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이 비를 맞아볼 권리
"안녕하세요, 보라. 오늘은 등원일이 아닌데 어쩐 일로 왔어요?"
"비가 오면 산책을 안 나가는데 집안에선 똥을 안 싸서... 벌써 3일째예요."
"그랬군요. 보라는 근데 길에서 생활하던 아이 아니었어요? 비를 못 맞는다구요?"
보라(테리어 믹스/2살 추정/여아/길생활을 하다 갈빗집에서 뼈다귀를 얻어먹고 생활하다 구조됨)를 처음 봤을 때는 몸에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길 생활을 오래 하면서 사람의 손길에 거부감이 생겨 누구라도 몸에 손을 대려 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쩍쩍' 입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후 4개월 이전, 어릴 때 사람에게 버림을 받거나 실종이 되어 길에서 혼자 생존을 한 개들은 대개 사람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강아지는 유년기에 사람의 보살핌에 익숙해져 먹이를 얻어먹고, 사람 손에 익숙해져 순치 훈련이 되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길거리 생활을 했으면 몇몇의 사람들에게는 개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막대기로 개를 쫓아 버리거나 포획하려고 그물이나 덫을 놓는 경험이라도 하게 되며 더욱더 의심과 경계가 커지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보라는 떠돌이 시절, 나름의 로맨틱한 연애를 거쳐 임신한 몸을 스스로 갈비를 얻어먹으며 살아남은 터라 기질이 강해 사람들에게 더욱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강인한 강아지가 비가 오는 날에는 제 발에 빗물을 요민 큼도 묻히기 싫어 집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한다니 처음에는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보라뿐 아니라 요즘 집 강아지들 꽤 이런 현상이 자주 있습니다. 대개의 강아지들은 '산책할까?" 한마디를 꺼내면 기어코 자정에라도 산책을 나가야 할 정도로 외부활동을 좋아하는 편인데,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너무 추운 날, 너무 더운 날 혹은 밤에는 집 밖을 나가길 마다하는 '산책 거부견'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겁니다. 이 아이들은 왜 그럴까요?
간혹 특별한 사건을 경험해 궂은 날씨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원인이 비슷합니다. 궂은 날씨 같은 특수상황이 생길 때, 보호자가 나가기를 거부해서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기 쉽습니다. 집 동물이 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개들의 신체는 아직도 생존본능을 잊지 않았고, 평소와 다른 환경에 노출되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이것은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본능이지만 인간의 안락한 가정에서 보호를 받다 보니 지나치게 경계 지수가 높아져 자신을 과잉보호하는 인지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이때 알파독 역할을 하는 보호자가 괜찮다며 개를 독려해 조금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면 개는 곧 생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호자는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고 안쓰러워 개가 싫어하는 일을 하도록 억지로 요구하지 못하고, 개가 어리광을 부리는 대로 따라주기 때문에 리더십을 개가 가지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어차피 궂은날에는 사람도 나가기 싫은데 굳이 산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지요.
물론, 궂은 날씨에 억지로 매번 산책을 나갈 필요는 없지만 너무 자기 마음대로 개가 사는 것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운동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떼쟁이'로 크는 경우로 발전하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변화하는 외부 환경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너무 적응을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로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신체의 문제보다는 정신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해 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말했지요. 우리의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아서 초콜릿이 나올지, 쿠키가 나올지, 별사탕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개들의 인생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별사탕을 좋아한다고 초콜릿과 쿠키를 피하고 거부할 수가 있을까요. 이런 개들의 훈련 방법은 꽤 간단한 편이긴 합니다. 개들은 원래 외부 활동을 좋아해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조금 싫다는 강아지를 이 떼는 억지로 끌고 나갈 필요가 있어요. 처음에는 엉덩이로 버티며 주저앉아 안 가겠다는 개들도 목줄을 조금 끌다 보면 곧 리더의 부름에 따라오게 되고, 나가서 냄새도 맡고 전봇대에 마킹도 하며 평소에 즐기던 활동을 하다 보면 금방 즐거운 기분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보호자도 함께 궂은날 산책을 즐겨야 하는 것인데요, 개는 리더인 인간의 심리를 예민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정말로 사람이 괜찮으면 곧 괜찮아지지만 리더가 마음으로 불편할 때는 궂은날에 대한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훈련은 보호자와 강아지 둘의 호흡이 꽤 중요합니다.
강아지 학교에서는 이 훈련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온이 좀 낮아도 야외 운동장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데 처음에는 변화한 자연에 고장 난 듯 꼼짝을 않던 개들도 다른 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노는 것을 보면 곧 씩씩한 개들의 행동을 따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동조 행동을 하다 보면 스스로 몸에 열이 올라 정말 아무렇지 않게 되고, 기분이 좋아져 스스로 날씨 변화를 즐기는 씩씩한 강아지로 변화하게 됩니다.
몸이 좀 젖으면 들어와 씻으면 되고, 날씨가 좀 추웠으면 보일러를 켜면 되니까 궂은비 내리는 날에도 개들의 인생은 휴일이 아니어야 합니다. 개애게도 사람에게도 인생이란 무대는 누군가 그려내는 캔버스라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눈과 비, 서리 내린 이른 아침이라는 자연을 모두 누릴 권리, 개들에게도 있지 않을까요? 그 권리를 뺏을 권리야말로 누구에게도 있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