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외계 생명을 만난다 한들, 그것과 소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지구의 동물들과도 소통하지 못하는데."
심지어, 인간은 피부색이 다른 인간들도 같은 인간으로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영국 박람회에서 동양인과 아프리카인들을 전시한 것도 불과 114년 전 일이다. '인간'이라는 틀에 갇힌 생물인 우리가, 과연 다른 지적 생명체를 본들 그게 지적생명체인지 알아보기나 할까? 혹은 생명체라고 생각은 할 수 있을까?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이질적인 두 시리즈를 이야기하자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엑스맨> 시리즈다. 둘 다 액션 SF를 지향하긴 하지만, 초인적인 한두 명이 세계를 구하거나 파괴하려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들의 핵심은 '아무것도 아닌 별종들도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이야기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이 열려있다. 워낙 많은 돌연변이들과 외계인들이 등장하므로, 일단 그것이 나와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물론, 그게 날 죽이려 할 때는 다른 얘기지만. 그 수많은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가장 별종이고 가장 슬픈 생물이 있다. 바로 라쿤의 모습을 한 지성체, '로켓'이다.
'로켓'은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고, 그렇게 영리한 생물이 되었을까? 왜 그렇게 삐뚤어져 있고 비관적일까? 로켓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린다. 그저 잠깐, 실험을 당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만 지나가듯 나온다. 이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그런 로켓의 과거가 주 이야기로 등장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관객은 첫 장면부터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과학 실험에 있어서 인체 실험, 동물 실험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계다. 현대에는 동물 실험에도 윤리적인 기준이 적용되어, 동물 자체를 괴롭히는 혐오실험등은 금지된 상태다. 또한 많은 제약회사나 화장품 회사들이 동물실험을 금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백신을 만들기 위해 투구게의 피를 대량으로 포획해 뽑아서 사용하느라 투구게가 멸종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에서 동물 실험을 하는 회사는 전 우주에서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들과 그곳을 만든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수많은 행성의 종족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영리한 라쿤인 '로켓'의 존재를 알아내고, 자신들에게서 탈출한 로켓을 되찾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로켓은 크게 다치지만, 몸속에 있는 장치 때문에 치료를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어 로켓을 만든 회사인 '오르고'를 찾아간다.
타인과의 소통
현실에서 우리 인간은 민족만 조금 달라도, 아니 피부색만 달라도 미의 기준이 달라서 거부감이 들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만 조금 다른 것에도 서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혐오한다. 한국인은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자이니치나 조선족들을 혐오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서로의 피부색이 누가 더 밝으니 어두우니로 차별한다. 가장 가까운 민족인 이스라엘 인은 팔레스타인 인을 학살하지 못해 안달이다. 멀리 갈 필요 있나? 당장 부부간에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을 잔뜩 심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인데.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단일종이다. 종이 다르면 아이를 낳았을 때는 노새(말+당나귀)처럼 아이가 생식기능이 없어진다. 단지 피부색이 다른 것을 다른 종처럼 부르는 데 익숙한 것도 인간이 얼마나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종족인지 보여준다. 호모 사피엔스와 가장 가까운 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은 일부 호모 사피엔스와 섞였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고 보는 설도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는 피터 퀼, 로켓, 그루트, 드랙스, 네뷸라, 맨티스로 되어 있다. 그동안 시리즈를 보아왔으면 알지만 이들은 출신도 종족도 전부 다르며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매번 투닥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리와 정으로 뭉쳐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사소한 일에는 한심할 정도로 토라지고 기싸움한다. 매번 같은 말만 하는 그루트는 어떤가? 사실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로켓뿐이었으나 점점 다른 팀원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태어난 별과 종족과 문화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답답해하면서도 이해하려 하고 사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깨알 같은 웃음들을 준다. 하지만 그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들이다. 다른 종과 소통을 하는 열린 마음은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삶의 순환
로켓은 왜 실험을 당한 것일까? 지성체가 아닌 '그냥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그런 동물들을 데려다 지성체로 바꾸는 실험을 한다. 지성체가 아닌 동물은 그에겐 소통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영화 내내 그는 어떤 사람들과도 소통을 하고 있진 않다. 오로지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여기서 그는 극적인 모습을 강조해 악랄하게 그려졌지만, 사실 평범한 인간들도 크게 다르진 않다.
오로지 새끼 때의 모습이 귀여워 분양 공장에서 인간들이 강제 강간으로 생산된 아이들을 좋다며 구입하고, 좀 자라면 유기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저 한때 가지고 놀다 버리면 되는 장난감 취급하는 사람들. 동물을 사육하고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동물의 삶이나 도축방법이 너무나 잔인한 방식인 것들. 어릴 때 농장에서 자라와 그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 잔인함을 잘 알고 있다. 완벽한 동물 해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동물을 같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일말의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이온 킹>에서 무파사는 심바에게 사냥을 가르쳐 준다. 사냥을 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한 심바에게, 무파사는 그것이 삶의 순환, Circle of Life라고 말한다. 사자가 죽으면 풀이 되고, 그것을 물소가 먹는다. 그러기에 장난이나 기분으로 다른 동물을 해치면 안 된다. 사실 그렇기에 생태계는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지키지 않고 하이에나들을 끌어들여 마구잡이로 사냥을 하기 시작한 스카는 그들이 살고 있는 프라이드 랜드의 생태계를 망가트려버린다. 삶의 순환을 생각하지 않은 욕심을 위한 마구잡이식 사냥이 사자들 자신들도 굶주리게 만든다.
지금 인간의 모습도 같다. 지금 인간이 새를 멸종시키는 속도가 K-Pg대멸종 때 공룡이 죽던 속도보다 빠르다. 인간은 자신의 문명을 위해서 삶의 순환 따위는 생각지 않고 너무 빠르게 동물들을 이용하고 소비한다. 이것은 비단 동물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를 떠나서, 결국 인간 자신도 파멸시키게 된다. 지성체가 아니면 함부로 다뤄도 되나? 말을 할 줄 알고 아니고 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내 생존을 위협하는 것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리함을 위해 나아가서는 귀여움을 소비하기 위해 마음대로 생명을 다뤄도 되는가 말이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독교의 구약에서는 '나를 믿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폭력적인 신앙을 강조했다면, 신약의 예수는 가장 중요한 계명을 물어보자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자비의 마음을 강조했다. 물론 현대 대형교회가 정말 그러고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공자 역시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한마디로 '네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마음을 강조했고 그것들은 일맥 상통한다. 타인을 나와 같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로켓의 이야기는 멀고 먼 과거의 이야기 거나 먼 미래나 판타지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구라는 한정된 생태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친구의 이야기다. 비글은 인간을 잘 따른다는 이유로 수많은 실험의 대상이 되어왔다. 라쿤은 귀엽고 사람과 잘 논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라쿤 카페에 들여온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한반도 생태교란종으로 자칫 방생되면 죽어야 할 운명이다. 더 온순하고 작게 만들어 사람들 따르게 만드는 강아지들을, 염색하고 연지곤지를 찍어 그들이 그걸 즐기는 것처럼 포장해 자막을 다는 유튜브들은 어떤가? 그런 건 말 못 하는 동물이 인간과 똑같은 것을 좋아할 거라는 폭력적인 애정이다.
로켓도 그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덜 두려워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되돌아온 것은 끔찍한 생체 실험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에는 더더욱 다른 종들끼리 부딪히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고 대적할 때도 있고, 멘티스처럼 괴물의 마음을 이해할 때도 있다. 우리 모두는 사실 두렵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배척한다. 그것을 알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접점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살고 있는 '노웨어'와 오르고의 연구소가 만나는 장면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모든 것의 최고 기술이 집약되었지만 생명들을 자신의 아래로 보고 실험하는 곳인 '오르고', 우주적 존재가 죽고 남은 해골머리에 온갖 우주의 종족이 모여 사이좋게 사는 곳인 '노웨어'. 두 거대한 물체가 조우하는 것은 배척과 공존, 혐오와 사랑, 이기와 이타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결말을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고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사는 생명이 아니다. 내 몸속에는 수많은 박테리아가 나와 공존하고 있고, 내 주변에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이 같이 살고 있다. 또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성별,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나이의 사람들과 같이 산다. 때로는 서로의 말에 상처받기도 하겠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위해 안아주는, 그래서 결국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결국 마지막엔 관객들도 그루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영화에서는 라쿤을 관객들이 알기 쉽게 '너구리'로 번역했는데, 사실 틀린 번역이다. 라쿤과 너구리는 얼굴 모양과 눈 주위 무늬가 비슷할 뿐 종부터 다른 유전적으로 먼 동물이다. 동양의 너구리는 개과 동물이고 실제로 개랑 비슷하다. 북미의 라쿤은 손을 원숭이처럼 잘 쓰는 라쿤과 동물이다. 그런데 처음 동서양에서 서로 라쿤과 너구리를 보았을 때 대체할 말이 없어서 동양에서는 라쿤을 '아메리카 너구리'라고 불렀고, 미국에서는 너구리를 '라쿤 독'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런 네이밍 자체가 다른 동물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행위였다.
*영화의 첫번째 쿠키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좀 희석시키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지극히 미국적인 엔딩이라고 느껴서 좀 웃겼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주고 이렇게 끝낸다고?' 하는 느낌이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