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속성을 가진 일본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잠시 일시 귀국을 했을 때 본 <조커>라는 영화이다. 텔레비전에 흐르는 광고부터가 굉장히 강렬했고, 시사회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온갖 논란을 만들어 낸 영화이기에 관심이 있었다. 본래는 한국에 개봉하기 이전에 일본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것을, 태풍과 휴강이 겹쳐 귀국일을 미루게 되었고 덕분에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같은 시기에 개봉했다)
본디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블랙 코미디와 풍자, 미장센이 들어간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 내 특성상, <조커>는 내 인생 영화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영화는 앞서 말한 <지구를 지켜라>와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정도일까. 둘 다 DVD를 소장하고 있고 언젠가는 블루레이도 구입할 계획이다.
영화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나는 <조커>의 주인공인 아서가 일본어판에서는 <보쿠(僕)>라는 1인칭을 쓸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일본으로 돌아온 내가 본 <조커> 예고편의 아서는, 아니나 다를까 <나>를 칭하는 1인칭으로 <보쿠(僕)>를 사용하더라. 그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보쿠(僕)>라는 1인칭 이외에 어울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캐릭터의 나라>라고 할 만큼 무수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큰 백화점부터 작은 가게, 각 지자체의 파출소나 식당에까지 자체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와 관련된 상품들을 팔기도 한다. 그러한 일본 사정상, <일본어> 역시 <캐릭터>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록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더라도 남성 인물이 1인칭으로 <오레(俺)>를 사용하느냐 <보쿠(僕)>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전자는 젠더 측면에 있어 <남성성>을 상당히, 후자는 조금만 강화한다.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남성이 쓰는 1인칭>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들이 젠더 측면에서 <남성성>을 나타내는 측면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다노부 토시유키(2006,2011) 교수님은, 캐릭터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성별><품위><격><연령>이 있으며, 이 네 가지 기준은 각각의 기준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고 논하였다. 가령, <성별>이 <남성>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품위>는 다소 떨어지며 <격>은 올라가며, <여성>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품위>는 올라가지만 <격>이 떨어진다고 하였다. 여기서 <격>이란 쉽게 말하면 <권위>라고 할 수 있다. 그 권위라는 것은 단순히 지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타인보다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나타나는 우월성, 나이에서 나타나는 우월성 등 넓은 의미의 것을 나타낸다. 나는 이 <성별>이 신체적 성별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 성별인 <젠더>에 의거한다고 생각하였고, 투고 논문을 통해 그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커>의 주인공 <아서>는 영락없는 <보쿠(僕)> 캐릭터이다.
캐릭터는 <스테레오 타입>과 얽혀 존재한다. 각각의 언어 요소(1인칭, 2인칭, 3인칭, 어휘의 선택, 문법의 선택, 조사의 선택 등)에는 이러한 캐릭터 요소가 조금씩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블록 놀이>를 하듯 엮어 특정 캐릭터를 제시하곤 한다. 1인칭 <보쿠(僕)>는, 속성적으로 남성성이 다소 옅으며, 그로 인해 수반되는 <품위>의 하락도 적으며 <격>의 상승도 적다.
작중 아서는 무기력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 애쓰고, 효자처럼 보이는, 커다란 야망을 가지지 않은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이 사회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한들, 그것을 돌파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적극적인 의지란 <모험심>으로 치환될 수 있으며, 이 <모험심>은 젠더적으로 굉장히 마초적인, 즉 <남성적>인 성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모험심과 경쟁의식에 불타는 남성 인물들 대부분이 <오레(俺)>를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만일 <아서>가 <오레(俺)>를 쓰면, 1인칭으로썬 틀리지 않는 선택이겠지만 캐릭터 해석에서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오레(俺)>를 쓰는 것 치고는 굉장히 소심하고 모험심도 없으며 조심성이 많은데? 일본인, 혹은 일본의 대중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어색함을 느끼며 <캐릭터 해석을 잘못했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국어에는 이러한 언어 전략이 상당히 적으므로 문맥을 통해 인물의 캐릭터를 파악해야 하는데 반해, 일본어는 패키지화된 언어 요소를 배치함으로써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에도 해당 인물의 캐릭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물론 이것이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하며 캐릭터를 일원화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 <스테레오 타입>이 작품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현실의 언어 사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일례로, 미즈모토(2004)는, 여성 캐릭터가 사용하는(즉, 여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여성어>는 작품 내에서만 존재하며 현실에서는 5~60대의 중노년층을 제외하면 5% 미만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러한 캐릭터는 남성 작가들뿐 아니라 여성 작가들 또한 빈번히 사용하고 있음을 논하며, <스트레오 타입>이 부정적인 생각과 합쳐져 생기는 <편견>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캐릭터>화 된 전략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미즈모토는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이 젠더에 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1인칭 <보쿠(僕)>를 사용한다고 저러한 성질이 붙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일본어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일본어는 현실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작품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데이터베이스가 별도로 구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미즈모토(2004)의 의식 조사에서도 밝혀졌듯이, 이 두 가지 데이터베이스를 상호의존적이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한 영역의 의식이 별도의 영역에 그대로 주입되면 다소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이따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책으로 일본어를 배운 학습자들이 하는 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이유도, 그것은 가상에서 존재하는 말이지 현실에 존재하는 말이 아니기 (혹은 존재하면 어색한 말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서가 현실에 존재했더라면 그는 그 어떤 1인칭을 써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와타시(私)>를 써도 되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보쿠(僕)>를 써도 되며 <오레(俺)>를 써도 무방하다. 하지만, 작품이라는 틀에 들어온 조커는 <보쿠(僕)>가 가장 어울린다. 그것은 일본어로 번역될 때 어쩔 수 없이 붙게 되는 속성이자 특수성이며, 일본어의 <캐릭터성>을 면밀히 보여주는 사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