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CH TIME] 점심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강아지 급식을 시작한 이유

by 이누아

"밥을 안 먹어도 너무 안 먹는다니까요? 닭가슴을 안 주면 3일도 굶어요."


이해는 갑니다.

내가 강아지가 된다고 해도 평생을 퍼석대는 시리얼만 먹으라 하면 입맛이 뚝 떨어질 거 같아요. 그리고 조금만 버티면 훨씬 맛있는 간식이 나오는 걸 아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사료를 골라 먹겠죠?


# 평생 시리얼만 먹을 수 있어요?

요즘 개들 밥이 귀해 밥을 안 먹어 큰일입니다. 밥을 안 먹으면 놀랍게도 나중에 비만/성인병에 노출되기가 쉽고, 까탈스러운 입맛에 키우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게 되지요. 밥을 안 먹는데 비만이 온다니 이건 무슨 소리일까? 다이어트의 문제는 인간이나 개나 매한가지인 듯합니다. 물만 먹는데 살이 찌는 경우는 둔갑술이 아닌 경우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뭐가 됐든 다른 걸 먹고 있는 걸 겁니다. 강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사료나 밥을 먹지 않으면 결국엔 배곯는 게 안쓰러워 입맛 도는 다른 걸 주게 되고, 제 입맛에 맞는 간식을 자꾸 먹다 보면 영양 불균형이 오면서 개의 건강이 나빠져 결국 살이 찌게 됩니다. 더구나 신은 얄궂어서 맛있는 건 모두 살이 찌는 음식이 아니던가요.


# 한국 개의 식판

그래서 개 학교의 식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매일 장을 봐온 신선하고 다양한 재료로 강아지 짬뽕부터 송편, 블루베리 케이크도 해먹이고 가을에는 김장도 함께 하고 있어요.

아니 맛있는 거만 골라 먹이면 안 된다면서 웬 산해진미를 해다 바치냐고요?

더구나 짬뽕, 송편, 김치는 개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아닌 거 아니냐고요?

안되지요. 그래서 특별한 비법을 넣었습니다.


강아지 급식 시간을 하는 이유는 맛있게 먹이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스턴트 간식과 방부제 가득한 사료만 먹고사는 개들의 입맛과 정신 건강, 인생의 즐거움을 돌려주기 위한 먹이 교육이라고 할까요. 사실 우리도 사는 재미의 반이 먹는 게 아니던가요. 우리가 이런데 개들은 더하면 더했지 먹는 즐거움을 인생에서 빼앗을 수 없지요. 그렇다고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식만 똑같이 사시사철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저 개가 들에서 뛰놀던 시절 마음껏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맛봤을 그 경험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강아지가 먹을 수 있는 재료들만 골라 야채부터 고기, 생선, 콩류 등 다양한 재료들을 모아 함께 씻고 다듬고 요리하고 예쁘게 꾸미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합니다. 학교에 매일 오는 개들은 이제 시간이 되어 냉장고를 열기만 해도 선생님들 점심 식사 준비를 하는지, 자기들 화식 준비를 하는지 기가 막히게 구분해서 자기들 차례면 빨리 해내라고 재촉을 하고 난리가 납니다.


주방에서 '똑똑똑' 칼질을 할 때면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미 쪼르르 몰려와 싱크대 밑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옹기종기 모여 쳐다보지요. 이 때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 행복한 얼굴을 안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다 실수인 양 썰던 재료라도 하나 뚝 떨어뜨리면 서로 먹는다고 '파바박' 재빠르게 신이 나는 강아지들, 그때 우리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요일의 가정이 됩니다. 먹이를 함께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경험은 개에게나 인간에게나 안전과 행복의 바로미터일 테니까.


# 밥상에 둘러앉은 추억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예쁘게 요리를 차리면서 보호자님들도 즐겁도록 사진을 찍고 나누어 먹는 순간이 강아지 급식의 하이라이트입니다.'기다려' 훈련을 하지 않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걸 알고 자연스럽게 기다림을 배운 뒤 마침내 다가온 식사 시간! 개의 본능에 따라 알파독의 지시대로 순서에 맞게 차분히 기다리며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먹이를 공유하는 순간은 배움과 즐거움 동료의식을 한꺼번에 배우게 되는 순간입니다. 놀며 배우는 효과를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는 없지요. 부패가 되지 않게 보관이 쉽도록 수분과 냄새를 최대한 제거한 사료만 먹다가 갓 구해온 신선한 재료의 수분과 향, 씹을 때의 다양한 질감, 그 모든 것이 섞였을 때 달라진 음식의 향을 경험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 먹기 싫은 것을 구분해 가는 재미있는 먹이 활동 중의 개들의 감정변화를 즐겨보고 있으면 개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더구나 많은 형제, 자매, 친구들과 건강한 경쟁을 하며 먹다 보니 꾸물대면 내 몫이 없는다는 것을 알고 욕심이 나서는 세상 밥까탈을 부리던 친구들도 상추부터 가지, 호박까지 일단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어대니 편식의 나쁜 습관도 동시에 고쳐지게 되지요.


또 하나 효과는 이런 적극적인 경험을 통해 소심하던 성격이 꽤 명랑하게 변화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 같이 왁자지껄 잔치를 즐길 때의 들뜬 분위기는 우리도 영원히 행복의 사진첩에 기억되듯 강아지들도 마찬가지가 되니까요. 도마질 몇 번으로 즐기는 최고의 만찬, 최고의 교육효과로 강아지 급식은 안 할 이유가 없는 즐거운 활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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