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한 달 살기
도착 첫날, 시드니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국내공항으로 가는 짧은 거리, 그리고 멜버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차 창밖으로 본 호주의 첫 인상은 의외였다. 녹색 도로표지판에 말레이어가 빠지고 영어만 쓰인 말레이시아 같았달까.
호주 역시 말레이시아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호주의 우버 운전사가 말레이시아에서 숱하게 마주친 왜소한 체형의 동남아 그랩의 운전사와 다르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호주 땅에 처음 발을 디딘 나는 아마도 샘 해밍턴 같은 적당한 풍채의 벽안 기사님이 가뿐하게 우리의 캐리어 두 개를 차 트렁크에 실어 줄 것이라 예상했었나 보다.
현실은 낯섦보다 익숙한 것들이 우리를 먼저 반겼다. 말레이시아와 비슷해 어딘가 편안하다고 생각한 나는, 이번 여행에서는 호주만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 의미 있겠다고 직감했다.
다음날 시내 중심에서 본 멜버른은 더 이색적인 풍경으로 날 반겼다. 유럽 건축물이 혼재한 쿠알라룸푸르 같기도 하고, 같은 남반구이지만 중국어 간판이 상대적으로 많은 상파울루 같기도 했다. 또 시내 중심에 트램이 지나지만, 동남아 사람들이 남미 사람들의 비율을 대신한 토론토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내가 한 번쯤 와 본 곳 같은 도시. 이미 내가 다녀본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무언가가 녹아든, 친근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느낌의 도시였다.
게다가 한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조금은 긴장한 채로 동시에 묘한 기대를 안고 이 도시를 걸으며 조금씩 들떠갔다. 분명 이곳은 지금 여름인데, 경량 패딩을 입고 있어야 하는 오늘의 날씨마저 신선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거리에는 현지인을 비롯해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다양한 나라의 식당들이 각기 다른 언어의 간판을 내걸고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요리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간 식당에서 나시고랭과 치킨라이스 그리고 사태를 시키고는 우리의 3회 차 한 달 살기를 잘해보자고 아이들과 다짐했다. 이 익숙함과 이 어색함이라면 우린 분명 이 도시를 좋아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태국에서 한 그릇에 2천 원이면 먹던 나시고랭을 이곳에서는 2만 원에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슬픈 사실만 빼면 말이다.
전날은 늦가을 같더니, 다음날은 봄날이다. 두꺼운 외투까지 챙겨 올 겨를이 없어 기내에서 입던 얇은 플리스 점퍼를 입고 덜덜 떠는 아이들을 보며 나를 질책했는데, 반팔셔츠에 얇은 바람막이 점퍼 하나면 충분한 오늘의 멜버른. 런던처럼 하루에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사계절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하루 사이에 두 계절은 넘나드는 곳 같다.
햇빛은 찬란히도 빛나는데 바람은 조금 시린 그런 날,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각자 고른 플레이버가 한 스쿱씩 올라간 아이스크림 컵 하나를 조심히 들고서 두 아이들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 한 입씩 나눠먹는다. 그러곤 내게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한국보다 1.5배 비싼 물가에 몸서리치며 쉽사리 지갑을 열지 못하는 엄마지만, 두 아이의 행복이 8.5달러짜리 더블 아이스크컵에 녹아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움켜쥘 수 있어서, 날 위한 5달러짜리 롱블랙을 포기하고서라도 아이들의 손에 자주 쥐어줘야지 싶었다. 높은 빌딩 사이를 통과한 빛이 다시 넓은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새어 들어와 아이들의 그늘진 이마 위로 내려앉는다. 우리를 감싸는 여러 나라의 언어와 트램의 경적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그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우리는 20여 일간 머물 숙소로 이사를 했다. 문을 열자 환한 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왔다. 어둑하고 답답했던 비즈니스호텔을 벗어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나 역시 창문밖, 길 건너에 있는 주립 도서관을 바라보며 마음이 놓였다. 6개월 전 예약할 때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보았던 그 사진과 너무도 똑같아서, 그리고 그 사진 속 도서관을 창문 너머로 마주할 수 있어서. 매번 한 달 살기의 진짜 시작이 그러하듯 다시 짐을 풀고, 신고 있던 운동화를 가벼운 샌들로 갈아 신었다. 근처 마트에 계란과 쌀과 빵을 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나선다. 도서관 앞 잔디밭에 평화로이 노니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도 그와 같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