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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테일 Feb 22. 2022

약 20년 공부 인생 돌아보기 [#01]

강요가 싫었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 공부에 영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 하는 척을 했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을 반복하기만 했다. 공식을 외우고 한자를 쓰고 수학 문제를 풀고 역사를 외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을 "왜 배우는지"에 대해서다. 그리고 나는 공부에 반감을 느꼈다. 그것을 "왜 배우는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잘했던 과목이 사회, 국어, 한자였다. 수학과 과학을 가장 못했는데, 그건 "이걸 배워서 도대체 어디에 써먹으라는 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유"를 모르니까 시간을 들여서 이걸 익혀야 하는 동기부여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추후, 고등학교 때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철학적 질문이 된다.


피아노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 치기를 좋아했다. 이 학원에 가게 된 계기도 참 그 당시 어린아이스럽다.

  동네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중 친구 하나가 피아노 학원에 갈 시간이 되었다고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잠깐 피아노 학원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에 가서 놀고 있는 피아노를 쳤고, 나는 그날 바로 집에 가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겠다고 떼를 썼다. 이게 8살 무렵의 일이었다.

  내 피아노 실력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빈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부모님을 불러 예술 중학교에 예술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 수준이라고 심각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진위는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바이엘(요즘도 이 교재를 쓰는지는 모르겠다)을 거의 한두 달 만에 떼고, 체르니 100을 뛰어넘어 바로 체르니 30번으로 넘어갔다. 내 초등학교 인생은 공부보다 피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던 피아노와의 인연이 어긋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6학년부터였다.

  예술 중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선생님의 욕심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거의 매일 3~4시간을 있게 되었다 (보통은 1시간 정도였다). 학교가 일찍 끝난 날에는 거의 6시간 가까이 있기도 했다. 과제곡을 치다가 틀리면 선생님께 혼났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분명히 피아노를 좋아해서 치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은 "왜 내가 그것을 쳐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강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좋아했던 피아노에서도 서서히 멀어졌고, 쇼팽의 "즉흥환상곡"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우리에겐 "월광"이라고 잘 알려진)의 모든 악장을 외워서 완벽하게 친 후 피아노를 관두었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피아노 대신 일본어를 배우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 전반을 좌우하는 선택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흥미를 떠나서 "목적"이 없으면 공부를 "안" 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기에 선택한 일본어

  일본어는 내가 5~6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맞벌이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대가족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둘째 삼촌, 막내 삼촌, 엄마, 아빠, 나 이렇게 7명이 살았으니까 말이다. 특히 막내 삼촌이 유독 나를 귀여워해 주셨는데, 그 삼촌이 대학을 다니면서 교양으로 일본어를 배웠다. 삼촌과 같은 방을 썼던 5살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어 학원을 다니던 삼촌이 일본어 학원에서 빌려온 "뉴타입 (현재 한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지만, 한때는 한일 양국에서 애니메이션 관련으로 명성을 떨치던 잡지였다)" 잡지와 "크레용 신짱 (짱구는 못 말려)" 애니메이션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어의 알파벳에 해당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혼자서 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덕후 인생은 역사가 참 길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 게다가 짱구라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정식으로 들여오기 전부터 접했으니까 말이다.

<짱구는 못말려>의 3번째 엔딩 노래인 <DO-して>

  아무튼... 피아노를 그만하고 일본어를 배우겠단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뭘 해도 학교 공부보단 재밌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고로 이러는 동안에도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것이, 집에선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미" 이하로는 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걸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배워보겠다고 책도 몇 권 사서 기본 문법을 익히고, 방문 학습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일본어를 "덕질" 목적으로 배웠다. 목표가 뚜렷하니까 무엇을 해도 금방 외웠고, 실력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듣고 싶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단어집을 사서 외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생활을 어중간하게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다. 이 무렵에도 나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고, 일본어는 다른 애들보다는 조금 더 아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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