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 작품은 어떨까'라는 기대를 매번 주는 감독은 드물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끌어가고, 그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 영화관이 새로 장비를 도입하고, 관객에게 그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며 투자자에게도 투자한 돈을 엄청나게 돌려줄 수 있는 감독. 그가 바로 제임스 카메론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저스> 시리즈를 만든 루소 형제가 그 뒤를 이어받는 듯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인 모양이다. 그들도 이 70대 노장의 벽을 넘을 수 없으니.
<아바타: 불과 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의 3번째 영화다. <아바타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영화 제작기술을 담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런 기술 속에, 세계인들이 공감할만한 인류애의 감성을 담은 스토리를 넣어 흥행시키고 있다. 이번 <아바타: 불과 재>에서도, 관객들은 한층 더 화려해진 볼거리로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게 즐거울 것이다. <아바타 시리즈>야말로 영화관에서 봐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니까. <아바타: 물의 길>을 재미있게 봤던 관객이라면, 아마 이번 <아바타: 불과 재>도 이어지는 이야기로써 대부분 재미있게 볼 것이다.
하지만 <아바타> 시리즈는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어딘지 불쾌한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판도라 행성을 이상적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유토피아로 그리면서도, 그곳이 사실은 인간처럼 생긴 '나비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편을 리뷰하면서 쓴 <아바타 - 지배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그리고 <아바타: 불과 재>에 와서, 그 부분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맞물려 더욱 두드러진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음]
이 영화에서는 '에이와=여호와', '판도라=에덴동산', '나비족=인간', '망콴족=악마', '그레이스 어거스틴=마리아', '키리=예수', '바랑=루시퍼'의 비유가 너무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그레이스 어거스틴이 단성생식으로 정자 없이, 에이와의 개입으로 임신했다는 설정은 너무도 마리아의 그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여호와와 예수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 현대 페미니즘 문화에 맞게 변주를 줬다. 하지만 그것들이 단지 일치한다고, 혹은 페미니즘이 들어갔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제임스 카메론이 그려서 보여주는 세상의 한계와 그 폭력성이다.
이전 편 <아바타: 물의 길 - 아바타 없는 아바타>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나비족은 힌두교의 영웅 라마찬드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푸른색 피부를 가지고, 활을 쏜다. 그리고 라마찬드라는 바로 비슈누의 화신(아바타)이다. 그런데 라마찬드라의 모습을 한 외계인 캐릭터 나비족의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발상이다. 더군다나 그 라마찬드라는 인간 백인의 정신을 주입받아 화신(아바타)이 되지 않았는가. 비슈누는 힌두교에서 악을 물리치고 세계를 유지하는 신으로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신중 하나다. 그렇게 비교해 보면 비슈누 = 백인 인간이 되는 셈인데, 백인이 곧 악을 물리치고 그들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상징이 된다.
현재 <아바타 시리즈>의 내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들과 동화된 아바타이자 토루크막토가 된 제이크 설리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레이스 어거스틴이 마리아가 되어 낳은 예수 키리가 없었다면 나비족은 진작에 인간들에게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영국의 백인들이 인도를 어떻게 식민지배했었는지 생각한다면, 이런 비유는 더욱 처참할 수밖에 없다. '재림'이라는 기독교 단어가 아니라, '아바타'라고 하는 힌두교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를 가져다가 기독교 세계관을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이 영화가. 조금 과한 비유일지 몰라도, 만약 '환웅'이라는 제목과 곰이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의 아마테라스 신앙 이야기를 주축에 깐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걸 어떻게 느낄까. 실제 인도인들은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인도 내에는 기독교도 공존하므로. 하지만 '백인이 생각하는 식민지 구원서사'의 불쾌함은, 식민지를 겪어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시질 않는다.
또한 이 영화 마지막 부분, 키리가 드디어 에이와와 만나는 장면에서 에이와는 그 실체를 조금 드러낸다. 마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차일드'를 연상시키는 하얗고 거대한 나비족처럼 생긴 옆얼굴. 행성 판도라에서 에이와는 신이다. 그런 신이 인간-나비족의 형상을 하고 있고, 자신과 닮은 나비족에게 씨앗을 심어 자신의 아이를 잉태시키며, 나비족은 판도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을 잘 염두해둬야 한다. 나비족은 엄연히 자연과 공존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다. 성경에서 신을 닮은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한 것처럼. 제임스 카메론이 그리는 이상향은 여전히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는 것.
솔직히 더욱 가증스러운 점은, 이 영화가 약자나 식민지인, 원주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데다 기독교 세계관의 성별을 역전시켜 놔서, 마치 약자를 대변해 PC를 지향하는 영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백인들이 아프리카 부족들에게 했던 악행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거기서 나비족이 스스로 대항해 싸워서 인간들을 물리치는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백인이 또 구원자로 '재림'한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늑대와 춤을>, <포카혼타스>, <라스트 사무라이>, <듄>과 같은 케케묵은 백인의 식민지 구원서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영화다.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보다, 착한 가면을 쓰고 은근히 악의를 퍼트리는 자가 더 악한 법이다.
이 영화의 구성이나 화면은 2편과 매우 닮아있다. 아무리 2, 3편을 같이 촬영했다고 해도, 명백히 부제가 '불과 재'인데 망콴족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말로 때운다. 만약 영화가 시작할 때 망콴족이 어떻게 에이와에게 버림받아 멸망 직전까지 가고, 거기에서 망콴족의 수장인 바랑이 어떻게 각성해서 이렇게 성장했는지 보여주었다면 이야기가 훨씬 풍성했을 것 같다. 또한, 영화의 주 무대가 망콴족의 화산지대였다면 어땠을까? 3편의 전쟁이 2편과 너무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전개로 흘러가다 보니, 영화의 기술적 성취나 화려한 액션 볼거리에 비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용 전체가 흘러가는 스토리도, 너무 비슷하다. 왜 물의 부족은 전편에 이어 또 이들을 지키려 이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건가? 제이크 설리네 가족은 2편에 이어 참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제이크 설리는 여전히 해병처럼 행동해 가족과 불화가 생기고, 스파이더가 잡히고, 스파이더를 구하고, 전투를 개시하고, 잘 흘러가는 것 같다가 또다시 설리의 가족이 불타는 함선에서 인질로 잡히고, 도망쳤지만 전쟁은 다시 인간 쪽으로 기울고, 그러다 에이와의 응답으로 판도라의 자연이 전쟁에 참여하는 흐름. 이 모든 게 2편과 똑같다. 물론 영화를 보면 세세하게는 다르지만, 흐름이 너무나 비슷해서 보다가 다음을 예측하면 그대로 맞힐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똑같이 만들고도 다른 어지간한 망작 영화보다는 그래도 재미있다는 게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긴 하지만. 신상인줄 알았는데 보세 옷이야. 근데 어지간한 신상만큼 꽤 괜찮아. 뭐 그런 거.
그래, 재활용이어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다른걸 다 제쳐둔다고 해도, 마지막에 에이와를 부른다는 부분은 많이 실망했다. 에이와가 나선다면, 2편 마지막에 동물들이 알아서 참전했던 것과 다른 훨씬 거대한 걸 보여줄 줄 알았다. 행성 자체가 분노해서 화산 폭발이 곳곳에서 일어난다거나, 자기 폭풍이 엄청나게 몰아쳐 인간 기지를 송두리째 박살 낸다거나, 아니면 바닷속에서 모아나의 여신처럼 거대한 에이와가 직접 나타나 다 때려 부수는 정도의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3편에서도 2편과 마찬가지로, 전투력이 센 몇 동물들 떼가 참전한 정도였다. 특히 고래 형상의 톨쿤족보다 오징어 모양의 츠용이 훨씬 무서운 놈들처럼 보인다는 것 말고는, 사실 영화 전체를 뒤집을 반전정도는 아니었다. 이 전투를 완벽한 승기로 이끈 건 원래부터 한쪽에 있던 자기 폭풍이었으니까. 즉 영화 전체가 쉴 틈 업이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긴 했지만, 영화의 구성으로 보거나 내용으로 봐도 아쉬운 점이 참 많이 남는 영화였다.
불편한 지점과 아쉬운 부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재미없었냐고 물어본다면 3시간이 지루할 정도는 아니고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재미있긴 했다. 이런 고전적이고 한물 간 설정과 내용을 최신 영화기술로 만들어 내면서도, 대중적인 입맛을 놓치지 않는 제임스 카메론의 역량도 돋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만약 4편도 이런 식으로 만든다면, 관객들은 외면하기 시작할 것이다.
판도라 행성에서 또 새로운 무대, 새로운 설정, 새로운 무엇이 나올 수 있을까? 예전에 발표한 4편 시놉에 따르면, 기이하고 어두운 스토리로 흘러간다고 했으나, 이번 3편이 성공해야 제작이 확실하다는 언급도 있다. 반전이 있는 스토리로 흘러간다고 했다. 과연 노장 제임스 카메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할 지, 날을 세운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 영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글들인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시리즈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2
* 2024년 개봉영화 리뷰를 모아놓은 브런치북입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casimovcine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