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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pr 25. 2023

<존 윅 4> 쏘고 죽이는 놀이동산

<존 윅> 시리즈는 최근 액션 매니아들에게서 각광을 받고 있다.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주 액션은 건짓수(건+주짓수)라고 명명하며 근래에 보기 드문 총격 액션을 만들었다 평하고 있으며, 액션만을 위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사람 많이 죽이는 걸로 유명한 영화인 <람보>의 킬카운트를 2편인 <존 윅: 리로드>에서 넘어섰다고 재미있어할까. 그 자자한 명성을 들으며 <존 윅4>를 보기 위해 1편부터 3편까지 정주행 한 후, 4편을 보러 갔다. 일단은 부시고 쏘고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좋았다. 어떤 지점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러나 액션 마니아인 내 기준에서는 이 영화가 과연 현재 액션영화의 최고봉이자 신기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다.



몰입에 방해가 되는 억지설정

액션 장르영화에 무슨 스토리가 중요하냐 하겠지만, 죽이고 싸우는 데에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는 필요하다. 그리고 액션 영화는 스토리가 '단순해야' 좋은 것이지, '억지스러운'느낌이 든다면 좋지 않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개가 죽었다고 조직을 박살 내는'이야기가 B 급스럽지만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막상 보니 그 부분은 오히려 납득이 가는 설정이었다. 개에 대한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게 느껴졌고, 그렇게 죽이러 갈 만했다. 의아한 설정은 따로 있었다. 바로 킬러들의 문화에 대한 설정이다.


처음 1편에서는 킬러들이 다 프리랜서고, 누가 누구를 죽이고 싶을 때는 현상금만 걸면 되었다. 그런데 2편으로 가면서, '최고회의'라는 조직에 모든 킬러들이 다 가입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는 설정이 되어버렸다. <존 윅> 시리즈에는 '콘티넨탈 호텔에서는 서로 죽이지 않는다'라는 룰이 있는데, 사실 1편에서는 무자비한 킬러세계에서 프리랜서 킬러들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것이라 굉장히 멋진 룰이었다. 뭐 물론, 지키지 않았을 시에 호텔에서 나서긴 하지만.


그러나 2편에서부터 나온 최고회의는 그 멋진 콘티넨탈 호텔도 자기들 마음대로 아무렇지 않게 박탈하거나 없앨 수 있는 곳이었다. 점점 뒤에 나오는 내용을 알고 보니 프리랜서 킬러들이 아니라, 어새신의 후예인 셈이다. 그런데도 존 윅을 죽이기 위해 현상금은 계속 내건다. 그리고 최고회의는 현상금이 걸린 존 윅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처단한다. 이 상황이 굉장히 부조리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자유로운 미국시민이 갑자기 전제 군주제의 사무라이가 된 느낌이랄까. 또, 4편 설정인 '후작'과 모든 사건을 정리할 수 있는 '결투'설정은 참으로 뜬금없었다.


<존 윅 4>엔 기존 시리즈와 다르게 끊임없이 해 뜨는 장면과 '떠오르는 태양'운운하고 심지어 거대한 욱일 장식이 곳곳에 보여 의문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런 설정도 <킬빌>처럼 내용과 연결성만 좋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몇십 분에 달하는 '오사카 콘티넨탈 호텔'씬 전체를 들어내도 괜찮을 정도로 '일본'설정이 영화 내용과 상관이 없었다. 그 씬이 없었으면 차라리 영화 러닝타임도 적당했을 것이다. 이럴 바에야 '후작'이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불필요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섭지 않은 존 윅의 액션

존 윅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엄청나게 끈질기고, 목표한 타깃은 반드시 죽이고, 연필로도 3명을 순식간에 죽이는, 그러면서도 룰을 지키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를 반기던지, 그를 무서워하던지 둘 중 하나다. 그런 존 윅의 설정에 있어서, 가장 공들여야 할 것은 당연히 존 윅의 액션이다.


<존 윅> 시리즈의 감독은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 대역을 했었던 스턴트맨 출신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비드 리치다. 우선 감독들이 '무술감독'출신이 아니라 '스턴트맨'출신인 느낌이 물씬 든다. 액션에 서사가 부족하다. 액션 영화의 액션은 단순히 때리고 부수는 게 아니라, 거기엔 주인공의 감정변화나 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2,3편에서 <존 윅>은 그런 부분들을 좀 담아내려 했었다. 하지만 4편으로 오면서 그것이 완전히 실종되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적을 죽이는 것의 반복이다. 영화가 길기도 길어서, 마지막 결투를 한다고 하자 '이제 끝났구나'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이나 더 남은 게 아닌가. 그리고 결투 직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복된 액션...


이 영화의 액션이 별로라고 말하면, 보통 '카메라를 와이드 하게 잡아서 현실감 있게 보여줘서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전혀 아니다. 나같이 오래된 액션영화의 팬은 80-90년대 홍콩영화에 익숙하다. 거기선 그렇게 와이드 하고 천천히 앵글을 잡는 영화가 많았고 그것들은 지금 봐도 재미있다. 액션의 스토리와 합을 얼마나 재미있게 짜느냐가 액션 영화의 재미이기 때문이다. 많은 <존 윅> 분석 소개영상에도 나오듯, 감독들은 여기 나오는 존 윅의 '건짓수'를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건짓수가 문제다.


존 윅은 건짓수로 적을 메치고 제압하고 구른다. 그런데 그 건짓수는 '킬러'가 해야 할 살인무술로써의 건짓수가 아니라, 스포츠의 주짓수를 가져다 썼다. 그게 존 윅의 무시무시함을 확 깎아버렸다. 원래 일본 고대 무술에서 탄생한 유술은, 갑옷 입고 칼을 든 상대와 싸우는 무술이었다. 그것이 현대 합기유술이나 유도나 주짓수로 넘어오면서, 살인 기술은 제하고 스포츠로써의 기능만 강화됐다.


살인 무술로써 주짓수를 쓴다면, 허리 감아 구르거나 메치거나 조르는 귀찮은 시간이 없어야 했다. 메칠 때 일본 고무술처럼 바로 머리부터 땅에 메다꽂고, 목은 조르기 전에 부러트리고, 암바를 해도 제압하는 게 아니라 바로 꺾어버려 못쓰게 만들어야 한다. 대단한 배우는 아니지만 스티븐 시걸의 액션이 그랬다. 합기도를 주 무기로 하는 시걸은 잡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상대방의 관절을 부러트려버려 무시무시함을 드러냈었다. 그에 비해 존 윅은 시종일관 열심히도 잡고 구르고 신사적으로 메친다. 이 광경을 와이드 하게 잡은 앵글로 보고 있자니, 특공무술 시범단이 총칼을 든 적과 싸우는 모습을 재현한 무술시범, 혹은 프로레슬링을 3시간 동안 보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존 윅이 싸우고 다음 동작 하는 걸 뒤에 적들이 기다리는 게 다 보이지 않은가. 열심히 맞춘 합을 열심히 해내는 느낌이었다. <카터>만큼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액션방식도 지루해졌다. 차라리 좀 어설프지만 <이퀼리브리엄>의 무술 '건카타'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주짓수는 굉장히 연습이 많이 필요한 무술이다. 원래도 키아누 리브스가 액션에 최적화된 배우가 아닌지라, 그의 허우적대는 동작을 보고 있자니 참 안타까웠다. 열심히 배운 것을 하는 느낌이었고 그의 동작에서는 여유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4에서는 특히 같이 등장한 케인(견자단)의 액션과 너무 비교되었다. 견자단은 실제로 주짓수 유단자고 쌍절곤도 조예가 깊다. 견자단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 여기서 존 윅의 액션을 살려주려고 견자단의 무술의 1/10도 드러내지 않은 걸 알 것이다. 특히 존 윅의 쌍절곤은 견자단의 쌍절곤과는 당연히 비교도 안될뿐더러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의 쌍절곤 보다도 못해 보였다. 매트릭스에서야 서양인 몸에 동양무술을 '주입한'설정이었으니 뭔가 어색해도 그려려니 하고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와이드로 잡다 보니 키아누 리브스의 스피드나 무술실력이 너무 눈에 띄었다.


그리고 4편 처음 시작할 때 존 윅은 정권지르기를 뜬금없이 연습하고 있다. 보통의 액션영화라면, 나중에 저 정권지르기로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해내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권지르기가 그 대포 같은 소리와 함께 나오는 곳은 중간에 단 한 장면인데, 거기에서 상대는 주먹을 정면으로 몇 번이나 맞고도 얼굴이 너무 멀쩡해서 보는 내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존 윅 물주먹이었구나... 클리셰를 깬다는 것은 그보다 재미를 줘야 하는 건데, 재미가 없다면 그건 실패한 시도다.


총알 개수를 세고 장전을 착실히 하고, 몸에 두방, 머리에 한방을 맞추는 모잠비크 드릴을 써가며 킬러의 본분에 충실하고, 모든 무기를 자연스럽게 다루며 현실감 있는 액션을 보여준다는 의도는 좋다. 또, 그 부분에서 희열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들이 원하는 부분에서만 현실적이고, 그게 아닌 부분은 당연하게도 여전히 현실적이지 않으며 연출이나 무술도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신나게 쏘고 죽이는 놀이동산 같았다.




이 영화는 잔뜩 죽이고 때리고 부시기 때문에 액션마니아들이 좋아할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B급 액션영화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고, 심지어 단점도 많은 영화다. 그러나 일반 관객뿐 아니라 전문 평론가들까지 나서서 높은 평점을 주는 게 좀 의아했다. 그래서 뒷부분은 좀 지루하긴 했지만 나도 나름 액션은 재미있게 봤는데도 불구하고, 액션영화로써의 완성도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장점이나 호평을 남기는 와중에 단점을 지적해 보았다. 이런 점을 모르고 감독이 계속 영화를 만든다면,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의 매력으로 완성된 <존 윅>보다 성공할 영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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