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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Feb 20. 2020

Episode 10.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나를 찾아 떠나는, _Granada(01.16.Thu)


우아한 자태를 뿜어내는 그라나다 대성당의 모습이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다.





아직도 맴돌고 있는 플라멩코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그라나다에서의 여행을 시작했다. 언니들과 숙소 로비에서 출발하여 그라나다 대성당을 둘러본 후 알람브라 입구에서 헤어졌다.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입장 시간이 같은 언니와 만나기로 했다. 같은 조의 언니와 헤어지고 일정 내내 따로 다녔던 언니와 만났다.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깎은 풀이 많은 공원을 막 지나려는 찰나에 다른 조의 언니를 만났다. 둘만 있었다면 서먹했을 여행이 언니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알람브라에는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많았다. 스페인에서 여행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얼마 없었는데 이곳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주려고 핸드폰을 들 때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바람에 찍을 수가 없었다. 



다른 때보다 내 사진을 훨씬 많이 찍었다. 같은 조의 언니들은 내가 사양하면 알겠다고 하며 자기들끼리 찍었으나 여기서는 아니었다. 사양하는 나를 사진이 나오는 곳으로 밀더니 찍어주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멈춰서 주로 사진을 찍는 곳을 볼 때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낯선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걸음이 뒤처질 때마다 언니들은 기다려주었다. 배려받는 기분이었다. 언니들과 다닐 때에는 친해졌기에 친근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만나 여행할 때는 다른 분위기였다. 처음 만나 불편한 감이 없지 않을 텐데도 당연한 듯이 남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알람브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어서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머무르게 했으나 최근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가 나오면서 더욱 유명한 곳이 되었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알람브라'이다. 알람브라 안에 나스르 궁전과 카를로스 궁전 등이 있어 그렇게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무어인의 주도하에 지어진 건축물이라 이슬람 양식이 대부분이나 눈에 띄게 화려해 보이는 건물도 많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에서 스페인이 이김으로써 이슬람 양식에 스페인의 미술이 더해졌다. 서로 다른 문화이지만 함께 어우러지며 여러 건물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 양식이 만나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라나다에서 보낸 하루는 길지 않았으나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기억을 선사한 도시였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거닐며 느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려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주로 같이 여행 다닌 언니들 역시 친근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만 불편해하며 불만을 갖고 있었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배려심이 깊고, 무엇을 하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틀리다고 할 수 없는 말이다. 남들은 모르는 면이 있었다. 남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배려는,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말이다. 여행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은 나에게 고민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대학이라는 곳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대학이 나에게 필요한 곳인지, 꼭 가야만 하는 곳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대학이라는 목적지만 보며 달려야만 하는 학교는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존재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옆도 보고,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하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하자센터는 나 같이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활짝 문을 연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활동을 하며 풍기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향이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길을 가는 학교 친구들을 보며 자책해왔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자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만 봤는데도 내면의 모습과 상처를 알고 보듬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니고 있던 공포감을 없애준 고마운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길 바라는,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자센터에서 '유채색'이라는 책 모임에 규칙적으로 참여했었다. 긴 이야기 끝에 책모임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유채색'에 나오며 느낀 점이 여행하며 느낀 점과 같기 때문이었다. 모임을 마무리하며 모두 같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때 마루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쓴 느낀 점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솔직 담백한 문장이 나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책모임을 다니며, 우리는 모두가 편하기 위해 각자 조금씩의 불편함을 나눠 가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불편함,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키는 불편함, 서로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불편함. 모두의 '편함'은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불편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모두의 '편함'은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불편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편해지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의 진지하면서도 섬세한 성찰이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마루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만 생각하며 따뜻한 사람인 척하지만 차가운 내면을 갖고 있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여행을 떠난 목적을 잊고 있었는데, 나의 안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이 나를 깨웠다. 나는 열심히 '나'를 찾아서 나아가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다니며 깨달은 나의 모습. 여행은 인정하기 싫어 꽁꽁 숨겨두었던 모습을 인정하고, 나의 못난 모습을 따뜻이 품는 사람이 되도록 용기를 주었다. 나를 따뜻이 품는 것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람들마저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유채색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을 보잘것없는 나의 글을 읽어주는 분들과 나눠보고자 한다. 횡설수설하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담아.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기는 처음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사람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서 작가가 나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경애의 마음>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내가 스스로 괴로워했던 시간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보통 사람이라면 넘어갔을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한 친구의 나에 대한 시기와 알 수 없는 감정적인 행동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것을 견디고, 맞서 싸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피했다. 뒤로 물러나 도망가 버렸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에 나를 방어하기 위해, 도망갔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그 친구를 비난하고, 미워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한 합리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내가 싫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자기 방어 속에서 나는 갈팡질팡했다. 그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말을 하기 전까지. 그 갈팡질팡한 시간이 나를 방에 웅크리고 앉아 괴로워하게 했지만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는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꺼내볼 수 있었다.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청소년들.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단순한 이유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 사람인지 정하는 사람. 책 속에서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어 줄 것 같다. 나의 단순한 생각,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사건이나 일이 일어났을 때 표면만 보지 않고, 속에 숨어있는 사실을 보려고 노력해보고자 한다. 금요일이 될 때마다 내일 있을 책모임에 설레어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기대했다. 나에게 책모임은, 하자센터는,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 이채진이 아닌 스피릿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면서 드넓은 들판을 뛰노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말이 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그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즐겁고도 신비한 경험이기도 했다. 책모임 “유채색”이 마무리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괜찮다. 유채색은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이런 책모임을 만나게 해 준 하자센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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