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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테일 Sep 10. 2019

한 가지 문제, 복수의 관점

  잊고 있던 논문 투고 심사가 끝나고 심사 결과서가 날아왔다.

  늘 겪는 일이지만, 강하게 내려치는 팩트 폭행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정작 쓸 때에는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 지금 읽어보면 엉망이고, 분명 눈에 띠지 않았음에도 지적사항을 보고 확인해보면 오타가 몇 군데나 있곤 하다. 처음에는 멘털이 가루가 되고 재능이 없나보구나며 한탄했지만, 이내 대부분 연구자분들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하는 것을 보며 다소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애초에 수정사항이 하나도 나올 수가 없는 편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참 재미있는 것이, 같은 부분을 <서로 다르게 수정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이다.


  나는 보통 일본어로 논문을 쓰는데, 아무래도 현지인이 아니다 보니 어색한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제아무리 일본 분들이 봐주신다 해도, 그분들도 나름대로의 연구가 있다 보니 부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따금 내가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본능적으로 이상하거나 어색한 곳을 고치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 수정사항의 약 70% 이상은 어색한 일본어 수정이나 오탈자 수정 요청이다. 근데 가끔, 하나의 오타 내용을 가지고 각각 다른 두 분의 교수님의 정반대로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 "The doors open."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면, 이 open이라는 동사는 자타 동사로 모두 해석이 가능하기에, "문이 열린다"와 "문을 연다"라는 행위자가 드러나느냐 숨어있느냐는 미묘한 뉘앙스를 나타내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나타난다. 보통 문맥을 파악해서 독자적으로 선택하곤 하는데 설령 신기하게 이 두 가지 문맥이 모두 들어맞아지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하면, 참 이건 뭐라고 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된다. 그리고 한 교수님은 "문이 열린다"로, 다른 교수님은 "문을 연다"로 수정하라는 제안이 적혀오면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내용에 있어서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이번 논문은 결론 부분에서 두 분의 의견이 갈렸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한 연구를 참고하여 그것을 토대로 쭉 써내려 갔건만, 한 교수님은 그것이 설득력 있다고 하신 반연 다른 교수님은 그렇게 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면서 수정을 요청하신 것이다. 사실 수정본을 다시 보낼 때까지 시간이 매우 촉박하므로 전자를 선택하여 수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 논문을 쓸 때와 달리 다소 객관적이 된 지금 다시 글을 읽어보면, 과연, 이것은 내 고찰 내용을 바탕으로 써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겠구나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러한 수정 사항은 또 따로 모아 심사해주신 교수님들께 송부해야 하는데, 그때는 왜 수정했는지, 그리고 왜 수정하지 않았는지를 구구절절이(?) 써야 한다. 마지막 내용 같은 경우 솔직하게 "시간이 없었어요"라고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긴 하지만, 그래도 연구자로서의 체면(?)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적당한 이유를 생각해내야 한다. 이 과정이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논문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그리고 이러한 심사평을 보면, 참 관점이란 다양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정해진 답은 없으며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인문학 세계에서는 결국 관점을 많이 접하고 그 관점에 서서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스스로 답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그것들을 비교하고 비판하는 행위가 피와 살이 된다. 수많은 수련을 하고 상대와 싸워온 무술의 달인이 상대의 움직임을 아주 조금만 보고도 그것이 어떠한 동작으로 이어질지 미리 예측하고 선수를 치는 것처럼, 인문학적 지식도 다양한 관점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상처 입힘으로써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결국 내가 답으로 세워둔 관점도 언젠가는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각오하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을 소위 <꼰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 커피 한 잔에 책을 읽고 논문을 수정하면서, 하나의 문장과 하나의 오타에 관련된 상반된 의견을 보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작업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그 빈도는 적을지언정, 꾸준히 그것을 쌓아 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훌륭한 인문학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자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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