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서린의 뜰 Oct 23. 2024

까르띠에 목걸이 대신 괌

소유보단 경험이니까


한가로운 주말 오전, 밥숟갈을 일찌감치 내려놓고 아직 밥공기의 반도 다 먹지 않은 아이들을 무료하게 바라보다 남편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결혼 10주년인 올해, 결혼기념일을 위해 현재 나 몰래 따로 준비하는 게 있냐고. 10년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해외여행이 전무 했던 남편은 첫 해외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터라 나중에 애들이 생기면 10년 후 결혼기념일에 다 같이 오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으니까.   


물론 그 당시에도 난 천혜의 자연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물가 비싼 하와이에 두 번 다시 올 수는 없겠구나’ 속으로 생각했었으나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1초 만에 돌아온 대답은 ‘아니, 없는데’였다. 그러면서

“당신, 애들하고 한 달 살기 하려고 모은 돈에서 가족 여행 가는 거 아니었어?”라고 반문한다.

 (아, 너는 계획이 없구나….)

“그건 내가 준비하는 거고 오빠는 뭐 따로 없냐고요?”라고 묻자  

“어, 없는데”라고 투명한 그러나 조금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역시 예상한 대로구나….)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몸을 던지는 나.     


이번 겨울 방학엔 인도네시아 발리나 베트남 다낭에서 한 달 살기를 해 볼까 고민하던 차, 또 동남아에 가냐는 주변의 여론에 나의< 한 달 살기 5개년 계획> 재검토에 들어갔었다. 큰 아이 초등 시기를 기준으로 최소 5년간 5개국 한 달 살기를 해 보자고 애초 계획 했었고 최종 목적지는 계속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나 엄마의 취향대로 아시아에 너무 편중되어 있지 않나 싶던 참이었다. 다음 한 달 살기 예정지인 호주에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정감 있고 풍요로운 땅, 동남아에서 마음은 넉넉하게 몸은 따뜻하게 긴긴 겨울 방학을 보내고자 했는데 내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둘째가 겨울 방학이 지나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한 달 살기를 하다 보면 변화무쌍한 일정에 기초 습관이 흐트러지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입학 후 3월이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예상보다 반년 앞서 가버린 2차 한 달 살기와 이번 3차 한 달 살기의 공백이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데는 다 모르겠고 시댁의 눈치가 보인다. 내가 알뜰히 아이들 교육비를 모았어도 어찌 되었든 그 돈의 출처는 시어머님의 아드님으로부터니까. 그래서 올겨울 한 달 살기는 잠시 미뤄두고 우리 네 식구가 함께하는 단기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결혼 10주년 아니던가.     


그렇게 나는 심사숙고 끝에 아이들과 내년에 있을 영어권 국가에서 한 달 살기 모의 점검 차, 또 향신료의 향연인 동남아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미쿡 문화가 한 스푼 가미된, 짜고 기름진 음식이 기다리고 있을 서태퍙양 괌으로 여행지를 선택했다. 후보지엔 우리의 1차 한 달 살기가 될 뻔했던 사이판도 있었지만 약간의 호기를 부려 괌으로 최종결정했다. 통장 잔액과 만기 예정인 적금을 취합하고, 후보에 오른 여행지별 성수기 4인 여행 경비를 여러 날 더하고 빼는 수고로움 끝에 괌으로 결정했는데 남편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니.     


결혼 생활 10년 동안 지인 결혼식이나 아이 공개 수업 때 으레 들고 가는 명품 백 하나 탐내지 않은 나였다. 결혼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상징적인 무언가를 현물로 갖고 싶은 욕심이 빠끔히 고개를 들었다. 견물생심 – 하필 엊그제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뜬 까르띠에 트리니티 100주년 기념 광고를 봐 버렸더니 작고 반짝이는 목걸이 하나가 탐이 나더라. 침대에 돌아누워 괜히 까르띠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눈만 흘겨도 뜯어질 것 같은 얇디얇은 체인에 작고 작은 펜던트가 이어진 목걸이(개중에 가장 저렴)를 캡처해서 말없이 남편 카톡으로 보낸다. 그냥 알고만 있으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하지만 나는 안다. 남편 수중에 그만한 여윳돈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설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남편이 그걸 어렵사리 사더라도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며 환불 할 거란 것도.     


달러화 강세에 하와이는 엄두가 나지 않아 비슷한 느낌으로 다운그레이드한 여행지 괌.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한 번씩 다녀온다는 괌 PIC. 다녀오면 만족도 높은 여행지라 다시 찾게 돼 2 괌 3 괌 한다는 곳. 심지어 한국인이 너무 많이 구암동이라 불리 운다는 그곳. 그곳 특산물이 구찌라던데 구찌 키링은 커녕 아무것도 사지도 구경하지도 못할 나지만, 내 아이들이 손과 발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신나게 물놀이할 닷새, 그리고 회사 일에 시달린 남편이 푸른 바다를 보며 기분 좋게 맥주 마실 닷새를 생각하기로 했다. ‘이 돈이면 치앙마이 한 달 살고도 남는데…….’ 란 안타까움은 슬며시 밀어두고 닷새 동안 남이 차려준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달게 먹어야겠다.

설마 나의 최애 여행지 치앙마이보다 괌에 푹 빠져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