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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Feb 25. 2020

Episode 12. 다 같지는 않더라고요

나를 찾아 떠나는, _Barcelona(01.18~20./Sat~Mon)




어디로 여행을 떠나든, 나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나에게 서글픔을 안겨주었다. 가족과 국내로, 해외로 여행 갔을 때 마지막 날의 나는 아쉬워하곤 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했다. 돌아간 시간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르셀로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마지막 4일을 함께 보낼 도시였다. 이번에도 늘 그래 왔듯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 것이라고 짐작했다.



짐작은 빗나갔다. 한국이 그리워졌다.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 내가 살던 도시와 다른 느낌을 가진 곳이 갖는 색다름이 흥미로우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주었지만 허전한 기분도 들었다. 어딘가가 텅 비어 있었다. 한국이 그리워진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정'. 나는 숨 막힌다고 생각했었다. 정을 핑계로 힘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정을 이유로 들어 이것저것 말하며 내 일에 참견하는 사람, 속 사정도 모르고 위로한답시고 말을 내뱉는 사람. 그놈의 '정'은 내 속을 썩이게 만드는 존재였다. 여간 힘들게 하는 놈이 아니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게 한 존재가 다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 부름에 응답하고 싶어 졌다. 유럽에 속하지만 프랑스, 영국 등과 같이 친숙하지 않은 스페인은 새로워서 좋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허전함을 느꼈다. 속해 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은 느낌. 분명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데도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포르투갈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고 다른 나라이지만 사람들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적당한 무관심. 여행자를 특별히 신경 쓰지 않지만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필요할 때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렇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는 그들. 여행의 시작에서는 그 무관심이 편안했다. 예민한 나이지만 한국은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문화였기에 불편했다. 밖에 나갈 때에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카락은 어떤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아니었다. 내가 무슨 옷을 입든 머리카락이 삐죽 튀어나왔건 말건 화장을 했든 안 했든,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무관심은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게도 하는 묘한 것이었다. 편안함을 즐기면서도 한국을 생각하는 나를 보면 더욱 그러했다. 얼마 안 있으면 돌아갈 한국인데 더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내가 낯설면서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은 그리 싫지만은 않은 존재였나 보다. 익숙한 나라를 떠나 며칠 동안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 나는 당연히 여행지가 주는 분위기에 취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지는 않았다.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정'. 귀찮음으로 치부했던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따뜻함'이었다. 정을 핑계로 안부를 묻는 사람, 힘들어 보이는 얼굴을 한 학생에게 호두과자를 쥐여주는 아주머니, 엄마 손을 꼬옥 잡고 가는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사람. 이들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만의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차가운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겉으로 배려하는 것은 정작 나를 위함이었고, 다른 말을 해도 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찜찜해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악의 없이 한 말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날을 세우며 받아치는 나였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때도 있었으니. 여행하며 본 나는 그리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따뜻함을 멀리하기도 했으나 그것에서 도망가지 않고 멀리서 곁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내심 따뜻함을 바라면서, 나를 내치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면서.



일정을 따라 움직이면서 지쳐있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날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음을, 내가 사는 곳이 답답한 곳이 아니라 다정다감한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나의 등을 살며시 떠밀면서 말하고 있었다.



 

"따뜻함을 건네는 존재, 나라가 있다는 것에 고마워하세요."



더 머물지 못해 드는 아쉬움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세월호를 추모하려 쓰인 리본이 달려 있었다. 리본은 구속된 카탈루냐 정치인들이풀려나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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