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심리적 장벽을 뚫는 그 미묘한 존재
사실 이 글은 지난주 브런치 칼럼을 보면서, 그에 반대되는 글을 써보자는 생각하에 쓰게 된 것이다.
그 글은 호칭에 관련된 것으로, 식당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작가를 "어머님"이라고 부른 것에 다소 어색함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댓글도 공감을 나타내는 분들의 내용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호칭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학생으로 보이면 "학생",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면 "총각" 혹은 "아가씨",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면 "아저씨" 혹은 "아줌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저씨""아줌마"는 액면가가 꽤 있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기분이 다소 안 좋아지는 효과(?)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호칭이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의 규범처럼 통용되어 왔다.
몇 년 전 석사 과정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신지 얼마 안 된 젊은 교수님이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사진사가 교수님을 "아버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아이의 아버님"이라는 말로 썼을 수도 있지만, 그냥 "아버님"이라고 부른 것에 다소 위화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시던 교수님은 이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진짜 가족관계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사도 한 가족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여 긴장 완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가족에 대한 호칭이 곧바로 <가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중년 남성을 <사장님>, 중년 여성을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곧바로 그 사람들이 실제로 사장님이나 사모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것은 하나의 <호칭>인 것이다.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쓰는데, 손님들에게 살갑게 대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거나 서비스 품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비스업 종사자 분이 자신을 "저기요"라고 부르면 굉장히 성의 없게 들리고, "손님"이라고 하면 사무적으로 들린다. 그렇기에 친근함을 높이기 위해 가족 호칭을 사용하거나, 상대를 높이는 의미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쓰이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그냥 "손님"으로 불리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심리적 방어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브라운 & 레빈슨이 제창한 <폴라이트니스(Politeness)>라는 언어학 이론이 있다. 이것을 곧장 우리말로 옮기면 <정중함>이 되어서 의미가 와 닿지 않지만, 언어학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심리적 영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호감을 갖는 사람이 곁에 다가오길 바라는 동시에 모르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곁에 다가오면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처럼 언어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영역>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늘 그것을 침범하거나 혹은 침범당하면서, 서로 눈치 싸움을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취미나 관심사 같은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그런 것을 물어보면 쌀쌀맞게 대하거나 대답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높이 설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동등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점차 안으로 파고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높이 설정한다. 이러한 원인은 비단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도 있으므로 쉬이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사회가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심해졌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가족>이나 <직급> 호칭을,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나 직급, 즉 <사회>는 자신이 속한 내집단인데, 그 내집단에 모르는 사람이 훅 들어오는 것처럼, 장벽을 뚫고 발을 들이는 것처럼 느끼고, 여기서 우리는 위화감이나 불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서비스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나 아저씨 분들은 손님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곧 접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관점에서 "저기요"나 "손님"대신 가족이나 직급 호칭을 사용하여 손님과 동등한 입장이 되려 한다. 세대 문화 간, 직종 간마다 다른 <심리적 장벽>의 차이가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괴물 같은 친화력을 가진 친구가 한 반에 한 명씩은 존재했다. 만일 그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면, "손님"이라고 정중하게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특성에 맞게끔 "이모""어머님""아버님""누나"와 같은 호칭을 쓰면서 호들갑(?)을 떨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가족 호칭은 그 사람의 개인적 영역에 들어가는 것과 상대와 호감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의 to 부정사와 전치사 to가 모습이 같다고 해서 그 역할까지 같은 것이 아닌 것처럼, 이 둘은 비록 어원이 같을지는 모를지언정 분리하여 파악하고 공부해야만 한다. 가족 관계의 <형><오빠>라는 호칭과 사회생활에서의 <형><오빠>라는 호칭이, 나이가 많은 사람을 칭하는 것일 뿐 <가족 관계>라는 교집합으로 묶여있지 않은 것처럼, 그 모습이 같다 하더라도 같은 역할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이다. 단골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는 친구를 보고 "뭐야, 이모가 운영하시는 곳이었어?"라고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가게에서 <사장님>이라 불리는 것을 듣고는 "뭐야, 너 사장님 됐어?"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없다. 우리는 모두 그것이 일종의 <서비스 언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식당이나 매장에서 <가족 호칭>으로 불리어 오묘한 기분이 들었거나 위화감, 불쾌감을 겪었다면 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아마 대부분은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건드린 것에 대한 반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심리적 장벽이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 손님이 가족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할까 좋아할까를 판단할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무난한 <서비스 언어>로 대하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다. 더욱이 그 가게가 연령대가 다양한 가족 단위로 오는 곳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 자주 오는 식당이라면 무난하게 "손님"이나 "고객님"으로 부르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욕설을 하거나 반말을 하는 등 아주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이상, <가족>이나 <직급> 호칭은 우리가 충분히 허용해 줄 수 있는 범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호칭>의 미묘함,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