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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05. 2018

영화는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영화 속 그들이 나고, 그들의 성장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는

힘든 나에게 구원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영화나 드라마는 항상 나에게 도피처였다.

내가 좋아해서 열 번 이상을 본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드라마는 나에게 현실도피일 수도 있겠다.


요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마주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중이다.

그 일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도망가고 도망가다가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자리가 없어서

내일이면 그 일을 펼쳐서 해내야만 한다.


왜 이리 징징거리냐고 나를 나무라기도 하고

내가 얻지 못한 해답을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들을

보면서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어쩌면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이럴 뿐이다.


일이 터지고 나면 일단은 좀 도망가서

나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 안에 내버려 둬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곰곰이 돌아보고 반성하고

나아가는 게 내 문제 해결 방식이다.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내 주위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천재들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 주위에 있다 보면

자꾸 이렇게 도망가는 나 자신도

안일하게 일을 미루는 나 자신도 한없이 싫어진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관리에 철저한

노력형 천재들이니까.


그리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동네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지난 몇 년간을 걸쳐서 배워간다.

나이를 불문하고 내가 그들만큼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리라.

프로들의 세계에서 그리고 지금 그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는 나는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어떻게 그렇게 기발한 생각들과 테크닉으로

큰 차이를 만드는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와 반면 갓 시작한 햇내기들이나

아예 이쪽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내가 또 잘하는 사람이겠지.

그러니까 그 기준도 보기 나름이고 규정짓기 나름 일거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은 1%의 천재에 의해서

돌아가는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더 끈질긴 사람들로 인해 돌아가는 거라고...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1%의 재능을 가지고 끈질기게 매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노력형이 천재를 이길 날이 오지 않겠나.

근데 나는 99%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니 참 낭패다.


그리고 나는 크리스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의 해답을

끊임없이 묻고 찾게 된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는

진리가 모호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삶의 자질구레한 문제들 앞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그러니까 머리 쥐어 싸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한다.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캐릭터들의 아픔, 상처.

그리고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나도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내 인생을 큰 퍼즐 안에서 본다면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먼 훗날 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분명히 후회하는 시간들도 있고

잘했다고 위로하는 시간들도 있으리라.

앞으로의 내 운명은 지금 이 순간이 결정짓는 것인데

오늘도 만족할 만큼의 날을 보내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 솔직한 힘듦이 무엇인지

나누지 못해서 내가 더 슬픈 것 같다.

마음껏 울고 싶은데 울지를 못해서 내가 힘들었나 보다.

 

이 모든 헛된 시간들을 지나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

내가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잡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 누구의 말처럼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에 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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