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환 Aug 21. 2020

직업의 미래

아이의 장래보다 내 장래가 더 걱정될 때

<비밀의 숲 - 시즌 2>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시즌 1은 살인 장면 등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 아이가 없을 때 나와 아내만 봤다.

시즌 2는 그간 아이도 자랐고, 보면 안 될 것 같은 내용이 나오면 TV를 끄려는 생각으로 그냥 같이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던 아이는 궁금한 내용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잘 모르는 지식이지만 검찰과 경찰은 왜 수사권을 갖고 싸우고 있는 것인지, 검찰과 경찰의 역할 차이, 아울러 변호사 전관예우는 또 무엇인지를 쉴 새 없이 설명해야 했다.

드라마를 눈으로 보는 건지 코로 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은 없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나도 해볼까?"

"검사가 되겠다고?"

"아니, (사무실) 만들어보려고!"


주인공과 지검장이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기도 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주인공 직업이 좀 멋져 보였나 싶어 물었더니, 검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요즘 매일 하고 있는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로 사무실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넓은 지방검찰청 지검장 사무실이 여느 사무실과는 달리 멋있어 보였나 보다.

며칠간 유튜브를 따라 해 가며 모던한 인테리어 하우스와 호수 속의 집까지 완성하고 나니 새로 꾸며볼 소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https://youtu.be/aKPYhxwhl6c


드라마를 보며 옛날 아빠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들은 자식이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기를 바랐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검사, 판사, 변호사, 그리고 의사나 회계사, 변리사 같은 직업을 가지면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식이 잘 먹고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른들은 그러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3대 고시(사법, 행정, 외무)에 대한 설명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지금은 그 직업들이 꼭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것은 아니야."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외국의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계 도면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배워서 쓰라고 했는데, 한 학생이 계속 자와 연필로 설계를 하려고 하자, "늙은 개는 짖기라도 한다."며 혼냈다고 한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늙었지만 짖을 줄 아는(제 밥값을 하는) 개 만도 못하게 될 것이라 학생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읽혔다.


전에 쓴, <"김밥 전문가"로 생각해본 전문직의 미래>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직업의 가치, 일하는 방식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전문직이라는 안정성도 사라지고 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어느 순간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기계가 발명되면서 많은 부문에서 자연스럽게 기계들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돕거나 대신하기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 육체노동자였던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대를 물려줄 무렵과 맞아떨어져 자식들은 새롭게 '지식노동자'로 살아가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살아가면 되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지금 이 '지식노동자' 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은퇴 전 변화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AI)과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2019년 골드만삭스는 RPA를 도입해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간 걸리던 일을 5분으로 단축시켰다 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모든 직원에게 PC에 RPA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업무를 보조하도록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로봇 조수 한 명(?)씩 데리고 일을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자연어 처리가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인데, 최근에 공개되고 있는 자연어 처리 모델들의 경우 성능이 뛰어나 단순한 텍스트를 입력하면 UI 디자인을 해주고, 몇 가지 펙트만 입력하면 이메일도 대신 써준다. '구글 로고 밑에 검색 입력창 넣고, 아래에 버튼 두 개 만들어.'라고 입력하면 텍스트를 인식해서 구글 첫 화면과 같은 UI를 만들어낸다.


https://t.co/YTEQC5Jnkj


아이에게 전망 있는 특정 직업을 권유하기는커녕, 앞으로 5년, 10년 후 이 일들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그때도 해나갈 수 있을지,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나야말로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어쨌든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은 배워둬야 할 것 같다. 많은 계산을 할 때, 직접 풀거나 계산기를 쓰지 않고 엑셀을 쓰는 것처럼 업무 방식이 바뀔 것이다.)




몇 년 전 아이의 유치원에서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는 수업을 했다.

자기는 '건축가'로 했다면서 그림을 보여줬는데, 한 사람이 공사장에서 흙과 벽돌을 나르는 그림이었다.

그때는 내가 철이 없어서, '건축가는 집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사람이지 만드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설명했다.

지금 말한다면, '멋진 집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구나?'라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응원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나, 아이 모두 직업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Job)이 아닌,  건물을 만든다는 것(Career)을 넘어서, 좋은 집을 지어서 사람들이 즐겁게 생활하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Calling)을 먼저 가질만한 일을 찾았으면 한다.

그렇다면 설계를 하건, 벽돌을 나르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자기가 상상한 건물이 실체화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면 충분할 것 같다.


그때쯤이면 상세한 설계는 인공지능이, 건물을 세우는 일은 건축용 3D 프린터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속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상상은 인간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좋은 내가 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