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고 싶다는 열망은 인간이 가진 오랜 꿈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넘보지 못하도록, 생명의 나무로 가는 길목을 불칼을 든 천사 케루빔에게 지키게 한다. 인간은 내가 죽는 것도 두렵지만,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는다면 더 견디기 힘들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다. 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삶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사후에도 영혼이 살아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사람들은 안심시킨다. 기독교에 따르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이고, 현세의 일로 심판을 받는다. 그 말을 굳게 믿고 로마의 통치 아래 순교를 기꺼이 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죽음과 같은 영원한 이별이 찾아올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분을 잃었을 때는 누구나 사랑과 삶에 대해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착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내 삶을 깨트린다. 사랑이 집착으로 바뀌면, 그 사랑은 고통을 가져다준다.
어떤 이는 자신을 끊임없는 집착의 고통 속으로 일부러 밀어 넣으면서, 그 사랑을 기억하고 확인하려 한다. 대상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집착을 끊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 사랑의 대상이 온전히 소멸하도록 두는 것, 지나가는 것을 잡으려 하지 않는 것,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불교의 고집멸도(苦集滅道)다.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며, 그것을 소멸하려면 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사성제는 열반으로 이르는 직접적인 길이라고 한다. 모든 고통의 원인인 집착을 버리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천년을 흐르는 사랑, 2006>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The Fountain>은, <파이(π)>로 데뷔하고 <레퀴엠>으로 유명해져 떠오르는 천재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세 번째 작품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집착을 하는 삶의 고통과 번뇌, 집착을 버림으로써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기독교의 선악과와 마야 문명의 설화를 섞어서 통찰했다.
원래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나오는 대형 블록버스터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난해함 때문에 흥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워너브라더스는 예산 문제로 대런 아로노프스키를 압박했고 결국 브래드 피트는 다른 영화 <트로이>를 찍으러 가버렸다. 그 뒤로 케이트 블란쳇도 빠지고, 주연으로 러셀 크로우가 물망에 올랐으나 그것도 무산되며 제작비가 7000만 달러에서 3500만 달러로 줄었다. 이미 마야 피라미드 세트는 다 지어진 상태였으나 영화 제작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 사이 대런은 영화 시나리오를 코믹스로 출판했다.
그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연인이었던 레이첼 와이즈와 동거 중이었는데, 절망에 빠져 집에 틀어박혀서 플스나 하는 대런에게 용기를 주고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독려했다고 한다. 결국 러셀 크로우의 뒤를 이어 휴 잭맨이 남주를 맡고, 휴 잭맨의 추천으로 여주를 레이첼 와이즈가 직접 했다. 엑스맨 때도 러셀 크로우가 자기가 일정 때문에 울버린을 못하자 휴 잭맨을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던 영화가 엎어지면 감독은 심하게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런 좌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어 만들었기에, 이 영화는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피땀이 서려있다. 디테일한 연출과 편집은 감탄을 자아내며, 세심한 연기와 미장센, 신비함과 깨달음의 시나리오, 클린트 만셀의 영화 OST까지 모두 황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심지어 제작비가 줄어서 특수효과에 돈을 쓸 수 없게 되자 우주와 성운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촬영기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박테리아, 세포 등을 초접사로 촬영해 우주를 표현할 CG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도 맞아떨어지게 되어 기존 영화 CG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의 우주를 만들어냈다. 전체 영화에 들어가는 CG를, 이 기법으로 단 14만 달러 (약 1억 5천만 원)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애를 써가며 만든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흥행은 실패했다. 3500만 달러가 들어갔으나 세계적으로 150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고, 전문가 평점도 높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스탠리 큐브릭과 비교하며, 아름답지만 난해한 영화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파이>, <레퀴엠>으로 이어지던 검은 광기와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들이, 이 작품에서 비로소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모토로 피어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이후에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더 레슬러>로 호평을 받으며 부활하고 <블랙 스완>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사랑과 종교적 깨달음을 통찰했지만, 로맨스를 좋아하는 관객과 종교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두 군데에서 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영화. <천년을 흐르는 사랑>은 집착을 어떻게 극복해내고 있을까.
일단, 한국 마케팅 팀에서 내놓은 영화 설명이었던 16세기 스페인과 21세기 현대, 26세기 우주를 넘나드는 사랑이야기라는 말은 무시하자. 그래서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라고 제목을 바꿔서 개봉했지만... 저 말과 제목 자체가 영화를 이해하는데 방해만 준다. 영화의 세세한 부분의 스토리를 이해해야 하므로, 스토리 소개와 해석과 함께 다루어 보았다.
이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째는 현실이다. 토미(휴 잭맨)는 암을 연구하는 의사이고, 그의 부인은 이지(레이철 와이즈)이다.
둘째는 책의 내용이다. 이지는 영화의 제목과 같은 'The Fountain(샘, 분수, 원천)'라는 책을 쓰고 있다. 내용은 신대륙 발견 즈음의 스페인이다. 토미는 그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토마스라는 충직한 기사와 이자벨 여왕의 이야기에 자신과 이지를 대입시켜 상상한다.
셋째는 우주를 가로지르며 여행하고 있는 토미의 모습이다. 우주를 날고 있는 투명한 구슬이 있고, 그 안에는 승려복장을 한 토미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이 함께 있다. 이곳에서 토미는 나무의 껍질을 아주 조금씩 먹으며 살아가고 있고, 몸에 문신을 새기고 태극권으로 몸을 단련하고 명상하며 일과를 보내고 있다.
현실의 토미와 이지 - 죄책감과 집착의 시작
토미는 암을 연구하는 의사다. 그는 암 연구에 빠져, 부인인 이지에게 소홀히 대한다. 눈이 오니까 산책을 하자는 이지에게 바쁘다며 퉁명스럽게 대한다. 잠시 후 그는 후회하며 이지를 부르며 나가지만, 급한 수술이 준비되어있어 이지에게 갈 수가 없었다. 이 수술을 준비하면서, 토미는 결혼반지를 빼놓았다가 잃어버린다. 반지 - 링 - 원. 순환하고 연결되는 상징을 이곳에서 잃어버림으로써, 그녀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여긴다. 토미는 이 일을 두고두고 자책한다.
집으로 돌아오자 이지는 눈으로 덮인 지붕 위에서 맨발로 별을 보고 있다. 그 별은 오리온자리의 오리온성운이다. 오리온성운은 별을 둘러싼 성운이라 금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지는 오리온성운에 대한 마야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은 마야인들의 사후세계인 '시발바'라고 한다. 마야인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며, 그곳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이지는 말한다.
"저 별은 언젠가 폭발하고 새 별이 탄생할 거야. 곧 죽어가는 별을 사후세계로 정하다니, 멋지지?"
그리고 자신이 쓰고 있는 책의 내용이 스페인에서 시작해서 저 별에서 끝난다고 이야기해 준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지는 뇌종양이 있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이지는 이미 이전부터 몸이 안 좋은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부터 죽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토미는 자신이 암 연구소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죄책감에 빠진다. 그의 연구소에서는 남미에서 가져온 신비한 나무의 식물 합성체로 만든 약이 노화를 방지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그 약으로 암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알자 토미는 절망에 빠진다.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집착에 빠지기 시작한다.
책 속의 토마스와 이자벨 - 집착의 어두운 근본
이지가 쓴 책 속에는 기사 토마스와 여왕 이자벨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토마스는 토미의 긴 이름이고, 이자벨은 이지의 긴 이름이다. 이자벨 여왕은 실재했던 스페인의 여왕으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도록 적극 후원했던 사람이다. 이지의 책 앞부분은 그 이자벨 여왕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창작 내용이다. 아까 현실에서도 이지는 마야문명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야문명에도 생명의 나무가 있다. '세이바 나무'라 불리는 것인데, 놀랍게도 마야인들에게 십자가는 이 세이바 나무, 즉 생명의 나무를 상징한다. 실제로 16세기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때, 십자가와 생명의 나무가 일치해 원주민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기 쉬웠다고 한다.
실제 세이바 나무의 모습
이렇게 기독교의 생명의 나무와 마야문명의 생명의 나무를 연결시켜, 이지는 이자벨 여왕의 명을 받아 생명의 나무를 찾아 나서는 기사 토마스의 이야기를 쓴다. 여왕은 토마스에게, 생명의 나무를 찾아오면 그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반지를 증표로 준다. 토마스는 여왕을 섬기는 아주 충직한 기사지만,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과 약속으로 토마스의 충성심은 사심이 되어간다. 동료들이 대부분 죽어가는 험난한 원정 속에서도 여왕이 준 반지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 그의 욕망과 집착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다짐한다.
이 영화에서 '감각'은 집착을 상기시킨다. 냄새, 털, 접촉, 살을 찌르는 문신. 모두가 죽음의 위협 속에 스페인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토마스의 충성심은 집착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마야 원주민의 공격에 토마스 군대는 모두 죽고, 토마스는 피라미드로 올라가라는 위협을 받는다. 마야의 관행대로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마야 제사장은 피라미드 위에서 산채로 제물의 심장을 꺼내고, 머리를 잘라 계단 아래로 굴렸다고 한다. 토마스는 제물이 되기 위해 올라갔다. 죽음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그곳에는 마치 성서의 케루빔처럼, 불의 칼을 들고 있는 마야의 제사장이 있다. 제사장은 토마스를 상처 입혀 쓰러트리고 불의 칼을 휘두른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들은 영화 마케팅 팀에서 배포한 '1000년 전 전생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모두 이지가 창작한 책의 이야기라고 해석해야 맞다. 이지는 이 책을 통해서 마야의 피라미드 안에 숨겨진 생명의 나무가 집착과 죽음, 해탈과 탄생이 함께할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오리온성운처럼 모든 것의 죽음이자 '근원' 즉 'The Fountain'이라 생각했다.
시발바로 향하는 토미와 생명의 나무 - 집착에 대한 마음속 갈등
별빛이 가득한 어두운 공간, 생명의 나무를 뿌리째 담은 방울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승려의 복장을 하고 머리를 삭발한 토미는 그곳에서 마치 의식처럼 아주 오래 계속해서 반복된 일상을 하고 있다. 생명의 나무껍질을 조금씩 먹으며 생명을 연장하고, 나무 위에서 가부좌를 틀며 명상하고 별빛 속에서 태극권을 연마한다. 앞서 <쿵푸란 무엇인가> 글에서도 언급했듯, 쿵푸-특히 태극권 같은 내가권은 동작에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 실루엣으로 나오는 잠깐의 동작을 위해 휴 잭맨은 태극권을 7개월 동안 수련했다 한다.
마케팅팀이 배포한 시놉시스에 따르면 '1000년 후 미래'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배경의 장면들은 그냥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이라기엔 석연치 않다. 분명 특정한 상징들로 보면 나무가 이지임은 분명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오리온자리에 있는 오리온성운, '시발바'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 옆에 나타난 이지의 환영이 나타나고 토미는 과거를 반복 재생하듯 똑같이 짜증을 낸다.
그것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의 반추적 사고를 나타낸다. 토미는 반지를 잃어버렸던 날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계속해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는 똑같이 반응한다. 가장 죄책감을 느끼던 그때로 돌아가, 계속해서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오리온성운으로 가고 있지만, 그건 실제 오리온성운의 모습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토미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던 그 남미에서 가져온, 생명의 나무일지도 모르는 세포 샘플의 모습이다. 또 토미는 언듯 깨달은 승려처럼 보이지만, 깨달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 자신의 잘못과 이지의 죽음에 집착한다. 토미는 이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계속 책망하는 굴레에 가둬버렸다.
이지의 책은 '토마스가 제사장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끝나고 마지막 12번째 챕터는 비어있다. 성경에서 12는 세상을 이루는 완전한 수다. 12 사도, 12지파, 1년의 12달. 12가 마지막 챕터인데 결말이 없다. 토미는 그녀와의 사랑이 결말 없이 미완성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분노하고 자책한다.
토미는 이 책을 완성해달라며 이지에게 선물 받은 잉크와 펜이 눈에 들어온다. 이지가 쓴 책의 결말을 토미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그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인 것 같은 자책감과,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펜을 든다. 그리고 반지가 있어야 할 빈 손가락을 펜으로 찔러 문신을 새기기 시작한다. 설명할 수가 없는 토미의 모든 아픔이 그 행위로 나타난다. 이 장면은 영원히 그 아픔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시발바로 향하는 우주선에서, 토미의 팔에는 그 반지 문신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무수한 링 문신이 온 팔을 감싸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의 고통을 끝없이 기억하려는 토미의 모습은, 사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집착의 화신인 것이다.
죽어가는 나무를 데리고 시발바로 향하던 토미. 이제 토미는 시발바에 도착했다. 그런데 같이 가던 나무가 죽어버리고 만다. 현실에서 이지를 살릴 수 있는 약을 개발하자마자 죽어버린 상황이 또 재현된다. 그는 큰 절망에 빠지고, 또다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때 다시 이지의 환영이 나타나 기계처럼 그때의 상황을 반복한다. 완성시켜달라는 말. 토미는 끝을 모른다며 계속 부정한다. 계속해서 죽고 좌절하고, 완성시켜달라 하고, 모른다는 상황이 반복된다. 집착은 자신을 끊임없는 고통 속으로 일부러 밀어 넣는다.
해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로 사라져 버릴까? 영원한 이별일까? 아니면 영혼의 세계에서 같이 살아갈까? 집착의 화신이 된 토미는 이지의 죽음뿐 아니라 이제 자신의 죽음도 걱정하고 있다. 생명의 나무가 죽어서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나무의 껍질을 먹고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고통을 기억할 거라는 집착, 그녀를 살리겠다는 집착은 사실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발바는 '죽음'이다. 이야기의 끝을 모르겠다며 고통스러워하는 토미, 즉 죽음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토미 앞에 이지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
"곧 알게 돼"
그 수많은 날 동안 자책하고 몸을 찌르며 고통을 상기시키던 그가, 시간이 흘러 고통을 고통으로도 느낄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집착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제야 토미는 알게 된다. 생에 대한 집착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고, 집착을 버리고 해탈함으로써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집착의 화신인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토미는 환하게 웃는다. 시발바의 환한 빛이 이지와 토미를 감싼다. 마음속에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받아들임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집착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현실과 책 속의 이야기는 해탈의 순간으로 인해 완성이 되기 시작한다.
현실 속에서 눈을 보러 가자던 이지의 말에 짜증 내던 그 순간, 수술 때문에 이지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던 그 순간, 다시 돌아온 반추적 사고에서 그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일을 놓고 이지를 만나러 간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수렁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시발바로 향하던 승려 토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발바 앞에서 가부좌를 튼다.
제사장 앞의 기사 토마스는 갑자기 해탈해서 가부좌를 튼 승려 토미의 모습이 된다. 토마스가 해탈한 토미의 모습이 된 것은, 마지막 챕터를 쓰기 위해 작가(창조주)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창조주를 몰라봤다며 자신을 죽여달라 목을 내어준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를 발견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 탐욕으로 여왕의 반지를 끼워서 모든 것의 순환을 완성하려고 한다. 탐욕과 집착은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그는 여왕의 반지를 떨어트린다. 정확히 말하면, 탐욕과 집착으로 기사 토마스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토미가 책의 마지막을 쓴 것이다. 탄생은 곧 죽음이었고, 죽음은 곧 탄생이었다. 이지가 하려던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the Fountain'책의 마지막이 무엇인지 토미 스스로 깨달아 완성하면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시발바의 앞에 가부좌를 튼 해탈한 토미의 마음은, 기사 토마스가 떨어트린 여왕의 반지를 들었다. 책을 완성시킨 깨달음을 그대로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집착을 버림으로써 탄생을 완성하려 하는 것이다. 반지를 끼고 모든 순환의 고리를 완성한 순간, 집착은 시발바의 폭발에 의해 죽는다. 별이 폭발해 죽음으로써 내뿜는 성간 먼지들은 또 다른 별들이 만들어지는 재료가 되며, 별이 죽음으로써 또 다른 별이 태어난다. 토미는 그렇게 집착에서 벗어났다.
모든 것의 반전, 이지의 계획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반전이 있다.
'오리온성운을 마야인들은 사후세계 시발바라고 불렀으며, 곧 폭발할 별이다'라는 이지의 말은 사실 거짓말이다.
오리온자리에는 곧 폭발할 것이라 예상되는 다른 별이 있긴 있다. 삼태성 위쪽의 베텔기우스다. 이 별은 밤하늘에 11번째로 밝고 거대한 적색 초거성으로, 곧 수명을 다해 폭발하기 전 단계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초신성이 되는 건 수백만 년 내다. 삼태성 밑에 있는 오리온성운은 산개성단을 품고 있는 발광 성운으로, 마야인들의 창조설화가 얽혀있는 곳이 맞다. 하지만 오리온성운은 죽어가는 별이 있어서 밝은 게 아니라, 그 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고 있어서 밝은 것이다. 넷플릭스의 <IMAX: 허블 3D>를 보면 오리온성운에서 어떻게 별이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다. 즉, 오리온성운은 사실 별이 태어나는 창조의 장소이긴 하나, 죽음의 장소는 아니다.
오리온성운은 마야인들에게 '우주의 화로'로 불린다. 마야인들은 52년마다 '우주의 화로'에 불을 새로 지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주가 52년마다 새로 창조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로에 불을 지피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실제 마야인들의 집에는, 오리온자리의 삼각형 모양의 돌이 있고 그 가운데 오리온성운을 상징하는 화로를 놓았다. 매년 8월 13일, 오리온이 은하수와 황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떠올라 하늘의 최고점에 도달할 때 창조의 세 돌에서 '우주의 화로'가 생기고, 옥수수신 '운 운나푸'가 다시 태어난다는 전설이다. 보다시피 실제 창조와 관련된 장소는 맞지만, 이지의 말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마야인들이 그곳을 '시발바'라고 불렀다는 것도 오로지 이지의 말이다. 사실 시발바는 기독교에서 지옥과 같은 곳으로, 악마가 사는 지하세계를 말한다. 즉, 이지는 판타지 책을 쓰기 위해 마야의 창조설화를 가져와 상상해서 엮은 것이다. 초반에 이지가 별을 보며 이야기할 때, 거의 다 썼다고 하자 토미는 언제 볼 수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지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실인양 토미에게 이야기하며, 마지막에는 토미에게 책을 완성해달라는 말까지 한다.
이건 모두 이지의 계획이다.
이지는 토미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챕터를 토미 스스로 완성해 나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래서 실제 오리온성운과 다르게 창조의 별과 죽음의 별을 하나로 합치고,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난다'라는 책의 교훈이 완성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주입했다. 그리고 토미는 이지의 세계관 안에서 상상하며 책을 보았고, 마음속에서 시발바로 향하는 우주선을 탔다. 그리고 결국 이지의 계획대로 집착의 괴로움의 마지막 순간, 계속 '완성해줘'라고 기계처럼 되뇌이는 환영 속 이지의 말을 들으며 집착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삶에서 큰 고난이 닥치면 그것을 인정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정말 힘들다. 집착은 곧 번뇌다. 그래서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고, 그것이 곧 해탈이다. 집착은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불신하거나 비관적인 자세를 갖는 게 해탈이 아니다. 그 마음은 집착을 버리기 위해 나를 또 다른 번뇌의 힘을 빌렸을 뿐이다. 이미 끝난 일들을, 집착으로 인해 망치는 일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집착은 두려움에서 온다. 두려워하지 말라.
집착을 버리고 죽을 때, 당신의 손에는 새로운 것이 쥐어져 있을 테니까.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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