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훈련사가 들려주는 숨겨진 개들의 하루
전라도 말씨.
짧은 스포츠머리.
검은 일수 가방.
단서는 오직 세 개뿐.
고속도로 개찰구 직원의 목격으로 실낱같은 단서를 겨우 찾게 된 부산 동래 경찰서 이 경감(46세).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했으나 너무 막연한 제보였다. 그러나 이 경감이 누구인가. 까마득한 후배들조차 ‘미친개’라 부르듯 사건이 발생하면 한번 물었던 범인을 절대 놓지 않는 광수대 미친개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 단서 세 개로 이천, 부산 지역의 465개 모텔을 모두 탐문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찾았습니다. 단 이틀 만에.”
“이틀이요?”
“그게 가능한가요?”
“아…,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이었는데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것 같아요.”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도 혀를 내두르게 손에 땀을 쥐는 TV 프로그램이 흥미진진했다.
축구계의 테리우스에서 예능 황제로 거듭난 미남 MC와 국내 간판 프로파일러가 실제 형사들의 증언으로 생생한 범죄 사건을 파헤치는 리얼 예능 ‘용감한 형사들’. 예쁜 강아지 유치원에서 틀어놓기에는 조금 으스스하기는 해도 한 번 보기 시작한 이상 뒤가 궁금해 도저히 채널이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 강아지 호텔에서는 강아지 친구들이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좀 더 집처럼 편안하고 익숙하게 지낼 수 있도록 소파와 담요를 주고, TV를 종일 틀어놓는 편이다.
효과가 있냐고?
그게 꽤 잘 먹힌다. 보호자 없이 처음 호텔이란 곳에 와 보아서 당황해 ‘끙끙’ 대는 강아지를 바로 개 무리에 합사 시키지 않고, 엄마가 여행 간 동안 잠시 할머니 댁에 맡겨진 듯 소파에서 혼자만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한 뒤, 다른 개 친구들에게 인사시키면 사촌 형제들을 만나듯 제법 안정적으로 코 인사를 나누며 개들의 그룹에 섞이기 때문이다.
개들은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면 불안이 훨씬 감소하는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동물 행동학으로 배워서 써먹으며 호텔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강아지 선생님인 나도 매번 꽤 신기하고 웃음이 나는 개들의 숨겨진 삶이다. 자기들이 무슨 생각을 해~.
이렇게 강아지의 안정을 위해 틀어놓은 TV이지만, 프로그램이 재미있으면 간혹 개똥을 치우다 집중하며 보게 되기도 하는데, 이날의 프로가 하필이면 ‘개치기’가 좋아하는 형사물이었다. ‘용감한 형사들’은 사건 담당자의 실제 증언과 재연이 간간이 섞이며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날 강아지 유치원을 뒤집어 놓은 원흉이 되었다.
호텔에 신입 강아지가 입소한 순간, TV에서는 이틀 만에 범인을 검거한 용감한 이 경감의 무용담을 긴박하게 재연하느라 화면이 어두워지며 스산한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 밤… 바암~.’
유명한 공포영화 ‘조스’의 OST 같은 음악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꼼짝 마!”
“네가 범인이지!”
‘탕탕!’
경찰이 쏜 총에 범인이 쏜살같이 도망을 치자 난리가 시작됐다.
‘컹컹!’
TV에서 동네 진돗개가 우렁차게 짖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리에 강아지 호텔의 잔소리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 년을 주 삼 회씩 한 번 결석도 하지 않고 다닌 터줏대감 ‘초이’가 선창을 시작했다. ‘초이’는 한 번도 반장 감투를 씌워준 적은 없지만 이곳의 반장이 자기인 줄 안다.
‘웍웍웍!’(얘들아, 침입자야!)
‘워오오….’ (뒤는 우리가 맡을게요)
반장 제이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V자 대형으로 서며 들어오지도 않은 도둑에 대비했다.
‘깨앵, 깨앵.’ (형, 누나 무서워요. 우리 큰 일 나는 거여요?)
‘왁왁! 왁!’ (다 큰 게 뭐가 무서워! 너희도 대열에 끼지 못해!)
선발대에 끼지 못한 4~8개월령 어른인지 아인지 애매한 나이의 ‘개린이’들도 자기들끼리 뭐가 바쁘다.
평화롭게 장난감이나 물고 놀던 강아지들이 저마다의 서열과 성격과 역할로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서는 바람에 강아지 호텔은 갑자기 ‘용감한 형사들’의 녹화장으로 둔갑했다. 순식간에 천국 같던 강아지 호텔은 전쟁통이 따로 없었고, 새로 온 신입 숙박객은 겨우 안정된 마음을 가다듬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발발한 특공 작전에 눈알이 빠질 듯 휘둥그레지며 안절부절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돌발사태에 강아지 선생님들은 짖지 말라고 개들을 다그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저마다 깔깔대고 배를 잡고 쓰러졌다.
집에서는 ‘쫄보’에 애교쟁이 무릎 개들이면서, 자기들끼리 모였다고 예비군 훈련장에 나간 군인들처럼 갑자기 겁 없이 ‘개판 오 분 전’이 되는 것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 강아지들이 모여 노는 유치원, 호텔은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개들의 흥분도 줄고,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방지하기는 하지만 우리 호텔의 운영 방침은 좀 다르다. 개들이 자연스럽게 자극받아 본능적으로 짖거나, 놀다가 너무 신이 나서 흥을 주체 못 하면 잠깐은 두는 편이다. 그것이 개들이고, 강아지 놀이 시설은 개들이 그렇게 개답게 지내려고 오는 곳이니까.
요즘 개들, 집에서 끼니마다 세상 산해진미를 얻어먹고, 백화점 명품 브랜드 버금가는 멋진 옷을 얻어 입고 살지만, 개들의 행복이 과연 거기 다 있으랴. 개는 그저 개답게 똥도 좀 아무 데다 싸기도 하고, 놀다 싸움도 하고, 흥분해 바보처럼 침도 흘리고, 누가 오고 위험하면 짖는 동물이 아니던가.
물론, 옆집의 커튼 색깔까지 보이게 다닥다닥 붙어사는 도시의 개들이 함부로 짖고, 뛰고, 똥오줌을 싸게 두자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개들은 이웃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안전하고 깨끗하게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사실 개를 도시로 초대한 것은 우리 인간이고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어 보이는 강아지들이 우리 세상의 규칙을 많이 참고 따라준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느 생명도 늘 자기 목에 줄을 채우고 거리를 거닐며, 하루 종일 입 다물고 집안에서만 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까.
보기보다 의젓한 털북숭이들이 평소에 참고 견뎌주는 게 고마워서, 우리 엄마 유치원에서는 개들이 이 공간에서만이라도 개 다운 본능을 즐기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며 운영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날 개들이 짖은 이유는 본래 인간이 개를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하며 그들에게 주었던 역할에 너무나 충실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십여 년 전, 마당에 개를 풀어 키울 때만 해도 개들은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스스로 할 일을 찾고 독립적으로 살았다. 뒹구는 나뭇잎이나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가 그들의 장난감이자 간식이어서 호기심에 물어뜯기도 하고, 삼켜봤다, 못 먹겠으면 토해도 봤다 해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뿐인가. 지나는 옆집 흰둥이나 우체부 아저씨, 그도 아니면 험상궂은 이방인들이 집 앞에 얼씬도 못 하게 짖고 으르렁대며 밥값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우리 개들은 주인에게 칭찬도 받고 으쓱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한몫을 단단히 했다.
반면, 요즘 개들은 어떨까.
무균실처럼 깨끗하게 청소된 집 안에서, 일 년을 거의 닫혀있어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무해한 거실에서 정해진 간식과 비슷한 장난감에 둘러싸여 늘 보던 가족의 얼굴만 보고 귀중한 인형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편하고 안락한데 무엇이 문제냐 물을 수도 있겠으나 강아지도 자기 할 일이 있으면 좋아한다. 주어지는 즐거움보다 스스로 찾고 발견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개는 사람과 비슷하게 사회적 동물이고, 학습이 잘 되는 동물이라 그렇다. 그런 개들에게 요즘의 삶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지루한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인형처럼 사는 21세기의 ‘집안퉁수’들이 강아지 호텔이라는 개들의 사회에 섞여서 본능을 잊지 않고 ‘쪼매난 맹수’의 역할을 따내는 것이 기특해 뭔가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달랑달랑’ 레이스 달린 방울을 달고 놀러 오지만 그 속에 용맹하고 의리 있는 본능을 간직한 나의 ‘용감한 개린이 형사들’.
비라도 많이 내리는 날에 인터넷이 끊겨 보안 시스템이 먹통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날도 나는 겁나지 않아요. 우리 호텔에는 어떤 흉악한 도둑도 범죄자도 쫓아버릴 수 있는 용감한 맹호부대가 최전방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