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희극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희극, 개그라는 것은 단순하게 남을 비방하거나 웃긴 슬랩스틱을 통해 원초적인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풍자가 담겨 있으면 의미가 있어진다. 그러면 그 웃음뒤에 감춰진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박성광 감독의 <웅남이>는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가 짙게 깔려 있다. 우선 주인공인 나웅남(박성웅)이 그렇다. 나웅남은 종복연구소에서 방사시킨 반달곰 두 마리 중 하나로, 마늘을 주워 먹고 사람이 되었고 한 마리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곰 같은 힘과 능력을 가진 웅남이는 종복연구소의 소장 나복천(오달수)에게 발견되어 길러진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제약회사 사장이자 조폭 두목인 이정식(최민수)에게 아들 이정학이라는 이름으로 길러져, 철저한 살인병기로 태어난다. 둘이 조금 다른 점이라면, 정이 많은 나복천의 아내 장경숙(엄혜란)은 웅남이를 실제 사람처럼, 자식처럼 기르고 이정학은 동물처럼 특정 소리에 반응하도록 길들인다는 점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도 안 되는 루머를 그대로 영화 속에 녹여내기도 했다. 제약회사 사장이자 조폭 두목인 이정식은, 자신이 가진 백신을 팔기 위해 중국에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트렸다고 나오는 '백신 음모론'을 실천한 인물이다. 또한 배우 박성웅이 1인 2역을 한 웅남이와 이정학이 싸우는 장면은 '도플갱어가 만나면 반드시 한 명은 죽는다'는 속설이 담겨있기도 하다.
백신 개발과정에서 혼자만 백신을 맞고 바이러스 가스실에서 혼자만 방독면을 벗고 멀쩡한 모습은 최민수의 그 유명한 <품행제로> 방송에서 화생방에 맨얼굴로 들어간 방독면 짤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실제 도박으로 걸린 김준호가 경찰로 등장해 도박장에서 자신이 경찰한테 잡히는 모습도 그렇다. 특히 이 장면은 정작 범인을 잡아야 하는 공권력이 실제로는 범인이 이기도 한 한국 현실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매번 엉뚱한 행동을 하는 성형사(서동원)는 예전 문정혁(에릭)이 출연했던 드라마 <신입사원>에서, 모자라지만 마지막에 경찰학교에 합격한 민이를 떠올리게 한다. 민이가 경찰로 오래 근무했다면 <웅남이>에서와 같은 모습일 거라는 생각에 뜬금없는 행동과 개그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하 스포일러]
처음부터 단군이 등장하며 곰이 사람이 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때문에 바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두 마리의 반달곰은 한국 그 자체를 비유하고 있다. 나중에 이정식에게 길러진 곰에게 나복천이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름이 '웅북이'가 아닌가. 따듯하게 길러진 웅남이와 조폭에게 길러진 웅북이. 결국 이 둘은 서로 마주하게 되고, 경찰과 조폭의 싸움에 서로 이용당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 역시, 소련과 미국의 힘겨루기의 희생양이었다. 소련은 북한을 웅북이처럼 전쟁병기로 키워 미군정 아래 대통령을 뽑은 남한을 침공했다. 미국은 공산세력을 저지하는 최종선인 한반도를 사수한다는 명목아래, 일본을 병참기지 삼아 UN군을 모아 한반도를 사수했다. 그 둘의 힘겨루기로 인해 한반도는 지금까지 형제이면서도 둘로 갈라져,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불행한 민족이다.
웅남이와 웅북이도 그와 똑같은 상황이다. 특히 웅북이는 나중에 이정식에게 바이러스 폭탄을 물려받고 도주하는데 남아 이용하게 되는데,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김일성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정작 전쟁은 한반도에서 한 상황과 비교된다. 한국전쟁은 사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내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세계의 공산주의세력과 자본주의세력이 대립한 세계대전인 셈이었다. 영화 <웅남이>는 웅남이와 웅북이가 순박하고 슈퍼히어로에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힘을 가졌지만, 주변에 길들여지고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의 상황과 겹쳐서 웃음 뒤에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식-웅북이가 바이러스와 백신을 원래 개발했던 종복연구소의 나복천을 암살하러 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웅북이는 자신이 여기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복천도 단번에 그가 웅북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별다른 설명 없이 박성웅과 오달수의 연기만으로 서로 가진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는데, 뜬금없이 눈물 쏟아지는 신파적 재회가 아니라 당황스러운 '가족의 재회'라는 지점이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실제 그런 상황을 겪어봐서 더더욱.
물론 감독의 데뷔작인 만큼,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B급 코드를 살리려 했으면, 주성치처럼 아예 더욱 병맛으로 가버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주성치의 영화 중 <신정무문>이라는 영화는 시골에서 올라온 오른손에 괴력을 가진 남자가 격투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거기에서 주먹 한방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가졌는지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최고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초반 에블린이 갑자기 청소실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 부분의 패러디기도 하다. 하지만 <웅남이>에서는 설정상 충분히 <신정무문>, 혹은 <매트릭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액션을 보여줄 수 있었음에도, 괴력은 있지만 말이 되게 싸우는 모습이 조금 아쉬웠다. 중간중간 조금 늘어지고 반복되는 개그도 아쉬웠다. 또한 마지막 싸움을 위해서 유튜버 친구를 설정한 것은 나쁘진 않았는데, 엔딩에서도 그 유튜버가 잡혀갔거나 대박 터지거나 어떻게 되었는지 나왔으면 싶었는데 사라져서 아쉬웠다. 또, 최대 빌런인 이정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은 것도 밋밋한 결말에 한몫했다. 마지막 쿠키영상에서는, 멧돼지에서 사람이 된 그가 킁킁거리기보다는 완전 잘생기고 멋있는 모습으로 나오는 게 더 웃겼을 것 같다.
개그 영화는 웃겨야 한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포인트는 사실 사람마다 다르고 영화에 대한 기대 또한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만족할 웃음을 주는 개그영화는 찾기 힘들다. 이 영화의 감성은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개그감성이 물씬 묻어난다. 거기에 박성광 감독 특유의 소리 지르거나 욕하는 개그가 들어있어서, 그 코드가 맞는다면 충분히 웃을 수 있고 특히 나이대가 있는 일반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라 생각한다. '개그맨 출신이라 개그영화를 만만하게 보고 만든 수준'이라는 여느 평론가의 평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대부분이 정극배우가 나와서 연기했고, 나름의 진지하고 따듯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물론 감성이 맞지 않으면, 전혀 재미없을 수도 있다. 나에게 이 영화는, 영화적 만듦새로 보자면 멀리는 심형래의 '디워'보단 훨씬 영화다운 편집 수준이었고 가까이는 '서울대작전'보다 좋았다. 특히 이정식 역으로 나온 최민수는 시종일관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마냥 가볍지만은 않도록 영화의 무게를 잡아주었다. 촬영 기간 중 오토바이 사고로 대수술을 한 다음 촬영에 복귀한 것으로 아는데, 전혀 아픈 기색 없이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
꾸준히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40대의 나이에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을 응원한다.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는 쉽다. 분명 아쉬운 점도 많은 영화다. 하지만 잘한 점을 찾아 응원하고 북돋아주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최고의 개그영화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나름 소소하게 웃으며 본 만큼 더 좋은 실력을 가꿔서 해 나갔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한 배우들도, 그 안에 담긴 따듯한 메시지와 그를 응원해서 나온 것은 아닐까. 꿈을 꾸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