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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pr 14.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1

우리가 하는 일은 막노동인가 예술인가? 

보스턴에서 영화과를 졸업하고 엘에이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직업전선에 뛰여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할리우드, 모두가 금빛 꿈을 품고 몰려드는 곳, 엘에이다. 

세계 각국에서 날고 긴다는 영화쟁이들이 모이는 이곳은 경쟁이 치열하고 

공짜로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초보가 좋은 스튜디오 일을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실력만 좋으면 기회가 많은 나라이긴 하나 보이지 않는 학연, 지연이 분명히 존재한다. 

옛날에 영화 예고편 회사에서 일할 때 같은 부서에 유난히 USC 졸업생들이 많았던 건 우연히 아니었다. 

보통 좋은 회사들에서는 밖에서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모두 Refer 하는 식으로 사람을 채운다. 

빈자리가 나면 먼저 동료들의 인맥들을 연락해 믿을만한 사람들을 쓰려고 하는 게 

이들이 사람을 구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인맥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이력서를 500통씩 넣어봐야 

겨우 인터뷰 하나두개 받는 것이 다반사이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다. 내가 마음에 든 회사들에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무작위로 이력서를 넣었었는데 마침 그 회사에 사람이 급했고 그렇게 운이 좋게 첫 미국 회사 입사를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몇 년 전의 이야기다. 내가 Assistant Edtor로 직업을 구했을 때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Post Production에서 Production & Producing 쪽으로 일을 옮기려고 학교를 다녀온 뒤 다시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구하는 지금은 직업 문턱의 벽이 훨씬 높아졌음을 느낀다. 

학교 행사에 가서 인맥들을 쌓고 여러 Networking 이 번트에 다녀와도 그것이 실제로 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모두가 나처럼 일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 이런 이번 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했던 것처럼 무작위로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하고 잡 구하는 사이트에 열심히 이력서를 보내고 넣어봐도

첫 3개월은 좀처럼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아. 내가 중간에 하던 일을 바꾸려고 보니까 이렇게 힘들구나 다시 원래 하던 편집 쪽으로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무기력해졌다. 

그러다가 AFI(American Film Institute)에 조연출 막내 Production Assistant로 자원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무작정 내 연락처를 남겼었다. 막내로 자원한다는 의미는 공짜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겠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일하려는 이유는 AFI가 주는 인맥의 유혹 때문이다. 미국에서 제일 좋은 영화대학원이기도 하고 이 학교 인맥을 잘 쌓으면 이들과 지금은 졸업작품을 같이 만들지만 그들이 졸업하면 다들 직업 정선에서 잘해나갈 인재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인맥이라고 대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모두 같은 학교 동문으로부터 일을 받았고 쭉 프리랜서로 잘 자리 잡었다고 했다. 그만큼 학연은 

일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무작정 공짜로 일하는 일부터 시작했더니 점차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풀린 건 또 아니었다. 

1월에 공짜로 일 시작해서부터 2월에 광고한 편 하고 또 줄곧 공짜로 일하고 3월에 다른 광고한 편하고 또 공짜로 줄곧 일하다가 4월에 다른 광고 한편 하는 식이였다. 촬영 현장에 계속 나가다 보니 아는 얼굴들도 또다시 보게 되고 인맥들도 점차 늘어났다. 한번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불러서 다른 일로 연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월에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가 다시 한번 불러줘서 3월에 다른 촬영이 있을 때에도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프로듀서 남편분도 프로듀서인데 주로 파일럿을 한다고 들었다. 지난해에는 Nickelodeon이라는 어린 연령층이 많이 보는 채널에서 파일럿을 총관했다고 했다. 이번에 다른 파일럿을 들어갈 때 혹시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이력서를 보내주면 남편한테 전해주겠다고 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나 일단은 감사했다. 나를 다시 써줄 수도 있다는 건 내가 그래도 내 몫을 조금은 한 것 같아 기죽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점은 광고는 영화 현장보다 훨씬 돈을 많이 주었다. 촬영 기간도 짧고 일당도 훨씬 많이 주었다. 주로 공짜로 일하지만 근근이 광고 촬영 현장에서 번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할리우드 입문 루트는 미국 감독 노동조합에서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일이다. DGA(Director's Guild of America) Assistant Director Training Program 조감독 훈련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루트의 가장 큰 장점은 일을 하면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훈련도 받으면서 제대로 된 영화나 TV 드라마 현장에 투입된다는 것이 가장 매리트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어떤 사람들은 10번 신청해서 겨우 들어간다고 들었다. 10번 신청했다는 의미는 10년은 신청했다는 의미이다. 일 년에 한 번 신청할 수 있게 돼 있고 일 년에 전 서부와 동부에서 각각 20명을 뽑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겠는가? 나도 신청했다가 이번에 고배를 마셨다. 다음 해에 다시 신청할 생각이다. 일단은 올해는 내 일을 계속하면서 될 때까지 내년에도 신청할 생각이다. 



다음화에는 미국 영화 현장 조연출 막내들은 어떤 일을 감당하는 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내가 지금 고생하면서 겪고 있는 일들을 적어 기록으로 남기고 혹시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거나 할리우드에 와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혹시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그들에게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건지를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잘 대비하고 이 곳에 와서 나보다는 덜 고생했으면 좋겠어서 언니 같은 마음으로 쓴다. 또한 이 글은 내가 개인적인 경험과 소감을 적은 글이니 모든 영화 현장이 내가 겪는 것과 같을 수 없고 또 모든 미국 영화 현장을 일반화할 수도 없으니 유의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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