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프레임 한 칸이 세상의 전부인 여자.’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의 진아(공승연)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그녀가 자신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관객들에게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 물론 우리는 그녀가 콜센터 상담원이며, 한 달 전에 어머니를 잃었고, 집 나갔다 돌아온 아버지가 있으며, 그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것, 더불어 타인과 엮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 등을 안다. 아마도 그녀가 처했던 환경이 그녀의 현재 존재 방식을 빚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편적 정보들을 취합해 그렇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그녀의 속사정을 진짜로 이해하거나 알지는 못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현재진행형이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진아의 얼굴, 생전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나 그녀의 장례식 풍경, 혹은 직장에서 진아가 신입이던 시절 겪었던 서러움을, 영화는 회상 장면으로 보여줄 법도 하지만 절대 그러지 않는다. 과거 사건들을 맞닥뜨리는 이미지의 부재와 감정표현을 극도로 절제하는 표정의 지속은, 계속 흘러나오는 정보들에도 불구하고 진아의 마음을 불가해한 것으로 만든다. 이어폰과 스마트폰 화면으로 외부 자극을 튕겨내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진아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는 지우고 필사적으로 현재에 존재만 하고자 하는 사람. 무엇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무엇도 느끼지 않으려는 사람.
카메라는 그런 진아의 공모자다. 진아 자신이 세상에 무감해지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지만, 카메라 역시 그녀를 위해 무엇에도 쉬이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의 바깥을 똑바로 쳐다보고 반응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영화의 첫 장면은 진아가 콜을 받는 모습이다. 카드 내역서에 찍힌 상호명에 불만을 토로하는 한 남자의 음성과 그에게 할 말만 읊는 진아의 무표정이 화면을 일차적으로 채우는 가운데, 그녀의 뒤편에는 우는 직원과 상황을 수습하는 팀장이 보인다. 이 작은 소동을 카메라는 진아의 배경으로만 둘 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 결과, 진아는 그 사건을 자세히 알 필요가 없게 된다. 그저 ‘뭐야?’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쓱 한 번 돌려보고 말뿐이다. 카메라는 진아가 크게 의식하지 않는 대상에는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진아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갈 때, 담배를 피우던 옆집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가 복도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음은 물론, 그가 진아를 향해 입을 열 때도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하여 그의 대사는 얼굴을 가진 어떤 주체의 말이 아니라 화면에 던져지는 외부 자극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진아의 무시에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거는데, 마침내 진아는 집으로 들어서기 직전 그를 바라본다. 이때 카메라의 위치는 그의 얼굴 앞이 아니라 그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진아의 등 뒤다. 진아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았을까? 요컨대 카메라는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진아의 방패로서 기능한다.
하지만 세상이 온전히 나만의 것일 수는 없기에, 진아를 보호하던 카메라는 그녀에게 오는 모든 자극을 걸러내지 못한다. 옆집 남자가 복도에 갖고 나온 재떨이 그릇의 쨍그랑 소리는 프레임 속 진아의 귀에 내리꽂히고, 그녀의 감각을 일깨운다. 며칠 뒤, 아파트에 진동하는 썩은 냄새가 옆집 남자의 부패한 시신이란 걸 알게 된 진아는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tv를 본다. 그녀의 귀에는 다시 한번 쨍그랑 소리가 들린다. 지금, 진아가 보고 듣기로 선택한 대상이 아닌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감각의 프레임 속으로의 침입. 그녀의 표정이 심란해 보이는 건 아침에 보았던 옆집 남자가 귀신이었다는 사실보다 고립을 자처하기 위해 세운 방어벽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녀는 직장에서 그의 고독사에 관한 뉴스를 찾아 읽는다. 진아의 프레임을 흔드는 건 옆집 남자뿐만이 아니다. 팀장이 진아에게 거의 협박으로 떠맡긴 신입사원 교육 덕택에 그의 자리에는 수진(정다은)이라는 존재가 들어앉게 된다. 수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카메라는 결코 진아를 벗어나거나 그녀가 바라보는 대상 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진의 출근 첫날, 진아 자리를 바라보던 카메라는 일찍 출근한 수진을 먼저 눈에 담게 된다. 그 광경을 목도한 진아는 거의 분노하지만 결국 수진과 함께 자리하게 된다. 진아는 그녀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프레임은 이미 두 사람분으로 늘어난 뒤. 수진은 그녀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장면이 있다. 진아가 수진을 매우 생경하게 바라보는. 어느 날 수진이 콜을 받자 상대편은 다짜고짜 욕부터 뱉는다. 진아는 그냥 미안하다 말하고 상황을 수습하라 이른다. 상대방의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그녀에게 그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수진은 조용히 분노하며 “전 잘못한 게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결국 전화를 넘겨받은 진아는 입으로 의미 없는 사과와 판에 박힌 호응을 하며 눈으로는 수진을 쫓는다. 자신에게 던져진 자극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수진이 놀랍다는 듯이. 수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뒤 진아의 프레임은 더 자주 취약해지고 허물어진다. 진상이었던 남자의 “사람 들고 나는 거 티도 안 날 일 하면서-”라는 소리가 화면 밖으로 잘려나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진아의 얼굴에 들러붙는다. 그녀는 옆집 남자의 텅 빈 집을 보고 아파트 전체를 지긋이 올려다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수진이 회사를 관둔 날, 그녀는 수진이 듣곤 하던 환청을 경험한다. 그 순간, 영화는 이질적인 이미지 하나를 끼워 넣는다. 바로 진아가 엄마 집에 설치했던 cctv로 계속 훔쳐본 아빠의 얼굴이다. 이 화면은 진아의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로, 이것이 영화 속에 돌출했다는 건 곧 진아가 꽁꽁 감싸고 있던 감정의 수문이 열렸다는 의미다. 진아는 그 즉시 본가로 달려간다. 자리를 비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낸다. “(나랑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해!”
진아는 그 자리에서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쪼그려 앉아 가만히 고개를 묻은 채로 있는다. 영화가 여기에 이른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안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리를 펴고 일어나 길을 갈 때, 갑자기 카메라가 진아를 롱숏으로 찍고 그녀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멈춰서 바라보기만 할 때, 우리는 그녀가 마침내 세상에 대한 자신의 방어를 끝냈음을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간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이때 카메라는 놀랍게도 자기 방에 있는 수진의 얼굴을 담아낸다. 처음으로 카메라가 두 개의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자 진아가 수진을 자신의 세상으로 포용하는 순간이다. 그토록 혼자이길 원했던 진아는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요”라 고백한다.
수진이 흐느낄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수진의 눈물은 위로받은 마음이 북받쳐 오른 것이었던 반면, 나의 것은 진아의 얼굴로 한정된 프레임들을 마주하며 응축되었던 감정(지긋지긋한 사람. 그러나 종내 열망하고 마는 연결감. 나에 대한 혐오와 타인에 대한 미안함)이 마침내 해방되며 나온 것이었다. 진아가 카메라를 수진에게 양보할 때, 나는 그녀의 역사를 온전히 알지 못하면서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애틋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으로 나오는 소중한 순간을 목격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진아의 모습이다. 카메라는 그녀를 창 밖에서 바라보고, 그녀가 앉은 창문으로는 바깥의 풍경이 비쳐 보인다. 그녀의 얼굴에 세상이 놓이고 그녀는 그걸 바라본다. 만일 영화가 조금 더 이어졌더라면, 과거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거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