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시선이 지닌 힘
레베카 패리쉬 감독의 <주님은 페미니스트>(2015)는 바티칸으로부터 감찰을 받은 미국 수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09년 무렵부터 미국의 수녀들에게 일어난 페미니스트 정신이 너무 현대적인 사상이라 판단한 교황청은 소년들을 성추행한 사제들을 조사하는 대신, 낙태와 동성애 등에 찬성한 수녀들의 믿음을 감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화는 특히 오바마 정부 시절 의료개혁법을 두고 일었던 가톨릭 단체들과 수녀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데,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노동자 의료보험에 피임이 포함되는 것이 생명에 대한 경시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법안에 찬성하는 수녀들의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사회 활동가이기도 한 시몬 캠벨 수녀는 말한다. “낙태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논할 순 없어요. 태아들만큼이나 귀중한 목숨이 많아요. 제가 보기에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며 낙태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 탄생권을 주장하는 거죠. 생명권이 아닙니다. 진정 생명권이라면 모든 목숨이 처한 현실을 봐야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혹자는 이 현명하고도 사려 깊은 대답 앞에 다짜고짜 왜 종교인이 정치를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개혁법에 반대하며 오바마 정부에 소송을 건 일부 가톨릭 단체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은 것인가? 아마도 또 다른 이들은 말할 것이다. 수녀가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믿음을 잃은 것 아니냐고. 그러나 영화 속의 수녀들은 누구보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회에 봉사한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경직되어 있고 수직적인 교회의 구조와 가르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남성 사제들의 것인가.
영화는 의료개혁법을 둘러싼 수녀들과 주교회의 갈등만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에는 국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시몬 수녀만이 아니라 교회 개혁 운동가인 크리스 수녀, 지역 사회 복지사인 진 수녀가 나온다. 카메라는 각기 다른 공동체에 속해 있는 세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기에 영화에는 다양한 풍경과 다양한 의제들이 나온다. 하지만 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담긴 이미지들은 서로 공명하며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교회는 변해야 한다는 것. 바깥으로 눈을 돌려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가톨릭 내부자들이라 할 수 있는 수녀들이 어떻게 이처럼 교황청과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그녀들이 그 조직의 타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부가 될 수 없었고 성체를 손에 쥘 수도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난 사회의 타자들에게 동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극 중 수녀들의 조사를 맡은 파프라키 주교는 수녀들의 생각(교회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생각)에 반박하며 예수님이 열두 제자로 남성을 맞이한 것 또한 가부장제의 예시냐고 묻는다. 이 말은 곧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정해져 있으며, 수녀들의 자리는 성체를 쥐는 곳이 아닌 그 밑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수녀들은 역사는 남성에 의해 쓰이고 해석되어 왔다며, 교회가 아닌 실제의 역사가 말하는 여성들의 위치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크리스 수녀는 여성 성직자의 무덤을 찾아가고 과거 여성 부제의 존재를 발견한다. 이에 파프라키 주교는 그것이 과거의 여성들에게 중요한 책무가 주어졌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안다. 그의 해석이 권력을 소유한 일부 남성 사제의 입장을 반영한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주님은 페미니스트>는 갖은 의제들을 우리 앞에 끌고 오지만 결국엔 단 하나의 말을 한다. '옳다고 믿었던 기존의 관습을 벗어나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그러면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 12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던 영화 <두 교황>이 떠올랐다. 익히 알려져 있듯,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1세의 우정, 그리고 두 교황으로 대변되는 세대교체에 관한 영화다. 베네딕토 16세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교황청의 특성을 나타낸다면 프란치스코 1세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교황청의 새로운 의지를 상징한다. 높고 좁은 곳에 갇혀 있던 지도자가 소박한 차림으로 땅에 내려온다는 영화의 줄거리는 과연 세계 곳곳에서 진보를 외치고 있는 대중들의 열망과 맥을 같이 했다. 하지만 <주님은 페미니스트>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세상의 흐름을 단 두 사람, 그것도 남성들의 관점에서만 그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프란치스코 1세의 등장은 베네딕토 16세가 느낀 양심의 가책 때문만이 아니라, 그 두 남성이 주고받았던 고해성사 때문만이 아니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데 영화는 그러한 바깥의 외침을 지우고 오롯이 권력을 쥔 두 남성의 입장에서만 영화를 진행시켰다. 레베카 패리쉬의 영화를 보고나면 텁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주님은 페미니스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1세 즉위 1년 뒤에도 바티칸은 미국의 수녀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님은 페미니스트>를 보는 건 <두 교황>과 세상의 언설이 가리고 있던 여성의 관점과 역사를 다시 발굴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가 할 수 있는 건 사건을 기록하는 데까지다. 이후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세상에 풀어내고 생각하며 바꾸는 건 우리의 몫이다. 단지 교황청 내부 스캔들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로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데 관심이 있는 자들이라면 <주님은 페미니스트>를 보시기 바란다.
* 위 영화는 2020년 12월 1일 개막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개막 이후 온라인에서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또한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위 글은 본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castleinthetrees)에도 올라온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