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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Apr 09. 2021

<퍼스트맨> 만남이란 무엇인가

이 넓은 우주에서 당신을 만난다는 것

우리는 처음 눈을 뜨면 부모를 만나고, 가족을 만난다. 살아가면서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수많은 사람, 수많은 삶. 지구, 아니 우주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났을 때부터, 우주의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죽는 순간들이 합쳐져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지구 위에 수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만들어지며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있었다. 수많은 연이 연을 낳고, 그 연은 또 다른 연이 되어 하나의 스침이 아니라 접촉이 되고, 만남이 되었다.


영화 <퍼스트맨 (First Man, 2018)>은 그러한 수많은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가 만나 무언가를 이루고 감정이 싹튼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퍼스트맨>의 감독은 <위플래쉬>, <라라 랜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아카데미 최연소 감독상을 수상한 데미안 샤젤이다. 데미안 샤젤은 재즈 드러머를 꿈꿨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는 감독으로, 위플래쉬와 라라 랜드로 음악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열정과 아름다움, 흥겨움, 슬픔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음악영화라고 볼 수 없는 이 <퍼스트맨>에서도, 그의 '소리에 대한 감성'은 단연 돋보인다. 장면과 음악을 아주 적절히 섞어,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닐 암스트롱과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다큐 형식의 영화 연출에 힘을 불어넣는다. 특히 우주로 나가며 클라이맥스로 향할수록 그 센스는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전작들과 같은 흥겨운 음악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지루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시종일관 핸드헬드,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되고 우주선 안에서는 흔들림이 실제처럼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때문에 큰 화면으로 보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이 많았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괜찮았고 다양한 영화제에 초대되었지만,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해 흥행은 참패했다.


그러나 이 영화 안에는 다양한 만남, 즉 랑데부(Rendezvous)의 아름다움 들이 숨어 있다.





딸 캐런과 닐의 만남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에게 딸 캐런이 태어난다. 하지만 캐런은 병을 앓고 있다. 병 때문에 딸은 인지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고, 닐은 그런 캐런을 토닥이고 안아 잘 자라며 자장가로 The Mariners의 <I See the Moon>을 불러준다. "I see the moon, the moon sees me..." 닐에게 캐런은 달이다. 하지만 이때는 닐이 아직 달로 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다.


닐에게 아픈 캐런은 참 소중하다. 잠이 든 캐런의 머리칼을 만지는 안타까운 그의 손, 머리를 쓰다듬거나 키스하는 게 아니라 머리칼을 만지는 접촉. 닐에게 캐런과의 만남은 그 접촉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병 때문에 닐은 캐런의 내면과 깊이 마주할 수 없었다. 닐과 캐런의 만남은 슬픈 운명이었다. 캐런은 곧 죽게 된다.


닐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았다. 책상 정리를 한 그는 캐런의 팔찌를 서랍에 넣어둔다. 마치 닐이 마음속 서랍 안에 캐런을 넣고 닫았은 것처럼. 그리고 닐은 다음 날 바로 출근해 달로 가는 계획에 참여한다. 마치 마음을 다 정리한 듯이.


당시 미국이 달에 가는 이유는 소련과의 경쟁 때문이었다. 소련은 위성 발사와 생명체를 보내는 등, 미국보다 한참 앞서며 과학기술력을 과시했다. 냉전시대에 그러한 기술경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총성 없는 전쟁인 셈이었다. 그래서 캐네디 대통령은 아예 달에 사람을 보내기로 하고, 세금을 많이 써서 조금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닐은 자신의 가슴에 캐런을 담고, 그토록 노래로 불러주던 달을 캐런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내내 위험한 고비의 순간, 닐은 캐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빠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캐런에게 줄 최고의 선물을 위해, 닐은 목숨을 걸었다.





새로운 동료들과의 만남

닐의 가족은 나사 비행사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생활한다. 우주비행사 동료들과 가족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힘든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서로 힘이 되어주고 마음을 나눈다. 닐은 여전히 말수가 적고 유머감각은 없는 범생이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임무를 완벽하게 하려 애쓴다. 그의 정신력이나 섬세한 조종 능력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 닐의 목표는 오직 달뿐이다.


하지만 혼자 그렇게 달려왔어도, 동료는 동료다. 만나서 힘이 되어주던 동료들은 사고로 죽어간다. <퍼스트맨>은 마치 요새 "달에 간 것은 거짓이었다"라고 말하는 음모론자들에게 시위라도 하듯, 이 임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어제 같이 웃던 친구가 오늘 사고로 죽을 때, 닐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캐런을 마음의 우주선 속에 태우고 있는 닐은 그 죽음들을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지만, 여전히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동료들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의 무게가 날이 갈 수록 더해져 달에 가기 위한 강한 의무가 생겼고, 남들보다 냉정해져야 했으며 강해져야 했다.


동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닐은 중간중간 캐런을 생각하느라 동료들에게 냉정하게 대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그런 그의 사정을 잘 아는 동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만, 그렇게 떠나보낸 동료들이 죽을 때 닐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무표정하게 전화를 받지만 그는 항상 담담해야 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동료들의 죽음은 닐의 어깨를 짓누르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제 닐의 마음속에는 캐런뿐 아니라, 죽은 동료들까지 함께 한다.





제미니 8호와 에이지나의 만남

우주경쟁에서 소련이 한 발 앞서 나가고 있을 때, 미국은 한차례 도약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주선을 두 개 싣고, 모선과 착륙선으로 분리해 둘을 우주에서 도킹한 후 달까지 가는 것을 고안해냈다. 이 계획이면 달에 사람을 안전하게 내렸다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우주공간에서 '도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누구보다 좋은 평형감각과 정신력을 지닌 닐이 제격이었다.


우주 도킹은 아직 소련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즉, 닐이 타고 갈 제미니 8호와 무인 우주선 에이지나가 우주에서 만나는 일은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것을 확인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위성 궤도로 날아갈 우주선 제미니 8호를 타는 닐. 여기서 우리는 다른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우주선이 너무도 조악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가는 통로는 흔들리고, 우주선은 쇳덩어리를 얼기설기 붙인 것 같으며, 계기판도 엉성하다. 앉은자리 역시 너무 비좁고 어두우며, 밖을 보는 창은 너무나 작다.


당시엔 첨단기술이었겠지만, 우주선이라는 건 말 그대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기능'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쇳덩어리인 셈이었다. 그리고 발사 시에 벌어지는 그 심한 흔들림에 마치 연결시킨 나사와 땜질한 곳들이 다 떨어져 버릴 것 같다. 창으로는 밖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계기판도 아날로그라 흔들려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사실 보다보면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에서 대포를 타고 달에 가는 것과 뭐가 그리 다른가 싶다. 참 무모하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임무를 수행했을까? 하지만 닐은 그 조악한 우주선을 타고, 드넓은 궤도에서 에이지나를 찾아내고, 결국 도킹에 성공한다. 이것은 인류가 최초로, 우주공간에서 우주선끼리의 도킹을 성공시킨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왈츠를 배경으로 깔아서, 둘의 만남이 마치 남녀가 만나 우아하게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말 그대로 랑데부(Rendezvous)다. 제미니 8호와 에이지나의 만남으로 인해, 달착륙 프로젝트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한쪽에는 둥근 지구의 모습이 보이고, 한쪽은 광활한 우주. 그 광활한 공간에서 서로를 애타게 찾아 결국 만나게 되는 일은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내가 원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 같아 보여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살아가는 그 길에는, 나의 필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만남은 그토록 소중하다.


사람이 어른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산다는 것도 비슷하다. 어릴 때 바라본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은 마치 견고한 하나의 울타리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면 느끼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조악하고 부서지기 쉽게 만들어진 것이었는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인연이 닿아야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만남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부서질듯한 조악한 우주선을 타고,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누군가를 만나 랑데부하는 일 말이다.





달과 인류의 만남

달은 지구의 생명 탄생과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달이 만들어지면서 지구에 생명이 태어났고, 달의 조석력이 생명진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은 지배적이다. I see the moon, the moon sees me. 지구의 생명은 언제나 달을 보며 자라왔고, 달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달이 돌덩어리고, 달에도 사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이 지구의 표면을 벗어나 우주에 가는 일은, 생명이 바다를 넘어 육지에 올라온 것처럼 위험하고 모험적인 일이다. 지구라는 표면에 붙어사는 2차원적인 인류가 우주라는 거대한 3차원 공간으로 도약하는 일인 것이다. 차원의 도약이 오면 생각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진다. 우주로 향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별의 모습을 그제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일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객관화시켜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인류가 달에 가는 일은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강대국들의 우주경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영화에서 보이는 닐의 개인적인 욕심이라도 말이다. <퍼스트맨>에서는 지구를 벗어나 달로 향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갑갑한 화면에서 벗어나 우주선의 모습과 우주의 모습을 밖에서 보여준다. 계속해서 1인칭으로 좁은 창으로만 우주를 보는 모습에서, 우주선의 모습을 객관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갇혀있던 인류의 시선이 넓어진다.



이제 모선은 남고, 착륙선은 도킹을 해제하고 달착륙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있지만 결국 성공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감독이 묘사한 달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영화는 내내 잔잔한 음악, 거친 편집, 옛날 필름영화 같은 노이즈 섞인 화면 등을 통해 시종일관 과거를 보는 느낌으로 진행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해치를 열고 카메라는 착륙선 안의 공기와 같이 밖으로 빨려나가듯 나간다. 그리고 이 부분부터 영상은 IMAX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내내 핸드헬드로 흔들리던 화면도  멈추고, 음악은 고요해지며 화면은 해상도가 확 올라간다. 닐이 느낀 달의 광활함을 관객에게도 느끼게 해 준다.


닐은 착륙선에서 내려와, 한 발을 딛고 그 유명한 한마디를 남긴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인간은 달과의 만남으로, 우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앞으로 있을 새로운 도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생명체가 꿈꾸고 바라고 사랑하던 달과, 드디어 만난 것이다. 그리고 가슴속에 캐런을 태우고 있던 닐이라는 우주선은 드디어 달에 도착한 것이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닐과 부인이 서로의 손가락으로 랑데부를 하는 순간, 닐의 얼굴에 부인의 얼굴이 유리 위로 비치며 겹쳐진다. 마치 닐과 부인이 하나가 된 듯이.

만남과 헤어짐, 새로운 시작

광활하고 흑백의 땅과 하늘로 이루어진 세상. 닐은 마치 캐런에게 잘 보고 있냐는 것처럼 계속해서 천천히 둘러본다. 그리고 언제 가져왔는지 손에서 카렌의 팔찌를 꺼내 달의 크레이터 안으로 던지며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은 후에 사람들이 '실제 암스트롱이 달에 딸의 팔찌를 가져가 남기고 왔느냐'로 엄청 이슈가 되었다. 실제 닐 암스트롱은 이미 죽어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지만, 무언가를 남기고 왔다는 기록은 없다.


아까 말했듯 닐은 딸의 죽음을 가슴속 상자 안에 넣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는 그 뒤로 카렌을 품고 달에 가야만 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고, 딸을 태우고 달에 도착했다. 그리고 팔찌를 달에 던진다. 그가 카렌을 이곳에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다시 흘린다. 그렇게 닐은 그제야 딸의 죽음에 대한 짐과 아픔을 벗게 된다. 닐이라는 우주선은 마음속에 캐런을 태우고 달에 와서, 캐런을 달에 내려주었다. 달은 닐을 치유해주었다.


지구로 돌아와 나사의 격리실에서 부인과 만나게 된 닐은, 한참을 무표정하게 있다가 부인에게 손키스를 하고 둘 사이에 있는 유리벽에 손을 가져다 대며 그동안 없었던 웃음을 지어 보인다. 부인도 안심하며, 서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댄다. 마치 딸을 잃고 힘든 임무를 하며 멀어져만 갔던 둘 사이가 다시 랑데부를 하듯이. 닐은 딸의 일을, 부인은 닐의 일을. 마음의 짐을 덜은 두 사람은 이 만남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거기에서 힘을 얻고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큰 상처로 남는 만남과 헤어짐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서 만날 수밖에 없던 것들이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된다. 연은 연으로 이어진다. 지난날의 아픈 만남은, 오늘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아픈 만남이 있었기에 사랑이 가득한 만남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악연도 내 탓이 아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거대한 폭풍을 막을 수 없다. 온몸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폭풍 뒤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엎어지고 쓰러진 나를 누군가 손을 잡아줄 것이다. 아니면, 내가 바로 그 손을 내미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


바로 이렇게 당신과 내가 만났듯이.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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