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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pr 19. 2019

젊은 기술 창업가의 소회

폴라리언트 경험에 비추어

이 글은 2015년 5월에 창업하여 2019년 4월에 쏘카에 인수되기까지 (주)폴라리언트 공동창업자 장 혁이 느꼈던 짤막한 소회들을 나중에 제가 다시금 되새기기 위하여 두 달 여에 걸쳐 조금씩 정리해본 것입니다. 이 것을 공유하는 까닭은 동료 창업가들의 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폴라리언트는 하드웨어 기반 요소 기술이 업의 본질이었으며 창업자가 23세에 학생 창업하여 인수된 시기가 27세였으므로 보다 짧은 식견일 수 있음을 감안하여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인수합병의 조건을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부하며 거만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직 창업가로서 제 여정은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으므로 기록하기 위하여 남겨 놓습니다.

#조롱은 일상, 거절은 기본


제가 겪어온 창업가의 일상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면 '조롱은 일상, 거절은 기본'이었습니다. 만약 창업가인 당신에게 칭찬과 격려가 더 많다면 창업을 선언했으나 아직 법인을 설립하기 전이거나 당신이 있는 곳은 천국이거나, 어쩌면 comfort zone에 머물며 시장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 혁신적이라고 표현하는 솔루션이라면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적인 갈등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한데 왜?'라는 반응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본질의 역량은 커지도록 노력하되 거절을 자양분 삼아 껍데기를 바꾸어가는 것이 단 한 번의 완전함을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완전함인 '1'을 만들어내는 싸움


본의 아니게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청년 창업'에 정확히 해당되는 조건으로 인해 이와 관련된 질문도 많이 받아왔고 각종 지원도 많이 받았으며 온갖 설문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청년창업 활성화', '청년창업의 우려', '청년창업 이대로 괜찮은가' 등 매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취하라'입니다. 정부에서 주체적으로 운용하는 정부 과제나 사업이 본인의 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하시면 됩니다. 그것이 재무적 이득이던지 철학적인 본질이던지 그것을 통해서 본인의 업의 마일스톤을 달성한다면 역사는 증명한 당신에 의해서 쓰일 겁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여정은 0.9^n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의 1을 만들어내는 싸움이었습니다. 절대 한탕주의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완전함'의 의미입니다. 타인들에 의해서 올바르다고 평가받는 것만을 보고 90% 이상의 성공 확률이라고 보이는 것만을 취하다 보면 어쩌면 진정으로 도달하고 싶은 것에 더욱 멀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시장이 안 가면, 안된다


폴라리언트는 '편광을 활용한 실내 정밀 위치 측위 솔루션'이라는 기술로 먼저 시작한 회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이 기술이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을 시장을 역으로 찾는 게 최대의 미션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처음 언론에 노출되며 유명세를 탔던 건 VR 기술 회사로 포지셔닝했을 때입니다. 2014년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가 오큘러스라는 VR 기기 스타트업을 천문학적인 가치로 인수합병한 건으로 인해 VR은 '비욘드 모바일'이라는 감투를 쓰게 된 적이 있습니다. VR 기기의 하드웨어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컴퓨팅 파워의 부족으로 '모바일 VR 기기'에서는 손의 위치와 자세를 정확히 반영하는 컨트롤러가 부재했고, 이를 위한 정밀 위치 측위 솔루션으로 프로덕트를 빠르게 빌드업했습니다. 이 기술 데모가 빠르게 업계 주목을 끌면서 지구 상에 존재하는 VR 대기업들은 거의 모두 만났었고 이 중에 시장을 리드했던 몇몇 사업자들과는 Term sheet를 주고받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VR 기기의 일반 소비자 대상 판매는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고, 이로 인해 제조사들이 새로운 버전의 VR 기기를 내놓는 것에 주춤하게 되었으며 이런 악영향이 연쇄적으로 당사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VR/AR은 분명히 다가올 큰 파도이지만, 당사가 바라봤던 세부 시장은 아직 미성숙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던 비슷한 시기에 로보틱스와 모빌리티 업체로부터 이를 실내 측위에 활용하자는 제안이 동시에 3~4군데에서 들어오면서 당사는 PLS(Polarized Light Sensing)이라는 솔루션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불과 수개월만에 하드웨어 및 SDK 시제품을 완성해냈습니다. 그 이후에 관련 프로젝트를 끊이지 않게 진행하다가 연장선상에서 인수합병 제안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시장이 안 가면 안 됩니다. 당사는 요소 기술인 데다가 하드웨어 기반의 제품이었으므로 더욱이 큰 성장곡선을 가진 시장을 잘 선택하고 가장 강한 사업자와의 연대가 확장성에 필수적이었고 좋은 방향과 타당한 로드맵에 적절히 걸려있는 제품이라면 분명 기회가 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시장 지위가 매우 중요


업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사업자가 시장 지위가 가장 높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사업의 공리 중 하나는 '경쟁하거나 연대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본인이 영위하고자 하는 사업이 어느 정도의 시장 지위로 시작하는 것인지를 빨리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최종 고객과 가장 맞닿아있는 사업이라면 누구보다 빠른 실행력과 자본을 이끌어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며, 중간 고객에게 팔아야 하는 사업이라면 가장 큰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사업자와 연대함에 집중하는 것이 '포석'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일 것입니다. 폴라리언트는 후자에 가까웠고 모빌리티 사업에서 가장 최종 고객과 맞닿아있으면서 1등 사업자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쏘카와의 연대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이겨놓고 싸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팀(Team)도 제품이다


날카로운 제품은 결국 적절한 팀이 만듭니다. 스타트업은 제품이 시장에서 격렬히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우선순위지만 그것을 만드는 팀도 때로는 제품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보통 좋은 회사는 사랑받는 제품 뒤에 좋은 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과 스타트업의 함수는 항상 예측불가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빠르게 피벗(Pivot)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좋은 팀은 강력한 역량을 기반으로 빠르게 껍데기를 바꿀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완전함을 만들어내는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좋은 팀을 유지하고 모셔올 수 있도록 정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펀드레이징은 핑계가 없는 창업자의 능력


VR 시장 이후 로보틱스, 모빌리티 시장으로 빠르게 피벗 하면서 노출은 많이 되어있으나 지표가 부족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폴라리언트도 그 시기에 VC 펀드레이징을 진행했고 역시나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8년 내내 VC 및 기관투자자 50여 군데를 만났으나 결국 끝에 가서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에는 로보틱스 및 모빌리티 시장에 더욱 빠르게 진입하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를 모시자는 전략으로 급선회했고 계획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펀드레이징을 마쳤습니다. 이 끝없던 어려움을 지나고 펀드레이징을 마친 후 돌이켜보건대, 시장이 가지 않아서 펀드레이징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저 창업자의 핑계입니다. 좋은 방향성과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면 펀드레이징 전략을 급선회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그게 창업자 및 대표 자리값을 하는 것이며 함께 버텨준 팀원들에 대한 져버릴 수 없는 약속일 것입니다.  



#VC 이외 자본의 관심이 커지는 중


창업 이후 자본의 출처에 따른 돈의 성격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 창업가들에게 익숙한 것은 벤처캐피털과 많지 않은 수의 전략적 투자자 정도지만 최근 성장성(Growth)이 압도적으로 뚜렷한 시장이 드물고 이에 더하여 국내 Mid/Small Cap PE 간 딜 경쟁이 좀 더 격해짐에 따라서 그들의 레이더 안에 작은 사이즈의 스타트업까지 들어오게 됨을 느꼈습니다. 유연한 자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우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하고 기 보유하고 있던 회사와의 볼트온(Bolt-on) 전략을 구사하려는 Buyout 펀드들도 생각보다 많아졌습니다. 당사도 이와 관련된 제안이 여럿 있었기에 느낄 수 있던 분위기입니다. 


#보기보다 여유 없는 인생 선배


첫 사회생활이 창업이었으므로 대부분 만나고 인연을 맺는 분들이 나이가 많은 인생 선배들이셨습니다. 하나의 도메인에서 오랫동안 계셨던 분들은 그 자체로 경험의 분수이기 때문에 큰 자산이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는 건 대부분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이 업계는 멘토쉽의 이름으로 창업가가 기대하는 것 이상을 상회하여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각자가 있는 위치, 그리고 이해관계에 맞춰진 태도에서 출발한 결과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창업가들이 만나는 이들 중 많은 것들을 해줄 것처럼 말하는 이가 있다면 기대치를 낮추고 건조한 이해관계를 관찰하며 그저 최선의 승리 조합을 주도적으로 찾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과는 창업가 본인이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결과의 대부분 몫도 창업가 본인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잊히지 않기 위한 노력


이미 명성과 경륜이 있는 연쇄 창업가라면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창업가는 그들이 하는 일에 세상이 집중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건 기본이나 이를 핑계로 시장에 의견을 내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이미 충분히 성숙한 시장을 혁신하는 것이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장을 주도하려는 스타트업 모두 자신들이 바꾸려는 방향의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도록 열심히 소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거창하게 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소셜 서비스를 활용해서 의견을 개진하던지 작은 성과에 대해 꾸준히 공유하던지 잊히지 않기 위한 노력도 철저히 겸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은 자본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합니다. 모든 게 부족한 스타트업은 태생부터 잊히기 딱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라리언트는 적어도 잊히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왔다고 자부하고 이 때문에 좋은 분들을 많이 모셔서 팀을 견조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게 자존감이 높은 것


거절이 일상인 삶을 살다 보면 사람이 미워질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VC도 마찬가지이고, 업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이 점이 가장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조합을 주도적으로 찾다 보면 최근에 내게 거절을 했던 이가 꼭 필요해지는 상황이 옵니다. 진부한 격언에 나오듯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야 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저 먼저 다가가는 것이 답인 것 같습니다. 유명한 김미경 강사의 강연 영상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줄을 당기고 있는 데 이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한 사람이 다가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게 자존감이 높은 것이고 단 한 번의 완전함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부탁


대부분의 창업가는 '돈키호테'입니다. 특히나 자본시장에서 평가하기 좋은 지표가 있기 힘든 초기의 기술 창업가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완전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웃음거리가 되기에 딱 좋습니다. 그냥 대부분의 창업가에게 조롱하면서 실패할 거라고 평가한다면 90% 이상은 예언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돈키호테의 눈은 조금 더 먼 곳을 향해 있을 겁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가 시장에서 당장 당면한 문제가 아니거나 지금 당장의 성과와 거리가 멀어 보여도 그렇게 가다가 언젠가는 위협이 되는 돌부리를 치우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건 창업가의 몫이고 따뜻한 격려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을 한번쯤은 함께 봐줄 만한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혁신 성장이라는 거창함은 잘 모르겠고, 창업가에 대한 기대가 조금이나마 샘솟는 곳 그리고 돈키호테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탄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중 하나의 돈키호테는 큰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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