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불감증>과 <선택의 역설>
지독한 게임 불감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미친 듯이 게임에 빠져 있었다. 당시는 온라인 게임이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고 그에 상응하듯 온갖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지만, 혼자 진득이 즐기는 게임을 좋아했던 나는 세뱃돈을 탈탈 털어 세가에서 나왔던 <드림캐스트>라는 게임기를 샀다. 탈탈 턴 돈으로 기기를 샀으니 게임도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게임을 정말 지겹도록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 1년 뒤, 나는 그 게임기를 중고로 팔고 이번에는 닌텐도에서 나온 <게임큐브>를 구입했다. 당시 <드림캐스트>는 게임 발매가 끊긴 수명이 다 된 게임기였던 것에 반해 <게임큐브>는 지속적으로 게임이 출시되던 것이었고, 게임 가격은 드림캐스트의 두 배를 능가했다. 정식 발매된 게임도 상당히 적었던 터라 일본산 중고 게임을 찾아다녔고 그마저도 가격대를 고려해가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소니에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고 수능이 끝난 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XBOX 360>를 샀다. 하지만 각 게임기당 게임은 두세 개뿐이었고 돈이 없던 나는 그 게임들을 정말 지겹게 즐겼다.
당시에는 밤새 게임을 즐긴 적도 있었다. 다소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고등학생 때 여름방학 때는 하루에 12시간을 게임만 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실제로 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하셨다. 아무튼 그렇게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게임에 투자를 했다. 그간 벼르고 벼르던 게임들을 사서 즐겼다. 하지만 학교 생활이나 아르바이트로 시간적 여유가 없어지자 게임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통학시간이 길었던 나는 밖에서 즐기기 위해 휴대용 게임기기를 몇 개나 샀는데 그 이후로 게임이 쌓여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2008년 중후반,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기, 그분이 오셨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을 하고픈 욕망은 있었지만 정작 게임을 잡으면 지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피자나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몇 조각 먹으니 너무 물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고, 그런데도 안 먹으니 다시금 그리워지고 또 먹자니 물리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생각해보라. 지옥(?)이 따로 없다. 게임 불감증에 빠진 나는 게임이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게임을 시작했다. 그렇게 클리어하지 못하는 게임이 쌓여가지만, 또 새로 나오는 게임들은 어찌나 재밌어 보이던지. 결국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게임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호흡이 짧은 퍼즐류나 리듬게임류를 주로 하게 되었고, 이러한 불감증은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혔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가 2004년 제창한 <선택의 역설>이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다. 쉽게 설명하면, 상품 종류가 많아질수록 만족도가 늘어나는데 반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훨씬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가 고려해야 할 요소도 덩달이 많아지고, 하나를 선택했을 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후회가 도리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을 칠하는데 다섯 가지 색깔과 스무 가지 색깔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선택지는 후자가 훨씬 다양하므로 우리는 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후자가 훨씬 많고, 아 이 색이 아니라 저 색을 칠했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는 식으로 후회하고 되는 확률도 후자가 당연히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택지가 많아지면 그렇게 생각하는 빈도가 훨씬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것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한다.
<게임 불감증>도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면, 우리는 우리 선택을 가능한 정당화 하면서 그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그 게임을 끝까지 클리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부유해지고 어디서든 게임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수백 가지 게임의 가격, 리뷰, 장르를 따져가며 선택해야 하고 또 그 선택이 잘못됐다고 하면 바로 또 다른 게임을 사서 플레이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우세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조금만 어렵거나 막히면 곧바로 포기하고 다른 게임을 사고, 게임을 산 돈이 아까워서 플레이를 해야 하지만 시간은 없고, 그 시간 동안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한정되어 있으니 굳이 어려운 걸 하고 싶지는 않고, 이러한 뫼비우스와 같은 굴레에 갇히게 된다. 이것이 <게임 불감증>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로, 요즘은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언제든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작품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스트레스이며 하나를 진득하게 끝까지 보는 경우도 적다고 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도리어 만족도는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는, 기묘한 반비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0년 가까이 게임 불감증에 시달린 내가 선택한 방법은 게임을 되도록 한 달에 하나씩만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가급적 다른 게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특가로 세일을 하는 게임이 있더라도, 정말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면 두세 번 정도 나에게 되물어보곤 한다.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은 걸까? 단순히 가격이 싸니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친한 형이 "가격 때문에 못 사는 거라면 사도 후회는 안 하는데, 가격 때문에 사는 거면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거진 90% 정도 맞는 듯하다.
유학생이자 박사 과정인 지금도, 논문을 읽고 책을 읽고 내 논문을 써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꾸준히 게임을 즐긴다.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 내 연구 자료이기도 하거니와 담배나 술 등을 일절 하지 않는 나의 유일한 취미 활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유일한 취미 활동>이라는 점이 나를 압박해서, 게임을 좀 더 재밌고 완벽하게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러면 게임 불감증과 비슷한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데, 그때는 게임을 끄고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게임을 왜 하지? 내가 즐거우려고 하는 거지? 공략집도 없었던 옛날에는 그냥 게임을 즐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잖아? 그것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게임에서 져도, 또 완벽하지 않더라도, 게임 그 자체를 즐기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다소 차분해지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게 된다.
<게임 불감증>을 없애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다시 제한된 선택 속에 가두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신중해지게 되고, 게임 하나를 오랜 시간 붙들 수 있게 되었다. 아직 클리어를 하지 못한 게임이 세 개나 있는터라, 8월에는 게임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두 개는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닌 잠깐잠깐 하는 종류의 게임인지라 실질적으로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게임 하나의 엔딩이 머지않았으므로 새로운 게임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게임을 모두 살 수 있겠지만, 나를 제한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종용한다. 또다시 저 지옥 같은 <게임 불감증>에 빠질 바에는, 이렇게 스스로를 제한하는 편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만일 <게임 불감증>이나 여타 불감증에 빠진 분들은, 여러 가지를 선택하기보다는 몇 개에 집중하여 억지로라도, 끝까지 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 과정도 만만찮은 스트레스겠지만, 끝없는 지옥의 굴레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거 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쌓여 있는 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성취감도 있을 것이고 이 성취감이 자존감(?)으로 이어지며 조금 더 현명하게 콘텐츠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