느 분의 말마따나, 말하는 라쿤이 주인공이고 우주 어느 별에서 일어난 스토리여도 크게 다르지 않을 영화였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가 가진 장점은, 각각 히어로의 솔로무비가 각기 다른 매력과 장르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어둡고 슬픈 <헐크>, 경쾌하고 가벼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현실적이지만 멋짐이 폭발하는 <아이언맨> 등이 그렇다. <앤트맨>도 1편에서는 나름 독자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하지만 갈수록, 그 느낌은 없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건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드라마를 오랜 시간에 걸쳐 보는 느낌이 든다. 일반 관객은 질리고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이전 마블 시리즈의 계속되는 삽질을 보며, 애초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대한 기대감을 정말 낮추고 봤음에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아쉬운 부분들을 하나로 이야기하자면 상상력의 부재다. 아원자 세계는 영화 사상 거의 처음 시도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기존에 답습한 스타워즈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 그리고 캉이라는 존재에 대한 별다른 고민이 없이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멀티버스 중 하나의 지배자였지만 한번 나오고 말았던 '도르마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현재 마블 시리즈 중 최악을 다투는 로튼토마토 지수 등이 그걸 반영한다.
물론, 이 영화가 재미있게 볼 부분이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팝콘 먹으며 두 시간 놀이동산에서 퍼레이드를 보듯 즐기고 올 수 있는 영화다. 원래 그런 게 또 영화의 재미니까. 하지만 조금 더 잘 만들었을 수도 있는 영화가, 이렇게 나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다음 마블 영화는 DC로 이적한 제임스 건 감독이 마지막으로 만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다. 아마 그것까지만 극장에서 보게 될 것 같다.
*아원자 세계에서 인간 몸에 7개의 구멍에 대해 물어보는 '구멍이 없는 녀석'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걔 몸에 구멍이 생기는 부분은 장자에 나오는 <혼돈>에 대한 이야기를 차용한 것 같아서 나름 재미있었다. 중국 고전인 <장자>에는 <혼돈(chaos)>이라는 왕이 숙과 홀이라는 다른 지역의 왕을 초대했는데, 그 환대를 받고 '혼돈은 다른 사람에게 다 있는 7개의 구멍(이목구비)이 없으니 뚫어주자'라고 해서 얼굴에 7개의 구멍을 뚫고, 다 뚫자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