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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테일 Aug 30. 2019

<펜시브>에 담긴 비공개 글들

매운맛과 순한 맛의 사이에서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쓴다.

  질이나 내용을 떠나 일단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재밌다. 논문이나 에세이도 이렇게 재미있으면 좋으련만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매일 아침 연구실이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갖다 두고 노트북을 펼친다. 곧바로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쓰기에는 아직 뇌가 덜 깨어있는 경우가 많기에, 스트레칭 겸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그것은 초고인 경우도 있고 특정 주제에 대한 큰 맥락만 잡는 경우도 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쓰다 보니 문맥이 이상하거나 같은 내용이나 어휘가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손을 멈칫하는 순간 글의 질을 따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영영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키보드에 손을 얹은 이상 손을 멈추지 말자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방침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자신의 기억을 담는 물그릇 <펜시브>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브런치는 바로 그 <펜시브>와 마찬가지이다.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 그 내용들을 일단 글로 바꾸어 쏟아붓는다. 그러다 보니 민감한 글들이 상당히 <매운맛>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과연 지금 올려도 되는 글일까?

  얼마 전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글을 보고 화가 난 적이 있다.

  나는 현재 오사카에서 유학 중이고 여기는 일주일 넘게 비가 질리게 내리고 있다. 지난 장마나 태풍이 왔을 때보다 비가 더 많이 온다고 느낄 정도이다. 국지성 호우이기에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으며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가방에서 우산을 채 꺼내기도 전에 옷이 다 젖는 사태도 발생한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나게 쏟아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게 지금 일본 규슈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규슈 지방은 산도 많고 큰 도시나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아직 목가적인 분위기의 곳이 많기에, 비가 많이 오면 금방 침수가 되거나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아무튼 그곳은 여기보다 비가 더 많이 왔기에 상황이 더 심각했으며, 다수의 사망자와 수재민이 발생했다고 했다. 근데 한국의 모 게임 사이트의 댓글은 가관이었다. 잘 죽었다, 지구야 힘내라(즉, 더 피해를 주고 더 죽여라) 등등.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일까? 이 댓글을 이 사람들이 근무하는 회사나 학교, 가족들에게 당당히 보여주면 이 사람들은 과연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비난한 사람들 일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이나 피해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말투가 현 시국과 맞물려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관계를 떠나 이런 댓글들이 추천을 받고 정당시 되는 상황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지난 7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일어난 방화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 때도, 죽어도 싸다는 내용과 일본인이니까 불쌍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댓글이 줄을 이은 적이 있었다. 결국 이런 글들은 <사람들이 테러 행위로 죽었는데 무슨 소리냐><지금 시국이 시국인데...>라는 댓글이 뒤섞여 소위 개판이 되었다. 트위터에서도, 안타깝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추모하거나 모금을 하면 안 된다는 글이 올라왔고 거기에서도 소위 개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과연 증오나 혐오를 근거로 한 표현은 정당한가>에 관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다 쓰고 난 후, 차마 발행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주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걸 소재로 글을 써도 괜찮았던 것일까? 비록 저 사람들의 언행은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민감한 사안이 그것을 덧씌우고 있는 터라 저 사람들의 행위가 정당화되고 도리어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면 어떡하지? (물론 이렇다면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해 전하고픈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서 지금도 그 글은 내 서랍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딱 하나, 이 말은 확실히 하고 싶다.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적어도 도덕적인 기준은 지키자는 말일뿐이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것인가?

  <증오나 혐오를 근거로 한 표현은 정당한가>에 대한 것은 또 다른 서랍 속 글에도 드러나 있다.

  약 15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지인이 있다. 그 친구는 철학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여 논문을 쓰고 있는데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터라 중도적인 나와 정치 맟 사회적 사안에서 자주 의견이 엇갈리곤 했다. 하지만 서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의견 차이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터라 그것이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로의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정도로,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싸움을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문학이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므로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답이 날 수밖에 없는 사안에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 친구와 오랜 시간 나눈 이야기가 바로 저것이었다. 증오나 혐오를 근거로 한 운동이나 표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소재로도 꽤나 긴 글을 썼다. 이것은 나와 그 친구가 페이스북을 통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한 방식이었는데, 쓰다 보니 아무래도 굉장히 민감한 이슈가 많이 드러나게 되어 지금 발행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 내용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대학원을 같이 다니던 동기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사안에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니 특정 의견을 표현할 때에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되풀이했다. 그래서 그 글도 완성된 채로 내 서랍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순한 맛으로 바꾸어야 할 <펜시브> 속의 매운맛 글들

  결국 이 글을 통해 그 내용을 대충이라도 드러낸 것이 아니야?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것이 맞다.

  그 글들은 이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깊은 내용이며,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반발할지도 모를 다소 자극적인 내용도 들어있다. 아마도 추후 발행을 한다면 자극적인 맛은 전부 제외한, 순한 맛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을 연구하고 그에 관련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저 중심적인 생각, 즉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가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표현의 문제이다. 상술하였듯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천편일률일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반대 의견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우를만한 지식과 교양이 부족한 현재로써는, 그나마 더욱 순한 맛으로 나타낸 이 글을 통해 내용을 아주 살짝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지옥의 매운맛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본능(?)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초고에선 극한의 매운맛이더라도, 실제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에는 납득이 갈 정도의 매운맛으로 바꾸지 않으면 일단 글 자체가 많이 읽히지 않을 거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글은 참 어렵다. 더욱이 민감한 사안, 정치적 사안을 드러내는 글이라면 그 중간을 지키기가 더더욱 어렵다. 이렇게 내 서랍에 쌓인 글들은 평생 나오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글감으로 탈바꿈하거나 다른 주제에 곁다리로 끼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들이 내 머리를 빠져나와 몸을 타고 흘러내려, 결국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조차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흘러가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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