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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Jul 27.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3

할리우드 인종차별 및 노동환경

그동안 광고 촬영 및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바쁘게 보내게 되어 이제야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변명 같아서 앞으로는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할 거 같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제가 동양인 그리고 여자로서 촬영 현장일을 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인종차별과 할리우드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일했던 촬영 현장은 주로 백인이 많았던 반면 흑인 조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은 정말 가끔 가다가 만났고 라틴계 프로젝트 매니저, 그리고 라틴계 촬영 소품팀을 만난 거 빼고는 주로 백인 스텝들과 많은 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경력이 아직 많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주로는 백인들이거나 유태인 들과의 협업이 많았습니다. 미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했던가요? 물론 직접적인 언행으로 인종 차별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은 없지만 눈빛으로 그리고 알게 모르게 하는 인종차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양인 얼굴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가끔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할 때도 있고 아니면 표정으로 이미 "나는 너를 신뢰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를 풍길 때도 있습니다. 현장에 스텝부터 배우들까지 높은 지위에 있는 시청 사람들을 상대로 광고를 찍은 적이 있는데 현장에 아시안 젊은 여자가 프로듀서라고 나와 있으니 scene에 대해 설명할 때 모두들 눈빛으로 경계하는 것을 수시로 느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감독님이 특별히 저를 소개할 때 제 타이틀과 role에 대해서 분명히 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셨기에 보다 수월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AFI 대학원생들과 함께 졸업작품에 참여했을 때의 일화인데요. 제가 같이 일한 적 있던 조감독과 다시 일할 기회를 있어 저는 2nd Assistant Director로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현장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엄청 심한 편인데 이 현장은 Studio Teacher라는 분이 저와 조감독을 난감하게 하더라고요. Studio teacher란 현장에 나이가 어린 미성년자가 있고 촬영기간이 학교를 가야 하는 기간이라고 하면 촬영 현장에서 틈틈이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셈이죠.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안전하게 미성년자 촬영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분은 하루에 촬영하지 않는 시간 사이사이에 필요한 수업 시간들을 채우면 되는데요. 이 현장에는 나이가 지긋한 백인 할머니가 오셨었었죠. 근데 이분이 유난히 수업시간을 평소보다 더 강조하고 촬영을 몇 번이나 지연시키길래 조감독과 저는 최대한 단호한 말투로 대응하려 했던 게 이분의 심기를 건드렸을까요? 이분이 저한테 오시더니 자기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종이에 조감독이 마땅히 어떻게 Studio teacher랑 얘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단어들을 적어왔다며 종이를 건네는 거예요. 처음에는 현장이라 정신없고 경황없어서 그냥 그 종이를 받기만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영어를 잘 모르는 아이 가르치듯이 "내가 너 생각해서 알려주는 거야" 하는 거지만 사실은 명백한 인종차별이고 은연한 무시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저랑 같이 일했던 조감독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어떻게 내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본인이 직접 가서 사과받아내겠다고 하는 거예요. AFI 학교에도 보고하고 앞으로는 블랙리스트에 올리도록 하겠다고 제 일처럼 분노하는 거예요. 일이 이토록 커지길 원하지 않았던 저는 그냥 제가 그분한테 직접 사과받겠다고만 하고 일을 마무리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텝의 불이익에 눈감아주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했던 내 윗 사수 인 그 조감독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그 조감독이 같이 화내 주고 같이 공감했던 이유는 이 조감독도 흑인 여자로서 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의 시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저한테만 일어난 게 아니였습니다 이 백인 할머니가 현장에 있던 흑인 헤어 담당자의 강아지를 보면서 "You should name your dog as Black Panther's character" 이 순간 그 방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얼음이 되었는데도 이 분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그 헤어담당자도 화가 났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내가 흑인이어서 강아지 이름을 블랙 팬서라고 지어야 하냐며 난색을 표했죠. 이분은 농담이라고 호호호 하셨지만 차별을 받아왔던 사랄들은 그 농담이 전혀 즐겁지가 않고 주위를 오히려 무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분은 잘 모르시는 듯했습니다. 21세기에도 차별은 분명히 존재했고 여전히 공공연하게 내 주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피부색과 성의 선입견을 지우는 방법은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고 나의 능력을 성과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현장에서는 유난히 유색인종의 여자 스텝들이 많았는데 다 함께 이런 일로 유대하게 되니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여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떠한 형식이로든 받고 있던 차별과 무시를 피부색이거나 성별로가 아닌 실력으로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은 친한 동료 언니와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여자로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나눴던 적이 있는데요. 참고로 이 동료 언니와 저는 비슷한 예고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에 남자 여자 비율은 확연하게 차이나고 무엇보다 그 가운데 제일 많은 인종은 주로 백인, 흑인, 라틴계 그리고 마지막이 아시안였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여자 프로듀서, 감독님들이 많아지는 추세이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남자가 확연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비율이 7:3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 언니가 일했던 영화 예고편 회사에서도 Senior producer로 일하시는 분이 아시안이었는데 그 방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그 방의 팀장이 당연히 미국인인 줄 알고 항상 그 미국인이 일하는 테이블에 가서 업무보고를 한다는 거죠. 사실은 그 방에 있던 아시안이 팀장이고 미국 동료는 미들 급 매니저인데 말이죠. 미국에서 겪는 크고 작은 차별들은 이제 무덤덤해지고 어느 정도 농담으로 웃어넘길만한 내성이 생겼지만 그걸 이겨내고 실력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차별 앞에 묵묵히 내 일들을 해나가면서 실력을 쌓아야 하는 거겠죠. 앞으로도 갈길이 한참 멀었음을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할리우드 노동환경은 그 차이가 정말 천차만별인 거 같습니다. 예산이 빵빵해서 정말 잘 갖춰진 현장에서 모든 것들을 서포트를 받으면서 일한 적도 있고 5-6명이서 뮤직비디오 찍는데 시원한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불편한 말리부에서 땡볓 아래 12시간 강행군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겉으로 드러난 환경 말고 그 현장에서의 노동의 질은 같이 일하는 스텝 특히 감독이나 프로듀서의 성품이 결정한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사람이더라고요. 아무리 현장이 고되고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위해주고 서로를 케어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 고된 육체적인 노동도 견딜 만 하지만 배우에 대한 배려도, 스텝에 대한 배려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샷들을 얻으려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할 때 그 현장은 그냥 버텨내야 하는 현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인원이 함께 했던 광고 촬영에서 감독님이 스텝들을 위해 친히 모든 음료수(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종류별로), 건강한 과일과 간식들을 넉넉히 준비해주고 수시로 괜찮은지 살피는 현장은 그 위에 이야기했던 현장과는 차이가 날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한 대가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충분한 보수로 보답해 주는 보스가 제일 좋은 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봉 협상할 때 상사의 고마운 마음은 말이 아니라 숫자로 표현해 달라는 농담이 있잖아요. 제가 일했던 현장 중에서도 보수를 적게 주는 분들이 오히려 더 인색하고 이기적이고 무심한 분들이 많았고 보수를 잘 챙겨주는 분들은 오히려 그 일의 노동강도를 알기에 더 사람들을 챙기고 케어할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리고 미국인들은 일한 만큼 일한다 라는 주의여서 절대 현장에서 뛰여 다니거나 조급해하지 않더라고요. 안전상의 이유로도 뛰는 건 삼가게 돼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현장에서는 아시안들이 좀 더 빠릿빠릿하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촬영 시간을 최대한 지켜주고 그 시간 안에서만 일하려고 하지 그 외에 시간에 보수도 없이 일 시키면 여기에서 이 일을 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듯싶습니다. 물론 저처럼 Newbee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는 운전하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보통은 14-18시간 일하는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생기고 노동조합에 조인하고 나서부터는 대우가 많이 달라집니다. 각 파트마다 노동조합이 있는데 그 노동조합에도 휴식시간, 점심시간, 하루 촬영 시간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어서 그 걸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뿐더러 오버타임도 바로 계산되기에 미국에서의 촬영은 기본적으로 10-12시간 촬영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촬영 시작해서 6시간 뒤에는 꼭 Hot meal이라고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게 룰입니다. French hour라고 촬영 중간에 쉬지 않고 계속 촬영하는 경우에는 촬영장에 상시 음식과 좋은 스낵들이 있어서 스텝들이 필요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항상 구비되어 있습니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의 스타일에 따라 점심은 이렇게 먹기도 하고 거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부서가 엄청 세분화되어 있어서 배우는 것도 그 부서 안에서만 가능하고 다른 부서 하고는 접촉점이 많지 않아 많이 배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온 촬영감독이 미국에서 직접 크레인에 올라서 촬영 다했다는 루머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담당하다 보니까 아는 것도 많고 재주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촬영감독이 직접 카메라 잡는 일도 없고 각 파트마다 필요한 인재를 따로 불러서 쓰다 보니까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조명을 설치해야 하는 조명팀에도 항상 막내들이 넘쳐 나는 것도 그 이유에 서겠죠. 고된 조명팀에서 일하는 게 좋아서 라기보다 실력을 쌓아서 나중에 촬영감독이 되고 싶어서 밑바닥에서부터 배우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각 파트에서 최고들만 모셔서 쓰다 보니까 이 바닥이 입문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근데 선배들이 말해주는데 "Once you in, you in"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선배 그리고 좋은 팀을 만나면 그 팀은 스케줄이 서로가 다 맞는 한 쭉 유지되고 팀장이 일을 받아오면 손발이 잘 맞았던 팀원들은 그대로 쭉 같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아직은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 닥치는 대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로는 같이 일했던 감독, 프로듀서, 그리고 스텝들과 다시 두 번 세 번 같이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매 현장에서 내가 먼저 좋은 사람,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스텝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뭐든 주어지는 대로 일하고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모든 시간들이 앞으로 큰일들을 맡았을 때를 미리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고생은 당연한 거라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일을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할 텐데 내가 오래도록 롱런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지 나중에 내가 정말 팀이 필요할 때 그 사람들도 나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편에는 광고와 영화 현장의 차이에 대해서 논의해볼까 합니다. 이 매거진은 이제부터 매주 금요일에 꾸준히 업로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미리 약속을 해놔야 제가 더 부지런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그럼 이제 매주 금요일에 만나요. 오늘도 저의 미천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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