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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Jul 22. 2021

<화이트 타이거>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길들이는 사회적 굴레

2021년, 넷플릭스에서는 '인도판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타이거>가 올라왔다. 이 영화가 ‘인도판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계급사회를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하고, <기생충>과 <화이트 타이거>는 각각 자국 빈민층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이 <화이트 타이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생충>과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아라빈드 아디가의 동명의 소설로,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그리고 이란계 미국 감독인 라민 바흐라니에 의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영화화되고, 2021년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원작이나 내용은 인도지만, 감독은 미국, 제작은 미국과 인도 합작 영화다. 그래서인지 영화 구성에서 발리우드의 특색인 화려한 뮤지컬, 권선징악 등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물론, 모든 인도영화가 다 뮤지컬인건 아니지만.


<화이트 타이거>에는 정말 깊이 있는 인도의 모습이 그려진다. 따라서 그것을 잘 모를 수도 있는 관객을 위해, '인도를 잘 모를 법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갖췄다. 어디까지가 진짜 편지이고 어디까지가 그저 속마음인지 모호하게 그려져 있지만, 덕분에 인도에 대한 큰 배경지식이 없어도 현재의 인도가 어떤 사회인지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원래부터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 다양한 계급, 다양한 종교 등이 섞여 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강제로 통합되고 분리되고 민주화를 욱여넣으며 너무나 많은 갈등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며, 부정부패가 많긴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고 선거 열기도 뜨거운 나라다. 인도는 대통령이 명예직으로 있는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총선이 중요하다. 저번 선거에는 유권자만 6억 명이었고, 선거는 1달에 걸쳐 실시하며 모든 투표는 전자투표로 한다고 한다. ‘1달에 걸쳐서 하는 전자투표’라는 점이 인도라는 국가의 모습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발람(아르다시 구라브)이 태어난 비하르 주의 가야지구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이라 계급 문제가 심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인도의 계급인 카스트제도를 반대하는 공산주의 반군이나 공산당이 꽤 득세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선거 때만 되면 폭동이나 테러가 일어나 지금까지 수천 명이 사망할 정도로 분쟁이 심한 지역이어서, 영화 내내 그러한 정치적 갈등도 주축을 이루어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이런 다양한 갈등과 계급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혹자는 인도 특유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을 말하곤 하지만, 철저히 빈곤하고 천한 계급으로 자라온 주인공은 그것을 '닭장'에 비유한다. 닭은 닭장에 길들여져 있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가 목이 잘리고 털이 뽑혀 죽는 것을 보면서도, 탈출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마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닭들은 주인에게 길들여져, 한 사람이 수많은 닭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것이다. 발람은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그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빛과 어둠. 빛과 어둠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과 길들여진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화이트 타이거’가 등장한다.


제목 <화이트 타이거>가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백호(白虎)를 말하는 것으로, 한 세기에 한번 나타난다는 전설의 호랑이다. 발람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 그의 영특함을 알아본 학교 조사관은, 발람에게 '너는 화이트 타이거다'라고 말해준다. 계급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 백호는 단순히 드문 호랑이가 아니다. 호랑이 DNA 속에는 색을 결정하는 유전인자가 있는데, 그 유전인자가 복잡하게 작용하면 아주 드물게 노란 호랑이가 아닌 흰 호랑이가 태어난다. 즉, 화이트 타이거는 실제로 옐로 타이거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동물인 셈이다.


어둠 - 가난과 가족, 계급사회에 길들여지다

발람은 그의 영특함을 알아본 조사관에 의해 델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마을은 '황새'라는 지주에게 1/3을 세금으로 바치고 있었으며, 그걸 채우지 못했을 시에는 빚이 되었다. 발람의 아버지는 발람을 교육시키고 싶어 했지만 빚을 갚지 못해 학교를 보내지 못했다. 가난은 굴레다. 가난한 자는 가난에 길들여진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어떻게 해야 버는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해지고, 자식마저도 가난하게 만든다. 가난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자신이 화이트 타이거라고 생각했던 발람의 꿈은 여기에서 한번 부서진다. 학교를 그만두고 가는 찻집에서 아무런 감정 없이 망치질을 하는데, 그 망치로 석탄을 깨부수는 모습은 화이트 타이거인 그가 '닭장'에 갇혀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이자 앞으로 벌어질 계급 탈출 서사를 암시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한번 더 부숴버린 사건이 생기는데, 그건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다.


인도 서민은 대가족 문화로, 가족 안에서는 할머니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권력이 얼마나 센지, 가족들은 거기에서 착취당하면서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할머니는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벗어나서 잘되는 것 보다도 가족(할머니)을 위해 돈을 모으고 바쳐서 수십 명이나 되는 가족을 안전하게 꾸려나가는 게 우선이다. 영화 안에서는 이 가족이라는 굴레가 계급사회의 굴레보다도 더 벗어나기 힘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발람의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착취당하다가, 결국 결핵에 걸려 쓰러진다. 두 시간이나 걸려 병원에 갔지만 의사도 없는 시골 병원 구석에서 누워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화장할 때, 시신의 발이 펴지는 것을 보며 발람은 아버지가 죽음에 저항한다고 생각했다. 계급을 벗어나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지지만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발람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린다. 영화 뒷부분에서도 조카와 같이 동물원을 찾아, 화이트 타이거를 실제로 보면서 기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세기에 한번 나타난다는 화이트 타이거. 자유와 개성,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의 상징이었지만, 정작 동물원에서는 우리에 갇혀서 정형 행동을 하며 발람을 쳐다본다. 우리에 갇힌 화이트 타이거를 자신처럼 느낀 것이다.

 '인도에는 천 개의 카스트가 있다'라고 발람은 말한다. 발람은 할와이 카스트인데, 할와이는 카스트에서도 바이샤에 속하지만 디저트를 만드는 천한 직종이다. 그중에서도 낮은 카스트로, 찻집에서도 차를 만드는 게 아니라 망치로 석탄을 부수는 천한 일을 했다. 인도는 겉으로는 민주주의지만 아직도 카스트의 영향이 남아있고, 카스트는 공식적으로는 5계급이지만 인종, 민족 등 그 안에서도 수없이 나뉜다. 인도의 카스트라는 ‘닭장’은 정말 세분화되어 사람을 옭아맨다.


가난, 가족, 계급이라는 이름의 닭장. 이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 이타심을 강제하여, 보이지 않는 굴레로 사람을 길들인다. 내가 가난에서, 가족에게서, 계급에서 벗어나려면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 자주적이 돼야 한다. 모두들 그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쳤지,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많은 어둠 속에 사는 인도인들은 그냥 그렇게 산다. 또, 귀족들은 하층민을 길들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조금만 잘못해도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고, 주인이 하인을 부릴 때는 하인의 가족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둔다. 하인이 도망을 치면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린다. 인도의 사회적 굴레는 그런 이타의 길들임, 무지의 길들임, 폭력의 길들임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발람은 어릴 때 들었던 '너는 화이트 타이거다'라는 말을 가슴에 묻고 산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려 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족을 벗어나려 하면 어떻게 되는지, 도망친 하인이 되면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죽음 덕분이다. 아버지가 가난과 가족과 계급에게 어떻게 착취당하고 허망하게 죽었는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발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


인도뿐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내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것보다는 '주변 상황을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가 많다. 꿈을 버려야 하는 것은 가족들이 힘들어해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소리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이 아는 사람이라서,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것은 나와 내 주변인에게 행해질 보복이 두려워서다. 길들이는 사람들은, 길들여지는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잘 알고 있다. 한번 두 번, 길들여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작은 행동에도 무서워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된다. 어릴 때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은 커서 부모가 늙어도, 그 말을 거역하기 힘들 때가 많다. 절망에 길들여진 사람은 절망이 곧 희망이다.


그럼에도 발람은 화이트 타이거답게, 길들여지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빛 – 길들여지지 않은 두 명의 여인

영화 시작부터 발람은 중국의 총리에게 편지를 쓰며 공산당을 찬양한다. 인도는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당이 존재하는데, 공산당 역시 존재한다. 인도의 공산당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고, 계급을 없애려고 한다. 특히 발람이 태어나 살고 있던 비하르 주는 공산당이 많은 표를 얻는 곳이고, 그 때문에 정치적 갈등으로 테러가 자주 일어난다. 테러가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민주적인 선거를 한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독재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좋은 점이 있다면, 이번에 실수를 해도 다음에 선거로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산당은 하층민에게 빛이다.


공산당이 전체 인도를 집권하는 집권당은 아니지만, 꾸준히 인기를 얻는 당이다. 영화에서는 비하르주의 집권당이 공산당으로 나온다. 발람도 어릴 적 공산당의 가르침을 받아 계급에서 벗어나려는 꿈을 꾸었고, 그것이 있었기에 화이트 타이거가 될 수 있었다. 영화 내에서 '위대한 사회주의자'로 나오는 여성은, 그런 하층민들의 지지를 받고 하층계급 출신에서 주 수상까지 된 사람이다. 이 여성은 발람의 돈 많은 주인을 마음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여성이야말로 화이트 타이거인 셈이다. 발람은 어렸을 때도 그녀에게 큰 감흥을 받았지만, 커서 직접 자신의 주인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감흥을 받는다.


또 한 명은 발람의 주인인 아쇽(야지쿠마르 야다브)의 부인, 핑키(프리양카 초프라)이다. 핑키는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으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배어있는 사람이다. 아쇽 역시 미국에서 유학을 해 미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만, 아쇽은 그 와중에서도 집안과 인도의 전통을 완전히 무너트리려는 행동을 하지는 않고 순응한다. 그도 역시 인도의 ‘닭장’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핑키는 달랐다. 핑키는 미국에서 가난하게 살았고, 거기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누구보다 발람을 잘 이해했다. 발람이 무시받고 폭력을 당할 때마다, 핑키가 대신 그것에 저항했다. 핑키는 카스트제도를 누구보다 혐오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발람은 크게 영향받는다.


그 두 여성은 발람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화이트 타이거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발람은 부당한 일을 당하고 폭력을 당하고 착취를 당해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닭장안에 들어가 있는 닭이 아니라, 거기서 뿌리치고 나오려고 한 것이다. 비단 그 과정이 분노와 광기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야쇽을 죽이고 자유를 얻은 발람은 그 영특한 머리로 사업을 일사천리로 성공시킨다. 그리고 자신은 계급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고용하며, 고용주로서 책임을 다한다. 자유를 얻는다고 반드시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발람은 인도가 가진 문화적 ‘닭장’에서 벗어나서 사업을 해도,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은 아쇽을 죽인 범죄자지만, ‘흔한 힌디 영화에서처럼 죄책감을 느끼거나, 마지막에 깨어나서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발리우드의 공식과 다르다. 권선징악이나 모두가 춤을 추며 마무리를 하는 방식 등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영화 자체의 공식마저 인도의 굴레를 벗어남으로써, 진정으로 길들여지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언지를 영화 그 자체로써 보여주고 있다.




당신도 무언가에 길들여져 있다. ‘닭장’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발람은 극단적으로 범죄를 일으켜 벗어났지만, 범죄가 아니더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곳에서 한발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내가 진정으로 무언가가 되고 싶고 하고 싶다면, 두려워하기보단 설레어하며, 어설픈 이타심보단 소중한 이기심을 품을 때도 있어야 한다.


대학시절, 부모를 위해서 대학교에 들어왔다며 스스로를 효자처럼 포장하고 있는 나에게 교수님은 '그건 너를 위해서 들어온 거야. 잘 생각해봐'라며 충고했었다. 교수님 자신도 젊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성공하게 된 길이라고도 이야기해 주셨다. 난 왜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못했을까?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이 부끄러웠거나,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들여지지 말자. 나를 둘러싼 것들에 쉽게 익숙해지거나 타협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먹고 한 발 내딛는 순간, 나는 곧 길들여지지 않는 <화이트 타이거>가 된다.




* 이 글은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영화 리뷰와 인문학을 접목한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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