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식의 컨트롤 타워는 아마도 소심이가 차지한 듯하지만, 그래도 미련이랄까 호기심이랄까. 기쁨이가 컨트롤 타워를 차지했더라면 어떤 내가 되었을까 생각하는 오늘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아주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날카로운 경험 하나가 잔상처럼 내게 머물러 있는 걸 느꼈다.
교회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규모가 커서 초등부 예배를 따로 진행할 만큼 큰 교회였고, 나는 거기서 또래 친구들을 적잖이 사귀었다.
그날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성찬식이었다. 아주 조금의 떡과, 아주 조금의 포도 주스가 아이들에게 배분되었다. 선생님이 일일이 나누어줬던 건 아니고, 작은 잔들이 담긴 큰 쟁반을 아이들이 서로 넘겨줘야 했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친구가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친구로부터 쟁반을 받아 들었다. 그가 어떻게 주스를 마시고 내게 쟁반을 넘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다음 나의 행동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마도, 그 친구가 내게 쟁반을 넘겨주려는데 내가 한쪽 손으로만 그 쟁반을 잡고(그러니까 그 친구가 나머지 한쪽도 받쳐줘야 하는 상태로) 주스를 마시려 했던 것 같다. 아, 아닌가. 나는 아예 쟁반에 손조차 뻗지 않았던 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은 대략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와, 공주처럼 구네.”
‘공주다’ 혹은 ‘공주 같다’라는 말과 ‘공주처럼 행동한다’라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가 대체로 아름다운 사람을 칭찬하는 용도로 쓰인다면 후자는 재수 없이 남한테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 쓰인다. 두 문장의 차이는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기에, 당시 나는 “와, 공주처럼 구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내 행동과 인성이 친구에게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게 공주처럼 군다고 말한 아이가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두려웠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털털하지 못하고 공주 같다, 잘난 척한다, 혹은 새침하다 등의 평가를 받는 건 왕따로 가는 지름길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그 아이가 살짝 무서워졌고,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어? 왜 친구한테 그런 평가를 받고 다녀? 등등 나는 스스로를 꾸짖고 자기 검열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그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주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충분히 해주지 못했을 때, 먼저 나서서 손을 더럽히지 않았을 때 그 말을 떠올렸다. 그러면 나는 한참, 내가 싫어졌다.
오늘 아침 왜 하필 그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눈을 떴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요 며칠 누군가 나를 위해 일을 대신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쌓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내가 한심한 요즘, 정신 차리라고 의식이 묻혀 있던 기억을 통해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감정과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나니, 글쎄, ‘왜 항상 나는 채찍질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라는 의문이 든다. 왜 늘 자아 성찰과 성장은 깊숙이 박힌 가시를 통해야만 하는 걸까. 아마 오늘도 나는 조금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할 테고, 내일도 얼마간 자기혐오에 시달리며 왜 ‘더’하지 않(못하)느냐며 나를 닦달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척도가 아니라는 걸. 지금의 나라면 친구가 “와, 공주처럼 구네”라고 할 때, “야, 친구끼리 그거 좀 들어줄 수 있지 뭘 그래-!”라고 할 것이다. 물론 뒤에서는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걱정할 테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애써 나를 보호할 것이다. 나는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부끄러운 순간을 넘어서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