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집에 놀러온 외국인 언니가 있었다. 나는 아홉살이었고, 그녀는 스무살을 갓 넘은 나이였다. 이제 돌이켜보면 그녀는 내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부모님이 찾은 "튜터"였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얼굴은 아주 자그마한데 몸집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더 큰 이 언니와 재미나게 놀았다. 혼자 놀거나 동생을 이끄는 것을 워낙에 잘 하는 터라 나는 리드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림 그릴래. 언니도 할래?' 그녀는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나무를 그렸다. 외국인 언니도 내가 하는 것을 보더니 구석자리 옆에다가 조그맣게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연장자니까) 언니에게 얘기했다. '뭘 그리는 건지 말해주면 좋겠어. 이 나무와 어울리는 것인지?' 나는 아마 어렸을 때부터 컨트롤프릭 경향이 있었나보다.
그날 저녁 아빠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준 나는 서럽게 울었다.
아빠는 말했었다. "이게 니가 그린거라고? 넌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언니가 그린 것) 멋지게 잘 그렸네."
첫 회사를 다니기 전 나는 급성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세상이 날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들 단합하고서 홍디딩이라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몰아내자, 이런 문구로 결합한 것은 아닐까. 그 때는 몰랐다. 나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나는 언제나 대단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탱탱볼을 튀기고 침흘리며 놀 때 한자성어를 외워 읊는 아이. 얘는 남다르다고 어른들이 감탄을 했었더랬다. 그게 내 독이 될 줄도 모르고, 나는 신이 나서 내게 놀자고 하는 사촌들을 물리치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책'만' 읽는 나를 어른들은 그리 예뻐했었다. 어른들이 그리 말하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대단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대로, 대단한 아이란 건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신동이란 건 징그러운 것이다. 난 신동인 적은 없지만.
내 첫 직장에는 대단한 애들 두명이 있었다. 한 명은 유명한 PD의 딸인데 야무지고 겸손한 애였고, 다른 애는 부잣집 딸에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온 아이였다. 그 애들과 어울리며 나는 처음으로 '대단한 아이 컴플렉스'를 깨기 시작했다. 이래서 사회생활이 중요하지 싶다.
상당히 까다로운 상사 밑에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나와 다르게 행동하고 말했다. 상사에게는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고,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상사가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 공감했다. 나는 끝내 그 애들이 너무나 대단하고 부럽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것,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중2병이 왔을 때 나는 나의 평생 적을 친일파로 정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것이 같은 나라, 같은 핏줄 사람들을 꼰질러 잡혀가게한 친일파였다. 그래서 어딘가에 아빠가 우리 조상이 '독립운동을 위해 갖고 있던 집안의 땅과 자본을 내주었다'고 쓴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몰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나의 뿌리는 결백하구나. 나는 저것들을 미워해도 괜찮겠다.
지금은--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기전 돌아가신 조상 어르신들이 일본 유학을 갔다왔다고 했다. 지금 우리 집안은 그냥 뭐 그냥 평범한 그런 집안이다. 뭐였을까, 우리 집안은? 독립정부에 지원을 하셨을까, 아니면 뺏기셨을까? 불손한 생각이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복잡한 거였다.
아무튼 그 대단한 아이였던 내가 준비하던 시험에 실패하고, 이젠 그만 하겠다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내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후 처음 본 아빠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몹시도 화가 났다. 그 어려운 시험을 몇년간 준비했다가 막방에 실패한 사람은 나인데, 나를 위로해야지, 왜 당신이 서러워해.
나는 아이가 없다. 이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빠는 아마도 나와 같은 아이였을 것이다. 비범하고, 이쁘고, 대단한 아이.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겠지.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자기 일에서 최고가 되면 돼."
최고는, 세상에 한 명밖에 없는데! 일등은, 개중에 단 일명일 뿐인데. 정말 내 유전자 받은 내새끼가 세계 최고가 될거라고 생각했든(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미친듯이 노력하라는 압박이었든, 둘 다 나쁘다.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도, 나쁘다. 아빠는 그랬다. 그 어릴 때 놀이로 그림 그렸을 때도 더 잘 그리라고, 그딴 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봐!
아빠가 말한대로, 최고가 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쳤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아빠는 절대 말할 수 없어!
왜 내게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어?
왜 나를 그놈의 '대단한 아이'로 키웠어?
그 날, 물론 나는 이런 말을 아빠에게 절대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빠의 눈물을 보고, 괜히 성질이 나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소리지르며 항의하고 싶었었다.
나는 아이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아마 아빠는 정말로 미안했던 것 같다. 딸이 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삼십대 후반의 나이가 된 나는 그 때의 아빠가 불쌍하다.
그래서, 사실은 이렇게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이러니 저러니 평범하게 잘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아요. 아빠, 나는 정말로 괜찮아졌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