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제작한 시리즈 <더 서클>은 ‘SNS로 누가 더 소통을 잘하는가’를 겨루는 리얼리티 쇼다. 코미디언 미셸 부토가 호스트이자 내레이터로 참여하는 이 쇼는, 일반인 참가자들을 ‘더 서클’이라 불리는 숙소에 합숙시킨다. 각 1인실을 배정받은 플레이어들은 합숙하는 동안 자신의 방을 함부로 벗어나지 못하며 함께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얼굴도 직접 볼 수 없다. 제작진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더 서클’이라 불리는 SNS 플랫폼을 통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서클에 입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고 대화에 참여해야 하며, 이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을 토대로 호감도 순위를 작성한다. 한마디로 인기투표를 하는 셈인데, 여기서 1위와 2위(플레이어는 총 8~9명)를 차지한 멤버들은 ‘인플루언서’가 되어 게임에서 탈락할 사람을 고르는 힘을 갖게 된다. 탈락한 멤버의 자리는 새로운 플레이어로 교체되며, 이 경쟁대회는 최후의 5인이 남을 때까지 ‘소통-인상평가-탈락(-교체)’의 서클을 반복한다. 그리고 최후의 5인 중 마지막 투표에서 1위를 한 사람에게는 1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SNS에서 대화 좀 나누고 인기투표에서 1위를 하면 돈을 받는다니, 이렇게 싱거울 수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서클>은 현재 시즌5까지 제작되었으며,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 버전이 나올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인기 예능이다(오리지널은 미국이다). SNS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실제로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 중에는 SNS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SNS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더 서클>에 얼마간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는, 아마도 이 대회가 사칭(catfishing)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대회에 참여할 것인지, 혹은 가짜 프로필을 꾸며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현대인들에게 이미지란 것이 자아 형성과 관계 맺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SNS 시대에 사랑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탐구한 책 『모던 로맨스』(아지즈 안사리 外)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데이트를 할 때, 상대방의 프로필 속 다른 어떤 정보보다 외모를 가장 중시한다고 한다. 외모 이외의 조건에 아무리 많은 가산점을 부여하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예증은 넷플릭스의 또 다른 예능 <연애실험: 블라인드 러브>다. 이 프로그램은 진짜 사랑을 원한다고 외치는 남녀들을 모아 서로 일주일간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게 한다. 현재 시즌3까지 나온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 중에는 늘, 상대의 외모는 몰라도 마음이 너무나 잘 맞아 ‘벽 너머의 저 사람이 내 소울메이트가 틀림없다’고 느끼는 이상한 남녀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기필코 상대에게 프러포즈를 하고야 만다. 프로그램은 그렇게 약혼이 성사된 커플의 결혼식 진행 과정을 지켜본다. 당연히, 이 대개의 커플은 전부 파멸에 이르는데 그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상대의 외모가 기대에 못 미쳐서다. 시즌 3의 자납과 콜 커플이 대표적인데, 자납과 콜린 사이에서 고뇌하던 콜은 자납이 훨씬 성숙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그녀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모두의 외모가 공개된 후, 콜은 콜린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외적 이상형임을 깨닫는다. 자납을 두고 그녀에게 치근덕대던 그는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결혼식 날 파혼을 당한다.
<연애실험: 러브 블라인드> 장면. 참가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눈다.
여하튼 외모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피상과 허영이라는 말로 물리치더라도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평가기준점, 그리하여 일종의 자산이 되었다. 본인의 외모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혹은 자신감은 있지만 객관적 기준과 주관적 시선이 다르다는 걸 상당히 잘 인식하고 있는 <더 서클>의 플레이어들이 사칭을 하는 주된 이유다. 이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매력 자본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남성들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으로 분해 다른 남성 플레이어와 플러팅을 하고 여성 플레이어들과는 자매애를 맺으려 한다. 엉뚱한 사람들끼리 매력 어필을 하고 ‘여자들의 힘!(Women power)’을 외치는 이들 가운데 이색적인 존재가 끼어 있는 장면은 얼마간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광경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소 씁쓸하다. 예쁘고 어린 여성의 이미지는 이렇게 일종의 힘을 쥐면서도 일종의 착취를 당하는 셈이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탓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건 남성만이 아니다. <더 서클>은 데이팅쇼에 잠식된 최근의 리얼리티 시리즈 중 퀴어 참가자들의 참여가 가장 두드러지는 프로그램이다. 플레이어 중 비백인이면서 레즈비언인 여성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기로 한다. 부치로서의 정체성이 확연한 자신의 이미지가 인기를 끌 리는 없다는 냉정한 판단에서다(한편, 이 프로에서는 게이들보다 레즈비언이 사칭을 더 많이 한다. 우리는 걸리쉬한 남자보다 맨리한 여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걸까).
물론 모든 사칭자가 여성이 되기를 택하는 건 아니며 서클 내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무조건 유리한 고지를 취하는 것 역시 아니다. 어떤 남성은 자신보다 외모가 훌륭한 다른 남성의 얼굴을 빌려오고, 어떤 여성은 남성이 되기로 한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외적 자산이 있는 남성이 호감을 사기 쉽다는 이유와 남자일 때 편견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후자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더 서클> 시즌 1에는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 서클에 입주한 첫날 탈락한 일이 있었다.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이유로 ‘진실해 보이지 않다’(=사칭자 같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사실 그녀는 사칭자가 아니었다. 기가 막힌 건 웃통을 벗고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백인 남성은 자신의 진심(그는 근육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일 기회를 얻고 최종 라운드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 일 때문인지 이후 더 서클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종종 실제 직업이 모델임에도 모델이 아니라고 하거나 아예 성별을 바꾸었다. 사칭을 택하건 아니건 모든 참가자의 목표는 우승이다. 하지만 성별을 바꾸거나 외모를 업그레이드 혹은 다운그레이드하는 여성 플레이어들의 선택에는 단지 우승을 위한 전략 이외의, 현실에서 그들이 겪어온 차별의 압력이 느껴진다.
<더 서클> 시즌2의 우승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사칭,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연기를 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사칭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색출, 탈락시키려 한다. 사칭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들을 찾는다고 우승 상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까닭은 서로가 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떨어져야 한다면, 그건 흠결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흠은 비겁하게 ‘나 자신’으로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진실하지 못한 사람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사칭을 탈락해도 마땅한 결격사유로 보는 관점은 현저히 줄었다. 종국엔 나를 높은 순위에 올려줄 사람이 많은 상황이 유리한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사칭의 냄새를 맡아도 그/녀가 자신의 동맹이라면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혹은 단지 표 때문이 아니라 텍스트로 주고받은 말들 위에 실제 우정을 쌓아 올려 그러기도 한다. ‘난 네가 사칭자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우린 마음을 나눴으니까’라는 식이다. 실로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도용하는 이들은 대화를 나눌 때 늘 경계 모드를 취하지 않는다. 프로필에 적시된 내용과 언급된 대화 주제가 아닌 이상, 그들은 실제 자신의 성격으로 게임에 임한다. 그러니까 사칭자들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좋은 이미지만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 이용에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시즌5 참가자 산티는 아름다운 모델이지만 유치원 교사로 자신의 직업을 속인다. 그러나 ‘여전히’ 첫인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해 입주 첫날 탈락하고야 만다. 놀랍게도 제작진은 그녀와 다른 탈락자(근육질의 백인 남성)에게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두 사람이 하나의 팀을 이뤄 50대의 제니퍼라는 가상 인물을 연기하도록 한다. 더 놀랍게도 플레이어들은 그녀를 애정한다. 섹시하고 신나고 쿨한 더 서클의 맏언니! 섹시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실제로 제니퍼의 이미지는 산티와 다르게 섹슈얼한 느낌이 덜 부각되며, 거기서 비롯하는 위협감도 덜하다. 무엇보다 나이 덕에 현명하다는 이미지까지 얻는다. 산티보다 제니퍼에게 플레이어들이 더 호감을 갖는 모습, 그러나 그 이미지 뒤의 사람들은 여전히 젊은 모델과 근육맨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이 게임에서 사칭은 비겁한 선택이 아닌 영리한 전략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사칭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사칭을 탈락시켜도 좋을 판단기준으로 이용한다. 이는 특히 시즌1에서 두드러졌는데, 그 중심에는 SNS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슈밤이라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왜소한 체구를 지닌 인도계 미국인이자 밝은 미소를 지녔고 공부를 잘하는 그는 SNS가 싫다고 대놓고 천명한다. 그런 그를 제작진이 섭외한 까닭은, 혹여라도 그가 SNS를 통해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런 경험을 통해 그의 태도가 바뀔 수 있는지 프로그램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투표에서 꼴찌를 달리던 슈밤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동맹을 맺으며 결국 인플루언서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최종 2위로 게임을 마무리한다.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를 나누며 SNS의 순기능을 발견했다고 말하지만, 사칭자들이 왜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끌고 오는지에 대해서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메르세데스라는 젊고 예쁜 여성으로 분한 레즈비언 카린을 사칭자로 의심, 탈락시킨다. 카린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 “동성애자들이 지니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리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밝힌다. 그녀는 “눈을 감고 대화를 하면 예전만큼이나 내가 마음에 들걸”이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몇몇 플레이어는 그녀의 메시지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슈밤은 그저 즐거워한다. ‘사칭자 사냥에 성공했다!’
그의 엄격한 잣대는 가짜 프로필로 게임에 참여했으나 결국 자신의 진짜 사진을 공개하는 숀에게도 적용된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숀은 자신보다 더 마른 금발 여성의 사진을 이용한다. 하지만 솔직해지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진짜 모습을 공개하는데, 사람들은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친다.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그 모두가 아닌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슈밤은 “처음부터 솔직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는 말을 남긴다. 플러스 사이즈의 여성으로서 그녀가 받았을 어떠한 차별에도 먼저 공감하려는 태도 없이 말이다. 흥미롭게도 슈밤은 시즌5에 제작진의 권유로 다시 참여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보다 더 게임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그는 프로그램 측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제작진이 내건 참가 조건은 아름답고 어린 인도계 여성을 사칭해야 한다는 것. 늘 ‘피상성’에 비판을 가하던 슈밤은 샤샤라는 아름다운 자신의 아바타에 난색을 표하지만 곧 만반의 준비를 갖춰 게임장에 입성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모두의 비호감으로 전락한 채 게임에서 탈락한다. 그가 시즌1에서 늘 내보였던 전략, 즉 ‘넌 내 형제야! 자매야! 우린 끝까지 가는 동맹이야!’는 그의 작고 무해한 소년 같은 얼굴이 사라지자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대신 어리고 아름다운 샤샤의 적극성은 기이한 것으로 비쳤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을까. 역시 ‘진짜 내 모습으로 참여해야 해’라는 시시한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가해지는 모순된 편견에 대해 얼마간 진짜 생각이란 걸 해 보았을까.
시즌1에 메레디스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던 카린.
<더 서클>은 ‘디지털 시대에 SNS로 소통하는 건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 자기 브랜딩 시대에 이미지란 얼마나 강력하고 모순적인가를 보여준다. 거의 모두가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에 이끌리지만, 거의 동시에 그것을 비웃고 싫어한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아쉽게도 <더 서클>은 이 질문을 유발하면서도 그에 대한 답을 도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쇼가 지닌 특유의 경박함을 이 프로그램 역시 공유하고 있다. 거의 모든 리얼리티 예능은 출연자들이 벌이는 갈등을 착취해 시청률을 얻는다. 인성이 매력 자본에 포함되는 시대에 우리는 (악의적) 편집을 통해 잘리고 붙여진 갈등 서사를 보며 ‘저 사람은 정말 착해! 좋아!’를 외치고 ‘저 인간은 너무 짜증 나! 싫어!’를 반복한다. <더 서클> 또한 이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즌1보다 시즌2가 더 재미있다는 일각의 평가는 시즌2에서 플레이어들의 갈등이 격렬해지기 때문이다. 이때 갈등의 주요 원인은, 사칭을 둘러싼 이미지에 대한 복잡한 견해 차이 따위가 아니라 ‘너 왜 앞뒤 말을 다르게 하냐’이다. 그렇다. <더 서클>은 친목 다지기가 게임의 핵심 전략인 만큼 앞담화와 뒷담화의 향연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다. 기실 플레이어들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시즌5까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욕하면서도 본다. ‘저 싸가지 없는 플레이어가 빨리 떨어져야 하는데!’를 외치면서. 어쩌면 넷플릭스가 앞으로 탐구할 예능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이토록 관음증에 쉽게 굴복하는가. 어째서 남의 일거수일투족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왈가왈부하는가. 물론 지금 당장 우리가 보게 될 건 <연애실험: 블라인드 러브>의 시즌 4겠지만 말이다.
**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 <디스 민즈 워>에 대한 단상
영화 「디스 민즈 워」(2012)는 리즈 위더스푼과 크리스 파인, 그리고 무려 톰 하디가 삼각관계를 이루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여전히 회자될 자격이 충분하지만, 영화가 개봉되던 당시 사회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데이트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엿보고자 할 때도 꽤 유용하다. 일에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나 연애는 최악이었던 파트너 이후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던 로렌(리즈 위더스푼)에게 어느 날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나타난다.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터크(톰 하디)와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프랭클린(크리스 파인)이 그들이다. 같은 CIA 요원이자 친구이기도 한 두 남자는 로렌이 마음에 들고 서로 페어플레이를 하기로 합의, 각자의 방식대로 로렌에게 다가간다. 스파이 능력을 낭비하며 불법을 수없이 저지르는 두 남자의 구애/견제 활동은 오늘날 여성 관객에게 그저 마이너스를 적립할 뿐이지만, 유해한 남성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진 오늘날 여성 관객에게 로렌의 남자로는 그나마 터크가 제격이다. 처음부터 로렌을 좋아한다고 명확히 밝혔던 터크와 달리 프랭클린은 얼마간의 승부욕, ‘형님이 한 수 보여주마’라는 식의, 지극히 픽업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갖고 로렌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관객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로렌과 프랭클린을 이어준다. 이는 과묵하고 착한 남자보다 말 잘하는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오랜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온라인에 대한 오프라인의 우월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프랭클린은 터크의 연애 경험 부족을 얼마간 조롱하는데, 영화의 전체적 뉘앙스와 결말 또한 온라인 데이트를 그런 식으로 부정하는 듯하다. 온라인 데이트 광고를 보고 혹하던 터크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로렌의 얼굴을 보던 프랭클린의 표정에는 미소가 스쳤다. 영화는 터크를 통해 인터넷 데이트라는 새로운 풍경을 다루되 오프라인에서의 우연성과 케미스트리를 이길 순 없는 법이라 확언한다. 십여년이 흐른 오늘날, 여전히 사회의 분위기는 오프라인의 우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온라인에서 시작된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다소 누그러졌다. 하여 톰 하디를 좋아하는 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요즘에 나왔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