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맞서 싸우는 할리우드 새내기들의 이야기
오래간만에 누워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보게 만드는 드라마가 나왔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출도, 스토리도 흠잡을 데 없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 곳의 어두운 면을 위트로 꼬집는 드라마가 나왔다.
약을 빤 연기를 보여준 빅뱅 Theory의 주인공 Jim Parsons, 꿈을 위해 버릴 건 버리고 자신의 룰을 만들어가는 작가 지망생, 배우 지망생들, 그리고 아시아인으로 흑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철저하게 편견과 싸우는 지를 보여준 드라마다. (스포일러 있음 주의!)
“Never, in the history of Hollywood, has there ever been a motion picture made by a motion picture studio for a mainsteam audience written by a colored person!”
이 대사에서 보듯이 이 드라마 시대 배경은 흑인이면 영화에 메이드로만 나오고 우스꽝 스러운 역으로만 나오던 시절, 흑인 작가로서는 한 번도 메이저 급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꿈도 못 꾸던 시절 이야기다. 그때 흑인 작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엔딩 크레디트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가야 하고, 영화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가나, 제작사, 배우들 집이 테러를 당하고 스튜디오 앞에서 데모를 하던 시기였다. 처음에는 꿈을 위해 뭐든 하던 주인공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성 정체성, 핏줄, 인종들을 숨기기 급급하던 데로부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No”를 외치기 시작한다.
극 중에 나오는 Ace Studio는 로이케이션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파라마운트 영화사다. 이 드라마의 수위는 역시 넷플릭스라 그런지 완전 39 금이다. 파티 장면에서 남자 배우들이 나체로 돌아다닌다거나 던지는 농담이나 수위들이 가히 놀라울 정도로 세다. 그들이 만들려고 하는 건 할리우드 역사상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흑인 작가에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다. 이때만 해도 노예제도가 풀렸어도 흑인들이 차별받고 무시당하던 시절이니 이런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온 스튜디오 사람들이 반대한다. 영화 제작 여부에 대해 고민할 때 영부인이 와서 하는 대사가 있는데 참 인상 깊다.
“Think about it, what it might mean to a dirt poor little black girl living in a shanty in some cotton town where she’s told she’s free, but really her life is no better than that of her grandparents, who were the owned property of another human being. Think about her, what it would mean to see herself up there on that screen. To see herself up there on that screen, vaunted, dignified, valued.”
내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던 영화 매체의 진정한 의미가 이 대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정부와 정책이 할 수 없는 문화적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일,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현실을 꼬집고 나은 미래를 제시해서 보이는 일이 영화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말해준다. 시골에서 자라는 흑인 아이들에게 흑인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정책으로 "네가 자유해!" 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파워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이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물론 정책이 먼저이고 정책이 있어야 이런 메시지가 유효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류의 영향력이다. 바로 영상의 파워와 영화의 파급력 말이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들과 드마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자 주인공이 더 이상 구해야 하는 공주님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변화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변화되는 시대상에 맞춰서 영화판도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된 인식과 시대상을 제일 잘 반영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매체가 영화고 드라마다. 여자 감독들과 여작가, 여자 프로듀서들과 관리급 인재들도 늘어나고 그 역할들을 멋지게 해내는 것들을 보면서 확실히 세상이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별이 완전히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겐 남겨진 숙제들이 많다.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이 “ A Hollywood Ending”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어쩌면 이 드라마 엔딩이 완벽한 헐리 우식 해피엔딩이다. 보고 나면 나도 편견과 핍박에 맞서서 싸워서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싶어 진다. 영화 자체가 가진 파급력과 선한 영향력이란 이렇게 사회의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때 그 의미와 역할을 해내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현실은 이렇게 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이다. 흑인 최초로 오스카 상을 받았어도 일거리가 오히려 뚝 끊기고 한때 성추행을 일삼던 매니지먼트 사장이 사과해도 피해자들의 악몽과 상처는 씻겨지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도 피해자는 말한다. 아직도 너에 대해서 악몽을 꾸고 있다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나중에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폭력과 상처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도 보여줬듯이 이 모든 편견과 차별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낼 때 바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그 진가를 알아볼 것이고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며 변화될 세상을 위해 함께 고군분투해준다. 꿈을 위해 자신 고유의 성품과 목소리를 잃고 포기하고 타협할 때,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선택들을 할 때, 그 사람은 성골 할리도 없거니와 성공해도 불행하게 살 수 있음을 이 드라마가 말해준다.
흑인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에 초대되고도 입장 거부당했던 연로 배우가 후배 흑인 배우에게 말한다. 오스카를 받는 거보다 그 공간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그 자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더 이상 백인들의 잔치가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 다양한 인종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나오는 축제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더 이상 제외된 인종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보통의 인간들임을 시사한다.
몇년 전 스티브 맥퀸 감독이 "노예 12년"으로 오스카 역사이래 처음으로 흑인으로서 감독상을 받았다. 그 뒤로 히스패닉 계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버드맨"과 "레버넌트"로 감독상을 받았다. 계속해서 white oscar라고 비난받던 오스카 시상식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로 오스카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것을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정말 2020년이 역사의 한 순간을 경험하는 해가 아닐 수 없다. 더없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기대되는 변화의 물결들이다. 그래서 덴젤 워싱톤이 오스카 상을 받았을 때 했던 수상소감이 그래서 마음을 울리고 의미가 남다르다. 덴젤 워싱톤의 수상소감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BGb40yh4SY) 우리 사회가 동화처럼 모두가 평등할 거라는 유토피아 같은 사상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편견과 맞서서 싸우고 변화를 시도할 때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이 조금은 가까워질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 제작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어야 좋은 영화 한 편이 탄생하는지에 대해 배웠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화려한 볼거리와 이야기만으로도 보기에 충분히 부담스럽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