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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Feb 18. 2020

Episode 09.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나를 찾아 떠나는, _Frigiliana&Granada-01.15.Wed




언니들과 말라가에서의 밤을 마무리하고 아침 일찍 프리힐리아나로 향했다. 그라나다로 가는 도중에 경유하게 된 작은 도시였다. 프리힐리아나는 얼핏 보면 그리스의 산토리니 마을과 닮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 나름대로 모습을 상상해봤다. 산 중턱 사이에 하늘빛의 지붕과 새하얀 집으로 들어차 있는 산토리니 마을. 보기만 해도 바다를 보듯이 탁 트인 느낌이려나. 놀이터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집 근처의 놀이터가 떠올랐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걸으며 한국에서 걸었던 골목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난생처음 와본 곳인데도 불구하고 정겨웠다. 프리힐리아나는 여러모로 정이 가는 곳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밑에 펼쳐져 있는 집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여느 때보다도 더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게만 보일 집들이 내게는 하나하나가 특별해 보였다. 집의 겉모습을 보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집 대문은 밝은 파란색, 또는 하늘색이 칠해져 있거나 짙은 녹색이 칠해져 있었다. 또 어떤 집은 벽에다 화분을 걸어 꽃을 꽂아 장식을 해놨다. 베란다에다 화분을 놓고 꽃을 기르고 있는 집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높은 언덕을 올라갔다. 프리힐리아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계절이 달라짐에 따라 알록달록한 색의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을 상상해봤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마을은 산의 다양한 색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일 것 같았다.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림을 보고 추측해볼 뿐이다. 그림만 봤는데도 머릿속으로 사람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여기서 벚꽃을 보게 될 줄이야. 벚꽃을 보며 스페인 남부의 따뜻함을 느껴본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프리힐리아나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 지었다. 따스한 미소였다. 사람들이 전해주는 따스함보다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나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어 방긋 웃었다. 지나가는 데 초콜릿 가게가 있어 들어가 봤다. 크랜베리를 넣은 초콜릿도 있고 바나나, 오렌지를 넣은 초콜릿 등 종류가 다양했다. 오렌지가 들어가 있는 초콜릿을 샀다. 껍질로 포장이 되어있는데도 오렌지의 향긋함을 물씬 풍겼다. 기념품 가게도 갔다.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엽서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건만, 프리힐리아나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여준 사소한 친절과 따뜻한 미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리힐리아나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에 녹여 먹는 핫초코라! 보기만 해도 진한 초콜릿이 입에서 살살 녹는 상상을 했다.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꼬마기차를 탔다. 운전사 분은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기차에 오른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도 설명했다.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풍경을 눈에 담았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당황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웃으며 똑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 남자아이는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흔들며 꼬마기차를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이 귀여워 흐뭇하게 웃었다. 30분 동안의 짧은 투어를 마치고 식당으로 갔다. 배를 채우고 다시 단체 버스에 올랐다. 몇 시간을 걸쳐 이동한 끝에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깐 쉬다가 로비로 나왔다. 그라나다 야경투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만 잔뜩 품고 온 나는 여행사에서 나눠준 가이드북 말고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사진만 찍고 지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투어를 한다고 해서 좋았다.




알바이신에서 출발하여 언덕에 걸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을 보고 타파스 바에서 레몬 맥주인 '클라라'를 마시고 플라멩코 공연을 보는 투어였다. 알람브라 궁전에 얽혀 있는 역사도 흥미로웠지만 플라멩코의 유래를 듣고는 생각을 달리했다. 플라멩코 하면 음악에 맞춰 흥이 넘치면서도 열정적으로 춤추는 무용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로 박자를 맞추며 춤추는 사람들 역시 흥에 겨워 즐거워 보일 것만 같았다. '플라멩코'는 즐거움에서 나온 춤이 아니었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춤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이슬람 문화권에서 지은 것이었다. 알람브라는 무어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다.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면서 알람브라 궁전만은 파괴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했으니 얼마나 소중히 여긴 곳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플라멩코도 전쟁과 연관이 있었다. 스페인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전략을 썼다. 성 바깥을 포위하여 물자를 보급받지 못하게 막은 다음, 성곽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페인은 동굴을 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집시를 스파이로 사용했다. 집시들은 성을 드나들며 스페인 쪽에 정보를 주며 돈을 벌었다. 


집시의 자식들마저 전쟁에 이용되었다. 전쟁에서 수많은 자식들이 싸우면서 죽어나갔다.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던 집시들은 절망에 빠졌다. 자식이 죽은 슬픔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춤을 추었다. 비탄에 젖은 얼굴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들은 춤을 추었다. 안에 쌓이고 쌓인 분노의 에너지를 춤으로 표현했다. 플라멩코 공연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억누를 수 없어 춤을 출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여자 무용수는 집시가 겪어야만 했던 원통함을 발을 힘차게 구르고 팔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표현했다. 무용수의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힌 듯한 표정이었다. 강렬한 눈빛과 손짓에 홀려 공연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래를 몰랐다면 플라멩코는 빠르게 발을 구르며 즐겁게 추는 춤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플라멩코를 추는 집시들의 아픔을 모르고 공연을 봤다면 진정으로 무용수의 몸짓과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플라멩코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무용수의 표정을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들의 아픔을 함부로 위로하지 않고 기억하기로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고한을 품고 살아야만 했던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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