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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May 09. 2020

모순덩어리여도 괜찮아

소소하게 목표하는 것들

나는 어디에도 묶이지 말고 자유롭게 훌쩍 떠나

살고 싶은 도시에서 잠시 머물면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영화도 실컷 보면서 즐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

물론 살고 싶다고 해서 다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꼭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생화를 사다가 꽃병에 정성스럽게 꽂고

두주만이라도  그 꽃을 보면서 생기를 되찾으려 한다.

누구는 돈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라 할 수도 있고

돈이 남아 돌아서 사치 부리는 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대신 내가 도박을 한다거나 게임에 중독돼

돈을 허비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라 그런 가.

난 참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래서 누가 왜 사냐고 묻는다면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서 라고 답할 거다.

훌쩍 떠나서 히피처럼 살고 싶다가도

내 일에서 만큼은 잘 해내서

내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모순적인 생각에 다시 시무룩해진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욕심이 생긴다

더 군더더기 없이 잘 읽히고 잘 정돈된 글을 쓰고 싶다.

책도 좋아하지만 사실 읽는 것보다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상한 논리 같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만으로

왠지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은

여전히 내 책장에서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몇 안돼서

그 작가들의 책들을 돌아가면서 다 읽었다.

다 읽고 발견한 것은 한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책에서도 등장한다는 거다.

물론 한 작가가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암튼 여러 권의 책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주로 남의 일을 해결사처럼 해결해 나가는

몇 명의 고등학생들 이야기다.

하나같이 날라리 같지만 정의로운 청춘들이

정의를 위해 기꺼이 남들을 돕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재일 한국인으로 등단하자마자 상도 여러 개 휩쓴

그 작가의 이름은 가네시로 가즈키이다.

그분은 첫 작품 "Go"로 최연소 나오키 상을 수상하셨다.


나도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라 생긴

정체성의 혼란과 비극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글에 그 차별과 핍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이 이력을 듣자마자 바로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읽은 "Go"라는 작품으로 시작해

“플라이 대디, 플라이, "

"러벨루션 No.3, " "스피드, " "영화처럼" 단번에 다 읽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특별한 신분이 이런 반항적이고

재치 있는 글을 만든 건가 싶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책은 아주 재미있다.

근데 아쉽게도 새로 출간된 책이 없는 거로 봐서

더 이상 글을 안 쓰시는 것 같다. 정말 아쉽다.

작가님의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끌려갔고

할아버지는 일본인에게 베인 상처가 등에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조선인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고

더 좋은 대학 입시를 위해 진학한 일본인 고등학교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한다.

조선인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과 시선을 받고 자랐고

아무리 노력해도 재외 한국인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고 일치감치 체념했다고 했다.

그래도 실제로는 공부머리는 있어서

좋은 대학 법대도 다니셨고 직장을 다니시다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오랜 아킬레스건과 혼란은 대학 입시를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내 배경과 출신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많은 신청서 중에서도 눈에 띌 리가 만무해서

조금 미화 더해서 구구절절 차별에 대해 썼다.

그래서 내가 두 가지 언어를 알고

두 가지 문화를 아는 것이

영화를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선포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보스턴 대학에서 연락이 왔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출신과 인종이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남들은 가질 수 없는 다양함을 품는 장점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소화했어도 나는 안다.

내가 미국에 사는 한 여전히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행인 것은 이들 눈에는 내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한국인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시안으로 통한 다는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이 세 나라의 차이가 엄청나고

어디에 속하던 그 나라에서는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그래서 마이너들은 일을 해도 두배는 잘해야 표가 나고

뭐를 해도 두배로 해내지 않으면

평생 남의 밑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신세로 밖에 살지 못한다.

평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하면 할수록

확실한 차별의 벽에 부딪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현실이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 현실이 그렇게 동화나 낭만 가득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차별과 은근한 무시가 담겨 있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암튼 이렇듯 편견은 내가 평생 싸워 나가야 할 부분이다.


나의 요즘 취미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글로 쓰는 것이다.

이상하게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더 이상

그냥 이렇게 글을 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모하게 도전하려 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날고 기는 프로들 사이에서 또다시 겪게 될

많은 패배감과 고배를

다시 꿈이랍시고 도전하면서 느끼고 싶지 않다.

꿈을 좇아 달려왔던 지난 10년이

충분히 고단하고 힘들었다.

어제는 내가 즐겨 듣는 푸른 밤 옥상달빛의 라디오에

하상욱 시인이 나와서 이야기해주셨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내가 즐기면서 취미 생활로 하고

그 취미생활에 대해 주위에서도

또 곧잘 한다고 칭찬 듣던 때랑

프로의 세계에 들어가 제대로 승부하려고 하는 것과는

하늘땅 차이라고.

너무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글쓰기는 지금처럼만 하련다.


며칠 전에 집이 너무 삭막해

토마토와 장미를 사다가 집에서 키웠다.

캘리포니아 햇빛이 강해서 그런지

밖에다 놓으니까 잎이 타버렸다.

장미는 물도 잘 줬는데 이상하게 자꾸 죽어버린다.

오늘은 마켓까지 걸어가서

생화를 사다가 꽃병에 꽂아야겠다.

이왕이면 노랑 튤립으로 말이다.

생화는 삭막했던 집을 조금이나마 생기 돌게 만든다.

그리고 떡볶이에 비엔나소시지를 넣어서 맛있게 끓여먹고

영화 한 편을 볼 생각이다.

다시 생각해도 완벽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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