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의 현대 사회
"일본인은 속내랑 겉으로 대하는 거랑 다르다며?"
나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일본어에는 <다테마에>라는 말과 <혼네>라는 말이 있는데, 전자는 보통 겉치레를 뜻하고 후자는 진심, 그러니까 속마음을 가리키며 이것들은 언어뿐 아니라 행동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단어가 있다는 사실은, 일본인은 평소 생활에서도 이 두 가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과하게 친절한 것도 어찌 보면 <다테마에>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서비스업을 위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바뀌었지만). 그래서 일본인은 믿으면 안 되고 함부로 마음을 열어서도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길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엮이게 되며, 이러한 <다테마에>와 <혼네>가 비단 일본인의 특성인 것일까 라는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모두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테마에>와 <혼네>를 늘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편 관련 업무를 했을 당시 일이다. 나를 포함 총 여섯 명이 우편 관련 업무를 담당했는데 나는 택배 관련 업무를 맡게 되어 홀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혼자가 편했기에 크게 외롭거나 하진 않았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우편 업무, 두 명은 프린트 기기 관련 업무를 했던 터라 4:2라는 묘한 대립관계(?)가 있었는데 점심을 함께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머지 두 명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일하는 터라 잘 몰랐지만, 아무튼 일도 잘 안 하고 어떻게든 요령만 피우는 것이 어째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반겨준다. 사는 이야기를 하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다가 사라지면, 다시금 큰 한숨을 쉬며 소위 호박씨를 까기 시작한다.
또 나와 같은 방에서 일하던, 퀵서비스를 담당하던 분이 계셨는데, 아무래도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고 군것질거리고 나누어 먹는 사이가 되었다.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일을 챙겨주기도 하는 등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퇴사를 하고 후임자가 구해지지 않아 우리 패거리(?) 중 한 사람이 잠시 파견을 나가서 일을 하는 동안, 내 험담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한다. 사실 험담이라기보다는 나에 대한 불만이라고 할까. 퇴사 후 만난 같이 일하던 동료이자 친구에게 들은 그 말은, 역시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씁쓸한 교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숨기고 어느 정도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며 그 사람이 싫더라도 가능하면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걸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사회생활>의 척도가 갈릴 정도이니, 이러한 <캐릭터> 연출은 상당 수준 필요하다고 쉬이 추측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표현한다면, 일각에서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곧, 웬만한 능력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으면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를 모두 좋아하지도 않고 도리어 아무 감정도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음에 없는 정형화된 말을 입에 담거나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라지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그게 얼마나 힘들었으며 사실은 그 사람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평가를 늘어놓고, 그 평가는 우리가 그 사람에게 대했던 말이나 행동과는 정반대 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인의 <다테마에>와 <혼네>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일본인은 교활하니까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를 것이다, 라는 평가는 곧바로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고, 그것이 상술하였듯 사회생활과 관련되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우리가 취한 이러한 표리부동은 정당하며 일본인은 기질적으로 원래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낙인은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다테마에>와 <혼네>를 구별하지 않고, 늘 일관된 태도를 취하며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을까?
그래서 요즘 나는"일본인은 속내랑 겉으로 대하는 거랑 다르다며?"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라는 식으로 되받아치곤 한다. 어쩌면 이러한 표리부동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다는 다수 일본인만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었고 그렇기에 <일본인=<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었을 테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일본 특유의 기질이 아니게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것이 옳은가 나쁜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므로 판단을 보류하지만, 약간의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