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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Nov 24. 2022

분노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희망

소설 '밝은 밤'

작가 : 최은영 / 출판사 : 문학동네


나를 백정의 딸이라고 경멸하는 눈빛이 나는 여전히 아프고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외롭다. 나는 상황이 변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여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경멸받고 싶진 않다.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을까. p.56     


소설 『밝은 밤』의 인물들을 관통하는 수많은 감정 중 내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아마도 희망이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모든 일에 체념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지나가는 길에 이유 없이 맞았다면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하면 되고,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슬퍼해야 했어도 그저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55). 하지만 삼천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녀는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해보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녀는 분노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녀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더 큰 감정의 파고를 겪고, 더 많이 아플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삼천의 증손녀이자 이 책의 화자인 지연은 삼천의 희망, 그러니까 분노를 미련이라 부르지 않는다. “재능”이라 표현한다.


『밝은 밤』은 삼천에서부터 영옥과 미선, 그리고 지연에 이르기까지 4대를 아우르는 한 집안의 여성들 이야기이다. 각자가 속한 시대와 살아온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은, 인생에서 얼마간 비슷한 지점들을 마주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세상은 이들 삶의 영역을 ‘여자’라는 범주에 가두고, 아버지와 남편은 하대와 무시로 이를 끊임없이 주지 시킨다. 그 결과 이들에게 열려있던 삶의 가능성은 하나씩 닫힌다. 이 어둠이 분노가 아니라 끝내 서글픔을 유발하는 까닭은, 그 닫힌 문들 중 몇 개는 삼천이가, 영옥이가, 미선이가, 혹은 지연이가 직접 닫아버린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점점 좁혀지는 자신의 길을 보며 못내 ‘아, 이건 안 돼’라고 지레 겁을 먹고 말이다. 영옥과 지연은 자신이 감히 더 많은 걸 원할 수 없는 처지라 생각해서, 아버지나 자신을 불편하게 할 용기가 없어서,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스스로를 기만했음을 인지하고 인정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할머니는 그때 자신이 스스로를 속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증조모의 눈에 보였던 남선의 단점들을 할머니 또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그저 노처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자신을 속였다. 남선 정도라면 남편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마음속의 경고를 무시했다. 증조부의 목소리로 할머니는 생각했다. ‘내가 잘난 게 뭐가 있는데.’ p.218     


나는 남편의 외도와 그와의 이혼이 내 무릎을 한순간 꺾이게 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내가 믿었던 만큼, 내가 믿고 싶었던 만큼 그는 내게 정말 의미 있고 비중 있는 존재였을까. 그의 외도를 알기 전의 나는 정말 내 믿음대로 덜 아프고 덜 병들어 있었을까.

나는 그와의 결혼으로 내가 지닌 문제와 내가 가진 가능성으로부터 동시에 도망치고자 했다. 나의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 중 나를 더 아프게 한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p.298-299     


영옥과 지연의 깨달음, 그리고 그들의 독립(더불어 이후에 생활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것)은 삼천이 물려준 유산이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체념하지 않고 세상의 부조리와 나의 선택을 직시하고 있는 힘껏 반응하는 것. 스스로 내 인생의 범위를 한정 짓지 않도록 하는 것. 최선을 찾아가는 것. 나는 이것이 삼천이 물려준, 인생의 희망을 놓지 않는/못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은영 작가는 그 희망을 좇는 태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른 체하지 않는다. 영옥의 딸이자 지연의 엄마인 미선은 이들과 다르다. 지연의 이혼 소식에 영옥은 그저 잘했다고 하지만 미선은 참았어야 한다고 한다. 미선의 아버지였던 남선은 전쟁 중,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영옥과 중혼을 한 남자였다. 이후 가족을 찾은 그는 영옥과 미선을 버렸고 영옥은 혼자 딸을 길러냈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환경에서 자라난 미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삶”(271)을 최고의 삶이라 여긴다. 때문에 그녀는 지연과 늘 아픈 말들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지연은 삼천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엄마에게 주어졌던 환경을 상상하고 흡수함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혔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 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p.313-314    

 

최은영 작가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오은 시인과의 인터뷰 중, ‘밝은 밤’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소설을 쓰고 있을 때 제 인생이 밤처럼 느껴졌어요. 잠겨 있는 시간 같은. 여기서 밝음은 쨍하게 밝은 느낌이 아니라 은은한 느낌인데요. 사람들이 모두 힘들지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항상 은은한 달빛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삼천에서 지연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겐 모두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천에게는 새비가 있었고,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서로의 목숨을 살렸다. 영옥에게는 희자가 있었고 지연에게는 지우가 있다. 지우는 “앞으로는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할게. 이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도 느끼며 살아”라고 말해주는, 그래서 지연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102). 미선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 서로의 가족을 지킬 수 있게 돕고 아플 때 기댈 수 있는 친구. 그러고 보면 미선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가 말한 달빛이, 밤을 지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나의 사람이, 희망이라 불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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