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도착해 잠깐의 적응기간을 거친 우리는 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40만 평이나 되는 학교의 반절 이상은 숲으로 이뤄져 있었고, 그 숲 속에는 학교 건물과 기숙사, 사택 도서관 등등 다양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숲 속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그나마 제일 가까운 기숙사 '마틴 홀'과 '마가렛 홀' 중에서 '마가렛 홀'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가렛 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기숙사 입숙 서류를 작성한 후 방을 골라야 했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 이미 그전부터 살고 있던 선배들과, 미리 들어온 신입생들이 방을 다 차지한 바람에 우리에게는 딱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2층의 한 공간에서 같이 사느냐. 1층에서 각각 따로 사느냐.
먼저 우리에게 방을 보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방은 3인 1실로서 한 명은 벽이 쳐져있어 천으로 문을 만들면 거의 독립적이게 사용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벽 없이 한 공간을 같이 써야 하는 구조였다. 2층은 한 방을 같이 쓸 수 있었지만 대신 2층이기에 매우 더울 것이라 했고, 1층은 그나마 조금 시원하겠지만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를 선택해야 했다. 우리는 더위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둘이서 같이 쓰는 게 마음 편하겠다고 결정하여 2층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2층의 한 방에서 한 인도 선배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방을 정하자마자 우리는 기숙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 우리를 인도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몇몇의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기숙사에서 필요한 물품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익숙하게 그 지역의 인도말, 타밀어와 영어를 하는 분들 도움으로 가격을 흥정하며 매트리스와 목욕할 때 쓸 바스켓, 생활용품 등등을 샀다.
거기서 우리가 제일 충격을 받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선풍기였다. 제일 중요한 매트리스 다음으로 중요한 선풍기를 사러 갔더니 수많은 선풍기들이 즐비해있었다. 우리는 어떤 선풍기를 사야 할까 매의 눈으로 선풍기의 상태를 훑어보다 이상함을 발견했다.
"선풍기에 타이머가 없네요? 타이머 있는 선풍기는 없어요?"
어떻게 선풍기에 타이머가 없을 수가 있지? 타이머가 없으면 자는 내내 선풍기가 틀어져 있어야 하잖아? 우리는 놀라 직원에게 타이머가 있는 선풍기가 어디 있냐며 물었고, 직원은 오히려 우리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들은 계속해서 타이머를 찾는 우리에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이머가 없는 선풍기를 각각 한 대씩 사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왜 인도에는 선풍기에 타이머가 없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밤이 되고, 우리는 전혀 시원해질 기미가 없는 더운 밤을 맞이해야 했다. 적응 기간 동안 우리는 아주 좋은 숙소에서 에어컨을 사용했었기에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무더위가 우리에게 닥친 것이었다. 우리는 해가 가라앉고 밤이 되면 시원해지겠지 생각했지만, 인도의 밤은 시원해질 생각이 없었고 선풍기를 끌 이유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잠을 청해야 했다.
사이사이 자다가 새벽쯤에 추워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으나 한참 동안 이 열기가 내려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잠든 지 좀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누가 부르지도, 깨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일어나 서로를 어둠 속에서 마주 봤다.
"뭐야."
"선풍기 고장 났나 봐."
사라와 나는 선풍기가 꺼지는 바람에 너무 더워 잠에서 깬 거였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는데 시간은 새벽 한가운데였고 햇빛이라고는 한 줌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잔재를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새벽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멈춰버린 선풍기에 우리가 사기당한 건가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야 잠깐만. 들어봐. 엄청 조용해."
왜 작동이 안 되지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다 사라의 말에 숨을 죽이고 주변에 귀를 기울이자, 방 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 날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던 목청 큰 친구들이 잠들어서 조용해진 것 밖에 차이를 못 느꼈다. 그러나 새라가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헐'하며 망연자실했다.
"정전인가 봐. 아예 전기가 안 들어와."
그 말에 나도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자는 동안 충전기를 꽂아놨던 핸드폰은 충전 마크가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한참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커다랗게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멈춰 있던 선풍기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충전한다는 표시가 떴다. 전력이 들어왔다.
우리는 선풍기가 꺼짐과 동시에 그새를 못 참고 더위를 못 이겨 잠에서 깨야했고, 전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더위에 붙잡혀 잠을 자지 못했다. 전기가 들어오고 선풍기가 돌기 시작하면서도 한참 더위와 씨름하다 잠에 든 우리는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지 하루 만에 왜 선풍기에 타이머가 없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인도에서는 타이머는 아주 쓸모없는 기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