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축복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약속이 없으면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가족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하루 중 있었던 이야기, 그 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아이는 뜬금없는 질문도 곧잘 던진다.
"사람이나 생명체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아?"
"물 아닐까?"
"엄마도 물인 것 같다."
아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잇는다.
"아니야, 가장 필요한 건 과거야.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어."
생명체가 살아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해 물어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 속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우리 부부에게 물어온 것이었다.
질문이 좀 잘못되긴 했지만, 하루 종일 게임 속에 집을 어떻게 지을까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들이 아이의 머릿속을 스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의아하면서도 기특했다.
내가 열 살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다.(했었는데 잊었으려나?)
현재의 나는 과거의 무수한 행위들의 결과다. 알고는 있었으나 잊고 지낸 명제를 아이의 질문을 통해 떠올려본다.
태어나서부터 어제까지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된다.
안 봐도 될 것들을 찾아보고, 몸에 해로운 것들을 많이 먹어왔다면, 지금의 나는 빈곤한 정신상태와 건강하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무엇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것이 옳은지 끊임없이 생각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내 책임이다. 미래의 나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오늘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자.'라는 말이 있다.
기력이 소진해서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마치기 어려울 것 같다면, 내일로 조금 미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이야 그렇다고 해도, 먼 미래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일만큼은 내일의 나한테 미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출근하자마자 살까 말까 고민하며 봐왔던 영어책을 주문했다. '언젠가'로 미뤄왔던 일 중 대표적인 것이 영어공부다.
학창 시절 이후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아 '해야지..'라는 생각만 벌써 몇 년 째다.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축복이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나중에 건축가가 아니라 철학가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