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장래희망, 취미, 특기를 쓰는 칸 앞에서 조금 망설이게 된다. 특히 '장래희망'이라는 건 내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적는 것인데, 흔히 직업이 떠오른다. '직업'은 대학 진로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직업'이 곧 '인생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직업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어릴 때는 '대통령', '연예인', '과학자', '만화가' 등의 직업이 영원불멸한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직업은 아주 한시적이고 유동적이며 이름을 붙이기 나름인 것이다. 그리고 첫 직업은 대개 20-30대에 결정되는데, 인생은 그 뒤에도 아주 길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되면서 평생 하나의 직업만 가지고 산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었다. 어제 되려고 했던 그 직업이 오늘은 없어질 수도 있다.
인생의 목표는 점이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방정식을 넣으면 좌표 위에 점들이 모여 선이 그려진다. 인생은 굴곡진 과정이다. 길에서 춤추고 있는 풍선인형마냥 변화무쌍한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 미지수 x를 어떻게 대입한 방정식이 되어야 미래의 내가 원하는 곡선이 될까. 그러려면 나의 적성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언브레이커블>은 반전 영화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작품이다. <식스 센스>가 데뷔작은 아니었지만, 당시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의 뒤를 이은 최고의 반전영화로 손꼽혀 나이트 샤말란의 이름을 알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를 찍을 때 이미 차기작에 출연하기로 되어있던 브루스 윌리스와 작업을 했다. 이 영화는 <식스센스>로 엄청난 대성공을 거둔 바로 다음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는 '히어로의 탄생'을 현실적으로 다루며, 미국 코믹스에서 나오는 히어로물의 클리셰들을 비튼 영화다. 영화가 나오던 2000년도에는 고전적인 히어로 - <슈퍼맨>, <배트맨> 등이 너무 우려먹어져서 영화도 비판받고 재미없어질 즈음이었고, DC와 마블이 아닌 새로운 히어로인 <스폰>역시 실패했다. 그 뒤로 만화 원작 영화들은 제작이 취소됐다. 사람들은 몇십 년을 우려먹은 히어로물보다는 세기말과 밀레니엄 주제, 영화적인 신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다른 히어로 액션물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매트릭스>, <X-MEN>은 이제 막 1편이 개봉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히어로물의 클리셰를 비튼 영화, 화려한 액션이나 CG도 없는 이 영화는 제목만 보고 히어로물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충격과 공포의 반전영화 <식스 센스> 감독의 차기작 아닌가.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하진 않았지만, 관객들과 평단은 좋게 보지 않았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겐 <식스 센스>가 저주처럼 따라붙었다. 그의 모든 영화는 대부분 괜찮았지만, 관객은 '반전이 뭘까'에만 집중하며 영화 내내 그의 영화를 분석하고 뒤집다가 생각보다 못한 반전이 나오면 혹평하기 일수였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그 이후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윌 스미스와 찍은 <애프터 어스>에서 악평의 절정을 찍으며 과연 차기작을 찍을 수 있느냐는 말도 나왔다. <식스센스>로 자신감이 붙었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언브레이커블>로 만화 원작이 아닌 자신만의 히어로 영화를 트릴로지(3부작)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평이 좋지 않아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2015년 <더 비지트>라는 저예산 호러영화로 성공을 거두며 부활을 알렸다. 게다가 당시에는 좋지 못했던 평을 들은 <언브레이커블>이, <매트릭스 트릴로지>, <X-MEN 트릴로지>,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등의 대성공으로 대중들에게 히어로물이 큰 인기를 끌며 '이 영화가 히어로물의 이런 면을 비틀었구나'라는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평가가 올라갔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냥 그런 영화라고 해도 나는 물론 개봉 때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의 멋지고 대단한 점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며 다녔지만.
드디어 완성된 <이스트 레일 177 트릴로지> 나이트 샤말란 감독도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듯하다. 부활을 알리자마자 바로 찍은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언브레이커블>과 같은 기차, 이스트 레일 177 사고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3 아이덴티티>가 대성공을 거두자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그 뒤에 이 영화의 주인공중 하나인 '미스터 글래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글래스>를 만들어서, 결국 <이스트 레일 177 트릴로지>를 완성했다. 나이트 샤말란의 20년을 이어온 뒤끝도 대단하다. 일반적인 히어로물과는 달라서 여전히 호불호는 갈렸지만, 그만의 독특한 메시지와 스릴러물의 분위기를 담은 영화들로 인정받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면, 트릴로지를 다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언브레이커블>은 단순한 히어로 영화들의 고뇌와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 데이빗 던은 계속 슬픔과 의문에 빠져 있다. 자기 자신조차도 왜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직업과 적성에 관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천명(天命)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운명, 무언가를 하기 위해 타고난 천성 등을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주로 개인적인 바람보다는 내가 타고난 것들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주팔자나 별자리와 같은 신점에서부터, 타고난 신체, 가정환경, 사회의 상황 등이 천명을 만들어준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잘하는 것이 있으면 칭찬을 받게 되고 칭찬을 받으면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적성을 일찍 깨닫고 그걸 좋아하게 되면, 보통 자신의 취미와 장래희망이 일치하게 된다. 그것에서 큰 성공까지 거두면 더할 나위 없지만 보통 그럭저럭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적성과 자신의 '장래희망'이 다를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되지도 않을 학과에 지원한다거나, 부모나 주변 사람의 압박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에 빠지게 되어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자신의 재능을 다 못쓰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어떤 특정한 직업이 아니라 재능과 취미로 봐도 그렇다. 싸우는 건 싫어하는데 내 주먹이 엄청나다면? 성격은 히키코모리인데 외모는 모델이라면? 하고 싶은 건 개그인데 신체가 태릉선수촌이라면?
<언브레이커블>은 이 질문을 아주 현실적으로 접근해간다. 현실적인 '히어로의 재능'을, 가장 먼저 '튼튼한 신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천적으로 뼈가 약하게 태어난 엘라이자(사무엘 잭슨)는 자신이 약하게 태어난 병에 걸렸다면, 선천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이스트 레일 177 탈선사고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난 유일한 생존자인 주인공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에게 메모를 남기고 자신의 화랑으로 오게 한 후, 집요하게 자신의 이론을 설파한다. 그 이론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틀려 보이기도 하면서 기대와 실망과 긴장감을 이어간다.
엘라이자의 말을 듣고 그를 사기꾼 취급하게 되는 데이빗. 그러나 대화 도중 데이빗은 이런 말을 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난생처음으로 슬픈 기분이 들지 않았어.
그 메모가 내게 어떤 해답을 줄 것 같았거든."
데이빗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평생 고민을 해왔었다. 엘라이자는 데이빗에게, 아파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 데이빗은 대학 때 교통사고를 당해 미식축구 선수를 그만둬야 했다고 한다. 그럼 그 슬픈 기분은 자신의 꿈이었던 미식축구 선수를 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일까? 영화 초반에 나오는 기차에서의 데이빗의 대화에서 "미식축구를 별로 안 좋아한다" 라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직업이 대학 미식축구 경기장 경비원인 것들은 그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들을 거울 속에서 바라보는 장면들이 종종 있는데, 이것은 주인공이 자아를 찾고 싶어 방황하는 내면적 시선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이는 뒤집어진 시선과 화면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서 해답을 찾아내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이름도, 엘라이자는 성서의 엘리야(Elijah)의 미국식 발음이고, 위대한 예언가의 이름이다. 데이빗은 성서의 다윗(David)의 미국식 이름이다. 바로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친 히브리인들의 영웅이자 위대한 왕의 이름이다. 더군다나 데이빗 던 David dunn이라는 이름은 마블의 스탠리가 창조한 여타 히어로의 네이밍처럼 성과 이름의 이니셜이 같다. 거울과 뒤집어진 화면들은 영화가 세상을 다르게 봐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엘라이자 역시, 수많은 골절을 당하며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 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며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고뇌 속에 살아왔다. 거기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다 준 건 엄마였다.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도록 선물을 집 밖 놀이터에 두고, 가서 열어보라고 한 것이다. 선물은 히어로물 만화책이었다. 거기에서 엘라이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코믹스 매니아가 된다. 그리고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어딘가에 있어서 자신 같은 약한 사람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했거나 하고 있지 못하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직업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취미라고 해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취미마저 원하는 걸 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슬픈 기분일 것이다.
현실적인 직업의 선택
데이빗이 히어로일지도 모른다는 엘라이자의 말에 데이빗의 아들 조셉 던(스펜서 트리트 클라크)은 홀랑 넘어가 버리고, 데이빗은 일라이자를 사기꾼으로 경계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엘라이자는 너무 허황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은 만화의 이야기고 현실은 이럴 것이다"라면서 현실적인 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몸이 남달리 튼튼했었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았을 거다. 그러니까 그 험한 미식축구 선수를 했을 테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겠지.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데이빗은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아니, 사실 잘 보면 보이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마약을 소지한 걸로 생각한 범죄자. 사실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카메오 출연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재능이 있고 좋아한다 할 지라도, 그것을 직업으로 할 때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방구석에서 나만 끄적끄적 그림을 그릴 땐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좋아하다가, 실제 미대 입시에서 전국의 입시생과 부딪히거나 도전만화 같은 코너에서 전국의 몇 만 명 되는 웹툰 지망생들과 경쟁해야 할 때다. 이게 정말 나의 재능인가? 이 정도를 재능이라고 할 수 있나? 취미로 한다고 해도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 하나? 이 직업이나 취미보다는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게 더 좋은 삶인 건 아닐까? 나의 직업이나 취미 선택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또 '좋아하고 재능 있는 일로 먹고 살 정도로 돈을 번다'는 건 엄청 행복한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순간 피곤해진다. 어떤 일의 프로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니라 돈을 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 내 일에 가치를 정하고 그에 따라 돈을 받고, 철저히 클라이언트의 입맛을 존중하며 마감을 철저히 지키는 게 프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재능이 있었고 사랑했던 그 일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요리를 좋아해서 요리사가 되었지만, 집에서는 요리를 절대 하지 않는 요리사처럼. 사랑했던 사람과 썸을 타거나 연애할 때는 괜찮았지만, 결혼하고 나니 애정이 식는 것처럼. 로망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고집을 부려서 선택한 직업이나 취미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인생의 목표가 직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직업은 나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대변해주고, 삶의 많은 시간을 쓴다.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고 재능이 없다면 정말 힘들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보통 '돈 버는 직업 따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라는 선택지가 있다.
히어로물에서 히어로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는 토르 조차, 원래 직업은 아스가르드의 왕이다. 지구의 일에 신경 쓸 때는 좋아하는 여자와 친구들이 있어서거나 지구에 동생이 문제를 일으켜서 잡으러 갈 때이다.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이언맨도 스파이더맨도 헐크도 다 직업이 따로 있고 히어로는 돈이 되지 않는 일종의 '봉사활동 취미'인 셈이다. 캡틴 아메리카나 블랙위도우 정도가 직업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국가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특이한 케이스인 거고.
'장래희망 = 직업, 취미 = 동호회'로 적는 것보다, '장래 희망직업 = 돈 버는 직업, 취미 = 즐기는 직업'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직업에 대한 인식개선이 많이 필요하고, 직업의 급여 격차가 크지 않도록 사회복지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북유럽 등지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이런 식으로 돈 버는 직업이 내 삶을 잠식하지 않고, 여가시간에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직업 소득 격차가 크고, 직업에 대부분의 삶의 시간을 바치도록 강요하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내가 히어로의 재능을 갖고 있다면, 히어로를 직업으로 갖는 게 최선의 선택지다. 하지만 소방관 정도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직업이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결국 히어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걸로 제대로 자아실현을 하려면 데이빗처럼 다른 직업으로 적당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데이빗의 육체적인 능력과 범인을 알아보는 직감은 현실적으로 축구장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갖기에 아주 유리하긴 하다. 데이빗은 다분히 현실적인 직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여기서 영화의 반전이 있다. 데이빗이 운동을 그만두었던, 그 당시의 교통사고다. 부인인 오드리(로빈 라이트)와 같이 사고가 났었는데, 사실 사고 당시에 오드리는 데이빗이 축구선수인 것이 못마땅했다. 오드리는 비폭력주의자인 재활치료 의사다. 데이빗이 축구선수를 계속한다면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데이빗 자신도 다치는 일이 빈번했을 것이다. 오드리는 그게 싫었고 그럼 아마 오래가지 못하고 헤어질 거라 생각했다.
엘라이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사고 당시 다치지는 않았지만 운동은 길어야 10년, 하지만 사랑은 영원하지"라는 말을 하며 데이빗이 운동을 그만두기 위해 핑계를 댔을 거라고 한다. 데이빗은 자신조차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스스로가 다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을뻔한 이야기를 엘라이자에게 해 주며,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하게 죽을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엘라이자는 그 이름의 뜻처럼 자신의 사명이 히어로를 예언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좀처럼 되지 않자 실의에 빠진다. 그러다 다시, 만화책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코믹스에 따르면 히어로는 완벽하지 않고 반드시 약점이 있다. 데이빗의 몸은 절대 다치지 않는 몸이지만, 물에 빠져 죽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인 셈이다. 그 이야기를 엘라이자에게 들은 데이빗은 사고 난 기차가 있는 창고에 가본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커다랗게 구멍이 나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예전에 났던 교통사고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은 사고 당시 자신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오드리를 구하기 위해 괴력까지 발휘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와주러 와서 다치지 않았냐고 묻는 그 순간, 그는 그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이 사고라면 주변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고 운동을 그만둘 수 있다. 사랑을 지킬 수 있다. 그는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영원히 봉인해버렸다.
영화 초반부터 오드리와의 사이는 좋지 않고 각방을 쓰며 이혼하기 직전인 상태로 나오는데, 그건 그냥 일반적인 부부의 권태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 못하게 한 슬픔이 계속해서 더 쌓여갔던 것이다. 그런 것이 쌓이면 나중엔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인 부인을 탓하게 된다. 그 슬픔은 교통사고 이후에 생긴 게 아니다. 평생 느껴왔다고 했다. 즉 사실은 미식축구를 했었어도 자신의 적성 때문에 만족하지 못할 사람이었다. 데이빗은 적성에 맞게 현실적인 직업을 선택했지만, 그 직업이 그의 재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내 적성과 직업이 맞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어딘가 삶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더라고, 결국 내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나의 삶은 겉돌게 된다. 데이빗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니, 모르려고 했다. 자신이 자기와 닿은 사람의 죄를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찾으면서, 내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된다. 데이빗은 드디어 정체성을 찾았다. 데이빗은 자신이 정말 잘할 수 있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성이 맞는 '취미'를 찾은 것이다. 자아를 찾게 된 데이빗은 그제야 오드리에게 마음을 열고, 슬픈 아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정적인, 혹은 가족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희생했을 때, 정작 자신이 그 희생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주변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육아를 위해, 내 재능을 봉인하고 일을 포기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부모님과 싸우고, 직장에서 부하직원에게 화를 풀고,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희생하며 선택한 길인데.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정한 고찰이 필요하다. 희생은 올바른 것이다. 하지만 남을 위한 희생만이 좋은 인생은 아니다. 삶은 적절한 선에서 자아실현을 하며 균형을 맞춰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자유는 방종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내 멋대로 자아실현을 하겠다고 모든 것을 등한시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빌런(코믹스에서의 악당)이나 다름이 없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히어로와 빌런은 한 끗 차이다.
과연 현실에서 내가 하는 자아실현은 나를 히어로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빌런으로 만들 것인가? 그건 누가 정해주는 것일까.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히어로가 자아를 찾고 히어로의 탄생으로 해피엔딩의 끝이 났어야 하는 시점에, 영화는 현실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당신의 적성은 당신을 무엇으로 만드는가.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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