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보는 나랑 내 자신사이의 갭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거품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껍대기가 아닌 본질이 보인다.
나의 민낯은 어디까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포장일가?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어디까지 진짜인지
나 자신조차도 이렇게 명확하게 짚기 어려운데
내 자신을 바로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 학벌, 직업, 가족관계, 내 외모 등등
나를 수식하고 정의하는 수많은 요소들...
그중에서 거품을 다 걷어내고 난
나의 본 모습은 어떤 사람일가 고민해 본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본향인 모국어를 사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일가?
여기서 말하는 모국어란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나의 부모로부터 받은 언어의 히스토리
감정의 표현방식, 태도, 가치관을 말한다.
한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가식과 가면을 벗고
모국어를 상대하기까지는 오랜세월의 친밀함이
바탕되여야 할 것이다.
모든 호르몬의 장난과 무모함이 시간을 지나고
비로소 보이는 그 사람의 모국어
유명한 김창옥 강사님은
좋은 모국어를 가진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나는 어떤 모국어를 가졌는지는
내가 가족에게 하는 말과 행동
인생의 밑바닥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로 알수가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성향들이 아니라
오랜세월 축척돼 있는 고질적인 습관 같은 것이다.
뇌는 멍청해서 반복된 관습대로 행동을 결정하고
그게 익숙하고 편하니까 그 관성대로 삶은 굳어간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얼굴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모국어가 좋은 사람이고 싶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나를 알아야 하고
내 자신을 앎으로 단점들을 개선해 나갈수 있기때문이다.
근데 어디까지가 내 진짜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포장인지 그 경계가 종이 한장 차이고
내 감정을 구구절절 적다보니 또 글이 길어진 것 같다.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지만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나는 크리스찬이니까 나의 정체성을 신앙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하고
그 정체성이 그리고 중심히 잘 잡히면
그건 나의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된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한 자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를 두고 있다.
자존감은 누가 뭐라 해도 untouchable가 되는 반면
자존심은 남의 말과 행동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정답까지 가는 길은 알겠는데
그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아마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근데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나의 행복과도 연결되여 있는 거라
나의 삶의 질을 크게 좌우지 한다.
이제는 서른쯤 되였으니 나를 바로 알고
나를 보호할줄 앎으로
누구와 함께 하지 않아도
평안하고 행복해 지고 싶다.
그럴려면 끊임없이 내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