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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Feb 23. 2020

Episode 11. 짧은 시간이지만

나를 찾아 떠나는, _Balencia(01.17. Fri)





광고기획자 박웅현 씨가 한 말이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가듯 여행하느라 잊고 있던 말이었다. 책을 읽으며 처음 접했던 이 말이 깊이 와 닿은 적은 별로 없었다. 일상을 같은 시선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는 의미. 여행을 하며 평소에 생활하듯이 하루를 보내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러한 시선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일상에서 하루를 보내는 나의 방식은 온갖 '계획'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다소 지나치다고 할 만큼 목숨을 거는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까지 전날에 미리 생각해놓고 잤다. '게으르다'는 말이 부정적이고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여기는 나는 '게으르게' 보이는 것이 싫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고, 씻고 깨끗한 옷을 입은 다음 아침을 먹고 할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계획한 일을 하다 잠깐 산책을 할 때도 나는 '바빴다'. 나에게 있어서 산책은 머리를 쉬게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는 것인데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음을 깨닫고 나면 발걸음이 빨라졌다. 천천히 걷다가도 불안감에 젖어 경보하듯이 손을 휘저으며 재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일상을 여행처럼 느껴 본 경험이 나에게는 없었다. 일상은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일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여행처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기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을 실천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여행에 오기 전처럼 사색에 잠길 시간 없이 지냈던 일상을 나는 또다시 반복하는 것일까.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기 전에 하루 동안 자게 된 도시 발렌시아. 이 도시에서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들로 이루어진 우리 조는 말 그대로 '뚜벅이' 여행 방식을 고수했다. 30분이 넘는 거리도 대중교통 요금을 아끼기 위해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면 택시를 타고 갔을 곳을 우리는 주로 걸었다. 우리의 피로감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한 건 당연했다. 도시마다 목적지에 늦지 않게 가려고 마음을 졸이며 이동했던 우리는 거의 방전에 다다른 상태였다. 발렌시아에 늦은 시각에 도착한 이유도 있지만, 지친 우리는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 먹을 시간에 만나기로 결정했다.



룸메이트 언니가 감기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며 할 일을 체크하며 "언제 다 끝내지..." 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시간에 아무 걱정 없이 책을 읽었다. 책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시간도 즐겼다. 고민 끝에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선택했다. 책에 깊이 빠진 나는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야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걱정 없이 하루를 즐긴 적은 한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르게 된 발렌시아라는 도시에서, 나는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진정으로 여유를 만끽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알려준 발렌시아라는 도시. 본 곳도 얼마 없고, 그저 책을 읽다가 언니들과 저녁만 먹은 도시였지만 기억에서 쉽게 지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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