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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20. 2015

글이 가진 힘

존경받는 이들의 메모와 정리 방법을 중심으로

세상에 수많은 재능과 힘 중에 개인적으로 근래에 가장 탐나는 것을 꼽자면 '글이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능력이다. 인류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힘을 발휘해 온 글은 같은 주제를 쓰더라도 맥락에 따라, 편집에 따라 그리고 필자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을 선사하기에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전달방법이다.


본 텍스트에서는 우리 주변에 존경받는 이들이 '글'이 가진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책에 언급된 사례와 최근의 내 경험에 비추어 서술해보고자 한다.


최근에 흥미롭게 읽는 책인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미즈키 아키코 지음|윤은혜 옮김, 중앙 Books)는 전직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지은이가 퍼스트 클래스의 승객들을 서비스하면서 관찰했던 습관이나 공통점들을 재미있게 엮어낸 책이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인 성공을 경험한 이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공간 중의 하나인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석은 그들의 행동이나 습관을 통해서 존경받는 이들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고 이를 자신의 삶에 하나씩 적용해 나가니 본인도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본 책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특별히 '글에 대한 습관'이었다. 특별히 메모에 대한 공통점이 인상 깊었다.

...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의 승객들은 비행기 승무원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자주 메모를 했다. 승무원이 말하는 내용을 계속 적어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말을 메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충 얼버무리거나 쉽게 말로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들은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다가 메모를 해야겠다 싶을 때 바로바로 꺼내 들었다. 코트는 다른 곳에 보관해도 수첩과 펜은 늘 챙겼다.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적는 행위가 말하는 것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미즈키 아키코 지음|윤은혜 옮김, p. 34

메모하는 습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좋은 습관이지만 더 나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모는 '아이디어를 동결 건조시키는 방법'임과 동시에 기록하는 행위가 주는 신뢰를 통해 본인을 좀 더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실, 위의 사실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가 있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 D사 사장님과 면담을 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한 기회가 있었다. 자그마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을 최근에 대기업과의 합병을 통해 제 2의 성장을 꾀하고 계신 분이었고 개인적으로 그 자리를 통해 큰 울림을 받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분과의 시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메모를 쓰는 습관'과 그 메모로 하여금 느껴지는 대화의 신뢰감이었다. 사실 인생의 선배이자 업계의 큰 선배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지위와 내 지위는 큰 격차가 나는 자리였다. 그러므로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위축감이 들 수 있는 자리였지만 매 순간 적절한 타이밍의 메모와 눈맞춤 그리고 끄덕거림으로 집중해주셨고 그에 따라 대화의 깊이가 깊어져 갔다. 대화의 흡인력을 갖게 하는 요인 중의  그분의 기록행위가 크게 영향을 주었던 본 경험은 내게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이렇게 메모가 습관이 된 분들의 메모 방법은 어떠할까? 그리고 이러한 메모들이 긴 호흡의 글을 쓰는 데도 영향을 미칠까?


먼저 메모 습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관찰한 바로는 대화의 흐름 속 키워드는 비슷하지만 접속사가 달랐다. '역접'과 '근거' 등 키워드 간의 인과관계와 맥락의 호응을 자신만이 알아보거나 즐겨 쓰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영문접속사와 나만의 구조를 즐겨 쓰는 데 다음과 같다.

근거를 서술할 경우 밑줄을 친 후에 아래 댓글 형식의 화살표를 표시한 후 why?라는 접속사로 시작하여 기록하고 역접의 경우에는  But,이라는 영문 접속사를 즐겨 쓴다. 왜냐하면 빠르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화살표로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꺽쇠를 사유 서술의 시작을 나타내는 징표로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짧은 메모를 이용해서 내가 그토록 원하는 긴 호흡의 글을 쓰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금년에 읽은 책과 위의 미즈키 아키코의 책 모두 소개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색인 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색인 카드(Index Card)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의 키워드를 저런 손바닥만 한 색인 카드에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그 카드의 연속적인 배치를 통해 맥락을 잡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미즈키 아키코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웃옷 가슴 주머니에 종이 카드를 몇 장 넣어두었다가 메모 용지 대신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카드를 준비했으면 여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쭉쭉 적어나간다. 한 장에 아이디어 하나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여백을 비워두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카드 한 장에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써버리면 카드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다. 이 원칙만은 꼭 지키기 바란다. 아이디어 카드가 어느 정도 모이면 트럼프를 나열하듯이 책상 위에 늘어놓고 정리를 시작한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사고의 흐름을 알 수 있고, 중요도나 우선순위에 따라 나열하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가 보인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미즈키 아키코 지음|윤은혜 옮김, p. 43

그런데, 이 방법과 동일한 방법을 <에디톨로지(Editology)>의 김정운 교수도 똑같이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독일 유학시절의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김정운 교수가 독일 유학 당시 몇십 명의 학자의 이론을 빽뺵히 연구해서 정리해 가니 지도교수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Was ist deine theorie?

네 이론은 뭐야?'

그때 김 교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큰 충격과 실망을 한 채 그 자리를 나와만 했었고, 독일 학생들의 공부법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상에 따르면, 그들은 카드를 적극 활용하여 개념을 메모하고 그 개념의 맥락적 정의를 나름대로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었으며 이를 창의적인 데이터베이스 활용이자 맥락적 편집이라고 말한다.

매 순간의 아이디어 혹은 관심사에 대한 짧은 메모들이 큰 맥락을 이루는 데이터베이스의 하나의 튜플이 되고 그 메모의 핵심 키워드 주변의 개념들은 메타태그의 역할로 맥락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도맡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할 때에 나도 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니는 조그마한 수첩에 기록한 뒤 각 노드의 맥락적 흐름을 나름대로 정의해서 큰 그림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일전에 글로 전달하고 다짐하였던 '나만이 하는 이야기'를 위해 더 효율적이고 구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고 그 것이 나의 이해 방식에 큰 기틀이 되었던 것을 경험하였다.

매 순간의 아이디어와 기록의 습관을 통해 때로는 인간의 신뢰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 메모들이 이어져 긴 글을 창조해내는 '글이 가진 힘'.
글이 짧고 빠르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소비되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빨리 퇴화되고 있는 인지적 능력이기에 우리 모두 '글이 가진 힘'을 길러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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