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_한국으로 다시(01.21.Tue)
한국으로 입국하는 날. 여행 첫날 빼고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까지 동원한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비행기가 뜨지 못할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이 내렸다. 오랜 여행을 한 데다가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서 버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여행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여행을 떠난 목적을 잊어버렸다. 때로는 힘들기만 한 여행을 어서 끝내고 집에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짜증이 치밀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그런 생각을 하면 몸에 힘이 빠져 발걸음이 느려지고는 했다. 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 섭섭한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여행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느라 말이 없어졌다. 포르투갈로 떠나던 날 읽었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난 이유는 일상에 돌아오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과거를 하나씩 돌아봤다. 여행이 줄 즐거움만 생각하고 떠난 나는 그 속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함께하는 여행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꾸어 나가는 것을 보고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는 알지 못했다. 한 번의 여행으로 내가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여 완전한 내가 되는 것은 욕심이라는 점을 몰랐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고 나 자신에게 호기롭게 외치던 나는 완전한 나의 모습은 어떨지 깨닫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변화하지 않거나 내가 몰랐던 부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나의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나의 진정한 성격을 알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서비스업이 나에게 맞는 직종인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긴 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여행 가이드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다. 내가 본 나의 모습은 낯선 사람들과 말을 잘할 수는 있으나 솔선수범한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서 사람들을 끌고 다니며 여행하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며 챙기는 것을 할 자신은 없었다. 대신에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아니었다. 책 읽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글 쓰는 것을 즐기지는 않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부담을 줬다. 무엇이든지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글쓰기에서도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배웠던 그때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혼자 글쓰기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예술 쪽으로 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저 잘할 것 같다는 엄마의 권유로 배워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재능이 있을 것 같다는 엄마의 생각이 그대로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이 고역으로 느껴져 피하고만 싶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으나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족하게만 보였던 내가 칭찬받은 유일한 것이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글을 꾸준히 올리기 전, 나의 SNS 계정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사람들이 나의 글에 대해 보여주었던 공감이 나를 글쓰기의 길로 가게끔 해주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설을 써보고 싶어 졌다.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 상상력도 빈약하긴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어 졌다. 여행으로 얻은 경험으로 나에게 한 발자국 가까워져 있었다. 여행에서의 기억을 정리하며 나의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