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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Aug 25. 2020

야근 경고 메일

주 52시간 근무제에 관한 생각

지난 금요일 오전, 못 보던 알림 메일이 왔다.

그것도 새빨간, 26px크기의 볼드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은 느낌의 메일을 받다


얼마 전부터 우리 회사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는데, 정규 근로시간 외 연장근무를 하면 그 주의 누적 연장근무 시간과 잔여 시간을 메일로 알려주도록 시스템에 반영해 놓은 것 같다.


한 주에 5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고, 5일 X 8시간 = 40시간이니 그 주에 연장근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이다. 주 중에 제안서 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온라인 제출 몇 시간 안 남기고 끝마친 시간이 금요일 새벽 2시 반이었다. 하루 만에 나의 소중한 연장근무 시간을 8.5시간이나 써버린 것이다. 월요일에 리셋되어 일요일까지 3.5시간밖에 나는 연장근무를 할 수 없으니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 잠깐만.. 이게 아닌데?


연장근무를 하지 말라고, 워라벨 하라고, 꼭 해야 한다면 주에 12시간 이내로 하라고 규정한 것인데, 가지고 있던 12시간 중 얼마가 소진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반대로 12시간은 아껴 써야 하는(잘 나눠서 야근해야 하는) 소중한 나의 자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도 안 쓰고 남겨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인데도 말이다.




관련 회사들 중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곳이 많고, 근무 시간을 체크하거나 강제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무실 출입 시간으로 근무 시간을 체크하는 기업도 있고, PC 사용시간으로 체크하는 곳도 있다.

저녁 6시만 되면 PC를 강제로 꺼버려서 업무를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연장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 결재를 올려야 PC 사용 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PC를 사용하는 회사는 클라우드 전체 접속 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체크해서 52시간 이상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정말 어쩔 수 없이 52시간 이상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해야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

출입문 체크 방식은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을 미리 찍어놓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서 근무를 한다.

PC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자료들을 외부 메일이나 계정에 옮겨 놓고 집이나 다른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남은 업무를 본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작업해야 하고 문서 반출도 안 되는 경우는, 미리 가상 계정이나 가짜 계정 하나 더 만들어서 사용한다. 공식적으로 일과시간 중에는 A직원이 일을 한 것이고, 연장근무 시간에는 B직원이 되어 일을 마저 하는 것이다. 1인 2 역이랄까.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위와 같은 편법들도 사용할 수 없도록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렇게까지 제약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옛적엔, 일반적인 사무직 직장인들은 토요일도 출근을 해서 오전 근무를 했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 여러 사회 계층, 특히 기업에서는 그렇게 되면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힘들고, 사회적/경제적 타격이 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법제화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기업마다 제도 변경이라는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전체적으로 격주로 5일제를 해본다거나, 직원의 절반을 나누어 2주에 한 번씩 번갈아 주말에 출근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결국 토요일에 출근을 안 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는 것에 동조하는 여론들이 형성될 무렵, 은행이 주 5일제를 시행하기 시작하자 언제 주 6일 근무를 했었냐는 듯 대부분 기업들도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아직은 과도기라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어쩔 수 없이 야근해야 하는 경우 위에 적은 여러 가지 '회피방법(?)'으로 근무시간을 늘려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 5일제가 잘 도입된 것처럼 점차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주 52시간보다 더 줄여서 40시간, 혹은 36시간 정도로 자체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인 기업들에 대한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문제는 늘어난 여가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느냐인 것 같다.

연초만 하더라도 수영과 피아노를 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연간으로 등록해 놓은 헬스클럽도 못 가고 있는 상황이다. 전염병이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놓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코로나 이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렵더라도 빨리 상황이 좀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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