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건 결국엔 습관이다.
특별한 주제가 없이도
3시간을 쭉 통화할 수 있는 친구가 몇 있다.
좋은 친구와 오래 통화하는 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힐링이다.
글을 쓰는 게 나에게 그런 시간이다.
특별히 힘을 들이지 않고도
최고의 만족도를 끌어내는
나만의 작은 취미이자 습관이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런데도 피로감이 없이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되고
소소한 행복감까지 주는 취미가
또 있을 가 싶을 정도로
나에겐 글쓰기가 삶에 좋은 영양분을 만들어 준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동네 골목대장처럼
활동적이고 활발했던 아이였다.
근데 요즘은 "어쩜 그리 차분해?"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나이가 들어서 옛날만큼
활동적이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이젠 뭔가 정적인 것들이 더 좋고
조용하고 차분한 게 더 좋다.
옛날에는 집에 있어도
무조건 소리가 들릴 수 있게 TV를 켜놓았었다.
근데 지금은 아무 소리 안나는 조용한 공간이
있다는 것에 행복감과 힐링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시끌벅적한 친구들 과의 시간들도 즐기지만
또 혼자서 조용하게 사색하고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도 꼭 가져야 한다.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할 때
내가 분주하고 무료하게 산다고 느낀다.
그러면 곧 머지않아
모든 것에 회의와 권태를 느끼며
글을 써야겠다 라는 충동을 느낀다.
글을 쓰고 나면 내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되고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므로 인해
지금 느끼고 있는 혼란스러운 이 감정이 무엇인지
또 무엇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지
어렴풋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글 쓰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집요하게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니까 말이다.
어떨 때는 그 글들이 너무 두서없고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라
그냥 저장하고 한참이 지난 뒤 다시 돌아와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게 뭐였는지
생각하면서 다시 글을 이어간다.
그러면 항상 그전보다는 정리된 글들이 나온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글이
하루새 많은 조회수를 올릴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조금 의아해한다.
왜 그 글이 조회수가 많이 나왔지?
그냥 그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읽어서 그런가?
여러 가지 원인을 찾게 된다.
유튜브를 갓 시작한 사람들이
구독자 수에 현혹되어서 자꾸 들어가서 체크하듯이
나도 자꾸 새로 고침을 하면서 확인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면
업데이트되던 작은 하늘색 동그라미를 보는 게
매번 얼마나 설레던지...
그게 뭐라고 자꾸 새로고침 하게 됐었다.
근데 그런 걸 신경 쓰다 보면
내가 글을 쓸 때 중심을 잃고 휘둘릴 때가 있다.
뭔가 의식하고 쓰는 글들은
왠지 모르게 진짜가 아닌 느낌이 든다.
그럼 그건 내가 글 쓰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닌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처음에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서
썼던 글들이 나를 살렸다.
몇 년 전의 썼던 일기들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설레는 짝사랑에 대한 마음들과
상황이 힘들어 괴로워하던 때의
마음들이 구구절절 얼마나 디테일하던지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쓴 게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서 기록했던 시간들이
시간이 지난 뒤 읽어보니까
그 시간들을 잘 버텨오고 그때보다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흐뭇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글이란 건 그런 것 같다.
쓸 때는 아마 그 가치를 모를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숙성되는 와인처럼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유명한 “안나의 일기" 도
글을 쓰고 있던 당시 그 어린 소녀는
나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기를 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그 힘든 상황 가운데서 그녀가 쓴 글들이
그녀의 삶을 조금은 위안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글을 꾸준히 쓰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보면
이분들이 정말 고심해서
한 단어 한 단어 선택해서
글을 썼겠지 싶어 감탄하게 된다.
그런 거에 비해 나는 그냥 써지는 대로
너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내가 출판을 목적으로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쓰려고 한다.
지금처럼 조용히 브런치에 올리고
소소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꾸준히 쓰겠다.
주위 사람들에게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처럼
비췰 때가 있어서 굳이 잘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내가 좋아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글들이
또 나중에 나를 살리고
나를 웃게 만들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