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

9월 28일의 기록

by 이희구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다시 보고 있다.

빚쟁이들을 피해 아빠와 헤어진 뒤 어린 여동생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세경.

신고 있던 신발을 잃고 맨발이 되어도,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노숙을 할 때도

쨍쨍한 여름 속에서 세경은 그 계절만큼이나 씩씩하다.

하지만 식모가 되어 24시간 일을 하고, 그 집 막내가 동생에게 함부로 구는 걸 큰소리로 막지 못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이 고작 60만 원 임에 감사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집 삼촌을 사랑하게 되면서, 세경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된다. 더 이상 큰소리로 힘차게 인사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어느덧 찾아온 가을이라는 날씨와 겹쳐 더욱 쓸쓸해 보인다.

사람은 이렇게 미세하게 변화한다는 걸 스크린 속 세경을 보며 실감한다.

여름을 지나 지금의 가을에 이르기까지 나 또한 변화를 맞았을까.

드라마처럼 내 삶의 한 조각씩을 잘라내 이어 붙여 관찰하면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보일까.

글쎄, 오늘의 지친 내가 있기 전 여름의 내가 과연 씩씩하기는 했을는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우중충한 하늘 아래, 오늘도 출근한 나는 터벅터벅 땅만 보고 걸었다. 어느새 내가 가을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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