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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Sep 14. 2018

우리의 찌질함에 대하여...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 "잘 돼가? 무엇이든"

나는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에세이에서는 모두들 찌질 해 보이지만

자기가 겪은 일들에 대한 그 순간의 감정들 만큼은

모두 적나라하고 솔직하다.

난 그 솔직함이 좋다.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찌질함을 표출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의 고민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신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솔직함이 오히려 덜 찌질하게 보인다.

사실 자신의 찌질함은 본인만 잘 모를 뿐

남들의 눈에는 오히려 더 잘 보이기 마련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그걸 감추려고 애쓰고

또 가끔은 허세로 무장하기도 하는데

난 오히려 그게 더 안 좋아 보일 때가 많았다.


오늘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소리 내서 크게 두 번쯤인가 웃었다.

참 유쾌하고 솔직한 그 글들이

나에게 소소한 위로를 전해주었다.

여자 감독으로서 한국 영화계에서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는 그분의 솔직함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보스턴을 떠나 내 집 홈타운 엘에이

할리우드로 돌아온 지 어언 3주가 넘어간다.

사실 말이 좋아 할리우드이지

내가 그곳에서 일하지 않는 한

사실은 한인타운에 살고 있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동네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보스턴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의 제안으로

Paramount Studio tour를 가게 되었다.

엘에이에서 6년을 살면서도,

영화일을 하고 싶어 했으면서도

한 번도 이런 투어는 가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큰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으면

공짜로 보여주기도 했으니까

내 돈을 내고 가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암튼 그렇게 친구와 Paramount 스튜디오 투어를 하는데

우리는 운 좋게도 우리 팀만 맡게 된 가이드를 만났었다.

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친구도 영화과 출신이었다.

내 친구와 나도 금방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엘에이로 돌아온 거니까

우리 모두 같은 동지들인 셈이었다.

근데 꿈에 부풀어 들뜬 우리와는 달리

그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시니컬하고 지루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가이드도 하고 스튜디오 현장에서 일도 하지만 뭔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가 앞으로 이곳에 일하는 프로듀서나

영화인이 되기를 바란다고는 하지만

뭔가 진심이 1도 없는 인사치레인 것만 같았다.

뭔가 우리가 헛되고 허망한 꿈을 꾸는 사람들인 것처럼...

돌이켜 보니 나도 속으로는 뭔가

"나는 너처럼은 안될 거야"라는

무언의 다짐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지금 일 찾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친구도 쉽지 않게 그 자리에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촬영 현장이 좋아서 그 영화사에서 일은 하지만

티비쇼 프로덕션 일을 하려면

스튜디오 투어 가이드도 해야 하니

그 친구 나름대로 지루하고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을 것도 같다.

이 바닥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엘에이는 영화의 산업이 주로 이루고

심지어 같이 택시를 탔던 분도

영화계에 잠깐 머물렀다고 한다.

친구 왈 여기는 발에 차이는 게 영화인들이고

스타벅스 가면 다들 시나리오 작가들만 있는 거 아니냐고

실제로 그런 시나리오 작가들도 많고

라라랜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모두들 금빛 화려한 레드카펫 꿈을 향해

영화인들이 모여드는 동네이다.

이곳에서 성공하려면 정말 실력은 기본이고

운도 자금도 있어야 하는데

나의 실력은 이 일을 갓 시작해 부족하고

운은 내 소관이 아니고 자금은 확실히 없다.

이곳에서 여자 아시안 영화인으로서 성공하고

내 이름이 극장 크레디트에 걸리려면

몇십 년이 걸릴까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일자리를 구하고 알아보는 지금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약간은 의기소침해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경미 감독의 글을 읽으면서

첫 번째 작품을 만들고 두 번째 작품을 만드는

그 8년의  고민과 번뇌의 흔적들이 읽으면서

 그분의 고뇌와 버팀의 시간들이

나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아... 이런 시간들도 지나가는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이때까지 영화 하겠다고 헛된 꿈을

안될 꿈을 잡고 있었던 거는 아니었다.  

이때까지 이 길을 향해 꾸준히 걸어온

내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영화제작은 아니어도 운 좋게

그 비슷한 필드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찾아 헤맸다.

그리고 먼길을 돌아온 지금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런데 그 길은 험하고도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있는데

한쪽은 UPM(Unit Project Manager)

영화가 끝나면 크레디트 롤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직함이다.

감독도 아니고 촬영감독도 아닌 현장 매니저,

각 부서를 책임지고 영화가 제한된 예산과 시간 안에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감독과 프로듀서를 도우는 사람이다.

이 직함을 달려면 나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 년에 거의 절반은 촬영장에 있어야 하고

일 하지 않을 때에도 이메일과 전화폭탄에

묻혀 살아야 하는 일상을 견뎌야 한다.


다른 쪽은 영화 제작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외국어의 장점을 살려서

중국이나 한국 시장을 연결하는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싶은 게 내 두 번째 목표이다.

이 일을 한다면 현장에서 먼지 뒤집어써가면서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고생하면서

촬영장에 나가서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저렇게 고민한다고 한들

내 길이 열리는 건 아니어서

요즘 열심히 영화사들에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

지금 한창 일을 구하면서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이경미 작가의 글을 읽으니까

뭔가 원하는 게 어느 쪽이든

일단 가보고 부딪쳐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이 뚜렷하면 길은 어떻게든 열림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제 일 구한 지 2주 되었는데 연락 오는 데가

한 군데도 없으니 많이 불안해했던 것 같다.


이경미 감독도 그 외로움의 8년을

이렇게 저렇게 버티면서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냈으니까

나도 이 기다림의 시간들을 지나고 꾸준히 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그 직함 어느 변두리 쪽에라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계속 문을 두드리고 우울할 때엔

이렇게 남의 경험으로 위로받으면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교 다니는 내내 에도 일을 했었고

무직 상태가 된 지 3개월도 안됐는데

뭐가 그리 조급하고 불안했는지

오늘 다시 다독여 주면서

계속 나의 길을 나의 페이스대로 갈련다.

뭔가 되게 비장해 보이지만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일 찾고

또 밥 먹고 일 찾는 일을 잘 반복하는 것 외에는

지금 나에게 더 권장하는 루틴이 따로 없다.

일적으로 안정되여져 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불안해하지 말고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좀 찌질해 보여도

뭐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누구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나 말이야... 그때 되게 찌질했는데

잘 버텨줘서 오늘이 있는 거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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