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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Aug 03. 2020

책을 먹다, 생각을 읽다

시스템의 부재/『골든아워 1,2』_이국종





악순환의 

반복 



내 기억 속의 중증외상은 한 방송사의 뉴스룸에서 나왔다. 인터뷰 장면이었다.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장이었던 이국종 교수를 그때 처음 봤다. 사람들의 이목이 순간적으로 집중되던 시기였다.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상황에 국민이 놀라고, 정부에서는 해결책을 마련하려 했으나 잠깐이었다.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중증외상이라는 분야 자체가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업무 강도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나 지방에 위치한 대학병원이 가장 심각했다. 중증외상은 '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여기저기 치였다. 병원에게서도, 정부에게서도 지원을 받지 못한 피해는 직원들이 떠안았다. 적은 수의 인원으로 살인적인 업무량을 감당해야만 했다. 글에서 그들의 피로와 사람들의 압박에 부딪힐 때마다 겪는 좌절감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좌절감은 그들의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이어졌다. 직원들은 각종 병으로 신음했고, 환자들의 목숨도 그에 따라 흔들렸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들이 반복해서 겪는 좌절은 종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들이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 목숨이 위태로운 중증외상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두렵다.

Photo by Taylor Young on Unsplash





위태로운 

그들



중증외상 이른바 '블루칼라'로 불리는 노동자가 많았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다친 노동자, 트럭에 깔려 뼈가 으스러진 노동자, 몸에 철근이 박힌 노동자 등 상태는 참혹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살려내는 일은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의 몫이었다. 환자들은 수시로 위기에 내몰렸지만 중증외상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도 같았다. 중증외상 환자들은 곳곳에서 쓰러져 나갔다. '골든아워'를 넘기지 않고 환자들을 데려오려면 하늘로 날아야 했다. 늘 부족한 수면과 과로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헬기에 올랐다. 임신 중인 직원들도 위험을 무릅썼으나 그들은 결국 유산을 피해 가지 못했다. 직원들도 환자들처럼 위태로웠지만 헬기조차 띄울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건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가웠다. 헬기의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공부할 수 없다는 간호대 학생의 민원에서 시작하여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비난을 쏟아내기 바빴다.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시끄러움을 참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궁금했다. 사람들을 살리려면 어쩔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게 된 때에도 똑같이 불만을 표할 수 있을까.



병원 측에서도 중증외상센터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적자의 근원지로 지목되고, 사람을 살리려고 해외 전용기를 끌어오는 시도는 '영웅놀이'로 변색되었다. 중증외상 쪽의 사람들만 환자를 구하는 줄 아냐는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두려워졌다. 중증외상센터가 무너지는 것은 고된 일을 감당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블루칼라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을 뿐,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쓰는 물건과 몸 담고 살아가는 건물 등 이들의 노동력으로 일궈낸 것이다. 중증외상센터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은 노동자들도 위태로워진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저승에서 이승으로 끌어오는 힘이 사라진다는 의미와도 같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부재,

계속되는 절망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은 나로 하여금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배에는 수학여행에 대한 즐거움으로 들뜬 학생들이 있었다.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할 때 중증외상센터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저자는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날아갔다. 배 주변의 상공에는 헬기가 많지 않았다. 저자는 현장으로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으나 윗선의 지시를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서 돌아왔다. 승객 대부분을 구조한 줄 알고 진도 체육관에 헬기가 착륙했다. 체육관에는 승객들이 얼마 없어 의아했던 저자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직도 배 안에 갇혀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병원 관계자는 아직도 100여 명 남짓한 승객들이 배에 남아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헬기를 띄워 다시 구조하려 했지만 또 한 번 저지당했다. 지시 없이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시도조차 못하고 체육관에서 상태가 위급한 환자 한 명만 데리고 떠나야만 했다. 구조하러 왔던 블랙호크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블랙호크에 탄 군인들은 현장에서 멀어지며 가라앉는 배를 향해 경례만 바쳤다.



시스템의 부재 앞에서 저자는 무력감과 절망을 겪었다. 부재는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중증외상의 실상을 모르는 윗선에서는 겉핥기 식의 방침만 내려보냈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상을 늘리고 중증외상과를 전문적으로 배운 인력을 늘려야 했으나 다른 분야를 공부한 의사들을 데려가 순환근무를 시켰다. 부족한 구멍을 '땜빵'하는 식이었다. 저자는 중증외상센터를 일으키고자 갖은 노력을 했지만 계속해서 장벽에 부딪혔다. 개중에는 실태를 파악하고자 직접 센터에 찾아와 조사하고, 저자의 말을 들으며 해결책을 약속했다. 센터가 설립되는 데 기여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몇몇으로는 이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호소에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때마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소수의 희생으로 겨우 굴러갔고 그 소수마저 힘에 부쳐 떨어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느껴지는 좌절과 고통이 손가락 마디에 실려 있는 것만 같다. 장벽을 뚫을 수 있도록 돕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Photo by Mitchel Lensink on Unsplash



시스템의 부재는 너무도 많은 희생을 낳았다. 이로 인한 절망에 찬 신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직까지도 희생을 담보로 운영되고 있는 걸까. 시스템의 부재로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굳건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이상 희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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