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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Mar 10. 2023

<콜 제인> 나의 몸은 나의 것

세계는 68 혁명 이전, 정치적으로는 냉전이 심했고 사회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이 강했다. 60년대 미국은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해있을 때였고, 여성운동과 흑인운동이 태동하고 있을 시기였다. 성적인 면으로는 킨제이 보고서에 이어서 마스터스&존슨 성 연구소에서 <인간의 성 반응>이라는 연구로 여성의 오르가즘이 질이 아니라 클리토리스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점점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알아가고 지켜가는 것에 눈뜨기 시작했다.


영화 <콜 제인>은 60년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민간 임신중절(낙태) 운동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중산층 백인 여성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변호서인 남편을 둔 사회운동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뒤늦게 둘째를 임신했는데, 그 임신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임신중절을 하려면 병원 의사들의 합의가 있어야 했다. 산모가 죽을 위험이 50%에 달하는데도 남자들로만 구성된 의사들은 모두 반대의사를 표시한다.



기독교 중심국가인 미국은 중절 수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죽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거기엔, 안타깝게도 산모가 인간으로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르는'도구로써만 인정받는 시대였다. 임신상태를 중단하는 일은 각자 개인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원치 않는 임신'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산모가 아이를 낳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이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므로 반드시 낳아야 했다. 실제로 가톨릭의 기본 교리에서 원래는 부부끼리도 피임을 하면 안 된다. 성관계는 반드시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해야 하고, 그러기에 콘돔이나 피임약을 쓰는 것은 '난잡한'행동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남미에서는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어도 중절 수술을 하면 산모는 살인죄로 감옥에 갔었다. <콜 제인>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당시 실제 '제인스'의 전단지 광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조이는 길에 붙은 '임신? 원하지 않으세요? 제인에게 전화를'이라는 종이를 보게 된다. 어렵게 전화해서 찾아간 곳에서, 조이는 뭔가 냉정하지만 차분한 의사에게 시술을 받게 된다. 시술장면은 상당히 자세하고, 조금은 무섭게 시술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시술 후 다들 모인 곳에서 조이는 알게 된다. 제인이라는 사람은 없고, 그곳에 모인 여성들 모두가 제인이라는 사실을. 여기를 처음 만든 버지니아(시고니 위버)는 조이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며 끌어들인다. 원래 '제인 Jane'이라는 이름은 영미권에서 익명의 이름을 말할 때 자주 쓰이는 이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나 '아무개'라는 뜻으로 남자는 존 도(John Doe), 여자는 제인 도(Jane Doe) 등을 쓴다.


이곳에 있으면서 조이는 많은 여성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강간을 당한 어린 여자도 있고, 바람을 피우다 임신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사연들을 적어 메모로 남겨 서로 누구를 맡을지 정한다. 믿을만한 의사를 구해서, 여성들끼리 연대해서 안심하고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싼 게 흠.



조이 역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그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왜 불쌍하고 힘든 여성들을 도와주는 시술을 하는데, 돈 많고 바람피운 여자가 몇 번이나 시술을 하러 오는 것도 해줘야 하는 거지?'라고. 하지만 <콜 제인>이 위대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의사가 한 명이다 보니 시술 시간이 굉장히 한정적이라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그녀들의 사연을 듣고 누가 더 중요한지 결정하는 게 그들 사이에서도 큰 논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연만으로 순서를 정한다면, 그것은 영화 초반 등장했던 '아무 상관없는 남자들이 여성 당사자의 몸과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진다. 그리고 사연의 중대함으로 순서를 정한다면 결국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로의 신뢰를 깨버리게 된다. 여성도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해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임신을 중단하기로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가 목표였다. 그렇기에 '제인스'가 12000명의 인생을 살릴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여성인권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제인스'는 신뢰가 중요하다. 시술을 받은 여성 중에서도 죄책감 때문에 신고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사연을 받아둔 쪽지로 서로의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더 이상 '제인스'가 필요 없어진 때가 오자, 이제 그 쪽지도 필요 없어진다. 그래서 하나씩 불에 태운다. 비록 마지막에 범정 싸움 장면들을 넣어서 더 재미있게 극적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콜 제인>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이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흘러가도록 그리고 있고 나는 그런 느낌이 매우 좋았다.


우리가 서로 노력한다면 여성들을 억압했던 법과 문화는 그렇게 하나씩 재가되어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조이의 남편은 60년대 미국 남성으로 치자면 상당한 페미니스트로 그려진다. 하지만 여전히 부엌일은 전혀 손도 안 대고, 꼰대 같은 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시대상을 반영한 페미니스트라는점이 재미있게 표현된 캐릭터다.


*마지막에 68 혁명 이후라서 히피들이 마당에 다 모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얼핏 존 레논과 오노 요코 같은 인물이 스쳐 지나가니 눈여겨 볼 것.


*등장인물들은 실제 이름이 아닌 바뀐 이름들인데, 제인스를 만든 사람 이름이 '버지니아(처녀 여왕)'인 것이 좀 재미있다. 아래는 당시 체포되었던 실제 인물들의 머그샷.




https://m.kinolights.com/review/237005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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